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걱정

8주 차의 기록

by 덕순


엄마한테는 힘든 티를 안 내고 소위 말해 '센 척'을 하는 경향이 있다.


못다 한 어리광과 엄살은 남편이 오로지 감당하기 때문에 남편 입장에선 매우 힘들겠지만,

걱정쟁이 엄마와 살아온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을 걱정했고 나는 늘 그 걱정에 진절머리가 났었다.


유럽 여행을 갈 땐,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며

가는 날까지 날 쫓아다니며 샌들을 못 신게 했다.


내가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을 때에는

그래도 취직을 빨리 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걱정했고,

취업을 먼저 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는

공부를 더 해보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겠냐며 걱정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걱정이 앞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고,

힘든 내색 안 하는 무뚝뚝한 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걱정의 바통을 넘겨받은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고 있다.


덕순이가 생기고 함께 찾아온 입덧은 일주일 동안 나를 최선을 다해 괴롭혔다.


남들보다야 무난히 지나간 듯 하지만,

그 지옥 같은 입덧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이번 8주 차는

앞으로 남은 고생길에 잠깐 열어준 행복인지

아니면 내가 정말 축복받은 체질이어서 받는 영원한 행운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체력이 방전된 것을 빼면 그래도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배고픔을 느끼고, 배고플 때 찾아 먹고,

적당히 배부르게 먹었을 때 느끼는 그 만족감.


이 당연한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했는지...


설날 연휴까지 있어 식구들끼리 밥을 먹는 일이 잦았는데,

다행히 내 몸이 입덧 지옥에서 벗어나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고생 안 시키고 알아서 찾아온 착한 아이라서 엄마 고생도 별로 안 시키는 거다.'


덕순이에게 고마워했지만

한편으론 갑자기 나아진 증상들이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이런 걱정들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7주 차 심장 소리를 들으러 가기 직전에도 똑같은 걱정을 했다.


그날 덕순이의 심장 소리는 매우 건강했고

의사 선생님도 별다른 얘기 없이 9주 차 때 보면 된다고 했지만, 내 걱정은 늘 의사 선생님을 앞서갔다.




흐릿한 1.4cm의 덕순이

아직 사람 모습도 아닌 덕순이에게 엄청난 모성애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본 덕순이 모습은 초음파 사진으로 본 희끄무레한 물체였다.


하지만 덕순이가 무사히 내 뱃속에 자라고 있기를 본능적으로 바라고 있었다.

아직 사랑하진 않지만 누구보다 간절하게 덕순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걱정은 곧 관심이고, 관심은 애정이 된다.


그 스펙트럼 어딘가에 덕순이를 향한 내 마음이 놓여 있을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나보다 심한 걱정쟁이 엄마들이 넘쳐났다.


오죽하면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간이 초음파 기계를 사는 엄마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기계를 사서 아기 위치를 잘 못 잡는 엄마들은 위치를 못 잡는 건지 아니면 아기가 잘못된 건지 걱정하고 있었다.


어쩌다 운이 좋게 심장 소리를 들은 엄마들은

그다음 날 같은 위치에서 심장 소리가 안 들린다며

아기가 움직인 건지, 아니면 잘못된 건지 걱정하고 있었다.


모든 게 날이면 날마다 걱정이었다.


아기를 향한 걱정은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 아기가 태어나 30년이 지나 엄마가 되었지만

우리 엄마가 아직도 나를 걱정하는 것을 보면

자식 걱정은 살아생전 끝이 없다.


엄마와 싸울 때는 나는

나중에 내 자식은 무조건 방목시킬 거라고

엄마처럼 사사건건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덕순이가 건강한지

매일매일 가슴 졸이며

병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덕순이가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길 원하지만,

지나친 간섭으로 주도권을 잃은 삶을 살기는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혹시라도 부족한 판단으로

위험한 길을 선택할까 봐 분명히 나는 걱정을 할 것이다.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에 빠지고 나니

나에게 주어진 숙제가 만만치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단순하게

당장 앞만 바라보자,

다음 주에 덕순이가 건강히 있을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자,

하며 애써 현실로 돌아왔다.


덕순이가 나를 믿고 쑥쑥 크는 것처럼, 나도 덕순이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지금의 나는 믿고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keyword
이전 03화너의 심장 소리가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