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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Uye Aug 04. 2017

나이가 든다는 것

서울 익선동 골목의 풍경 그리고 에세이

얼마 전 나는 익선동 부근을 걷다가 한 골목에 잠시 멈췄다. 그 골목에는 넝쿨장미들이 서로 마주보는 두 집을 아치형으로 이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골목길 한편에서는 꽃잎들이 나뒹굴었다. 여정에 지친 나그네가 하나둘 버린 짐처럼 꽃잎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골목길 이곳저곳 흩어져 있었다. 이 아름다운 장면은 다른 이들의 발걸음도 멈추게 했으리라.




원색으로 페인트 칠 된 대문, 평상이 있는 슈퍼 등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익선동 골목은 나의 어린 시절을 불러왔다. 나는 어렸을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나이가 드는 것이 두렵다. 익숙했던 것들이 내게서 떠나가고 나도 떠날 것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군고구마 통에는 이야기가 있다. 낡고 볼품이 없어진 그의 행색에서 수많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견뎠을 긴 세월을 읽을 수 있다. 생의 시작보다 끝에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움켜쥔 것들을 놓을 줄도 알 것이다. 빛났던 순간들이 모두 지나갔음을 인정하고 있던 자리를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얼마나 가벼울까.






익선동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나이 듦에 대해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삶의 끝에서 바람에 흩날려 나뒹굴더라도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꽃잎이고 싶다. 피고 지는 때를 알고 가벼이 떠나는 꽃잎처럼 나도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을 수 있다면 나이 든다는 것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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