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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Uye Jun 05. 2017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이유

Photo Essay

 


다섯 살 때부터 살았던 동네를 타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떠났다. 이사하면서 그곳에서의 추억마저 모조리 묻어뒀을까. 초·중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창생들의 이름이 낯설기만 하다. 가끔 동창생 친구를 만나 옛날 얘기를 풀어놓으면 금세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이름과 얼굴을 연결시킬 수 없는 나를 배려한 친구들이 동창생의 외형과 일화를 설명해준다. 신기하게도 낯설던 동창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심지어 그리워진다.    





있을 유(有), 예도 례(禮). 예의가 있다는 뜻의 내 이름은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것이다. 독특한 이름을 가진 나는 ‘유례없는 유례’ 등 언어유희 같은 철 지난 개그를 매번 처음 듣는 양 웃어넘겨야 했다. ‘래’가 아닌 ‘례’라고 두세 번 설명하는 고충도 겪곤 했다. 나와 반대로 흔한 이름이 불만이던 친구는 스무 살이 되자 이름을 바꿨다. 이름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명도 짧다고 철학원에서 귀띔해준 탓도 있다. 나는 삼십만 원짜리 친구의 새 이름을 몇 번 부르지도 못한 채 그와 이별해야 했다.    





오늘도 TV, 인터넷 사이트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오르내린다. 한 기자는 유명 연예인의 이름이 브랜드라며 그 가치를 수로 환산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름에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허나 이름의 사전적 의미는 ‘판매’가 아닌 ‘구별’이다. 대체 불가능한 특별한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이 이름의 목적이다.    





이름은 그림자를 닮아 어떤 실체가 있을 때만 존재한다. 그래서 이름 없는 사람 없고 만물에 고유한 이름을 붙였다. 이 세상에 태어나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갓난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누군가 따뜻하게 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증거이자 이름의 진가이다. 이것이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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