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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04화
엄마의 걱정
8주 차의 기록
by
덕순
Jan 20. 2022
엄마한테는 힘든 티를 안 내고 소위 말해 '센 척'을 하는 경향이 있다.
못다 한 어리광과 엄살은 남편이 오로지 감당하기 때문에
남편 입장에선 매우 힘들겠지만,
걱정쟁이 엄마와 살아온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을 걱정했고 나는 늘 그 걱정에 진절머리가 났었다.
유럽 여행을
갈 땐,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며
가는 날까지 날 쫓아다니며 샌들을 못 신게 했다.
내가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을 때에는
그래도 취직을 빨리 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걱정했고,
취업을 먼저 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는
공부를 더 해보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겠냐며 걱정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걱정이 앞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고,
힘든 내색 안 하는 무뚝뚝한 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걱정의 바통을 넘겨받은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고 있다.
덕순이가 생기고 함께 찾아온 입덧은
일주일 동안 나를 최선을 다해 괴롭혔다.
남들보다야 무난히 지나간 듯 하지만,
그 지옥 같은 입덧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이번 8주 차는
앞으로 남은 고생길에 잠깐 열어준 행복인지
아니면 내가 정말 축복받은 체질이어서 받는 영원한 행운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체력이 방전된 것을 빼면 그래도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배고픔을 느끼고, 배고플 때 찾아 먹고,
적당히 배부르게 먹었을 때 느끼는 그 만족감.
이 당연한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했는지...
설날 연휴까지 있어 식구들끼리 밥을 먹는 일이 잦았는데,
다행히 내 몸이 입덧 지옥에서 벗어나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고생 안 시키고 알아서 찾아온 착한 아이라서 엄마 고생도 별로 안 시키는 거다.'
덕순이에게 고마워했지만
한편으론 갑자기 나아진 증상들이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이런 걱정들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7주 차 심장 소리를 들으러 가기 직전에도
똑같은 걱정을 했다.
그날 덕순이의 심장 소리는 매우 건강했고
의사 선생님도 별다른 얘기 없이 9주 차 때 보면 된다고 했지만,
내 걱정은 늘 의사 선생님을 앞서갔다.
흐릿한 1.4cm의 덕순이
아직 사람 모습도 아닌 덕순이에게 엄청난 모성애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본 덕순이 모습은 초음파 사진으로 본 희끄무레한 물체였다.
하지만
덕순이가 무사히 내 뱃속에 자라고 있기를 본능적으로 바라고 있었다
.
아직 사랑하진 않지만 누구보다 간절하게 덕순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걱정은 곧 관심이고,
관심은 애정이 된다.
그 스펙트럼 어딘가에 덕순이를 향한 내 마음이 놓여 있을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나보다 심한 걱정쟁이 엄마들이 넘쳐났다.
오죽하면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간이 초음파 기계를 사는 엄마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기계를 사서 아기 위치를 잘 못 잡는 엄마들은
위치를 못 잡는 건지 아니면 아기가 잘못된 건지 걱정하고 있었다.
어쩌다 운이 좋게 심장 소리를 들은 엄마들은
그다음 날 같은 위치에서 심장 소리가 안 들린다며
아기가 움직인 건지, 아니면 잘못된 건지 걱정하고 있었다.
모든 게 날이면 날마다 걱정이었다.
아기를 향한 걱정은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 아기가 태어나 30년이 지나
엄마가 되었지만
우리 엄마
가 아직도 나를 걱정하는 것을 보면
자식 걱정은 살아생전 끝이 없다.
엄마와 싸울 때는 나는
나중에 내 자식은 무조건 방목시킬 거라고
엄마처럼 사사건건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덕순이가 건강한지
매일매일 가슴 졸이며
병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덕순이가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길 원하지만,
지나친 간섭으로 주도권을 잃은 삶을 살기는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혹시라도 부족한 판단으로
위험한 길을 선택할까 봐
분명히 나는 걱정을 할 것이다.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에 빠지고 나니
나에게 주어진 숙제가 만만치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단순하게
당장 앞만 바라보자,
다음 주에 덕순이가 건강히 있을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자
,
하며
애써 현실로 돌아왔다.
덕순이가 나를 믿고 쑥쑥 크는 것처럼,
나도 덕순이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지금의 나는
믿고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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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02
입덧 지옥의 시작
03
너의 심장 소리가 들려
04
엄마의 걱정
05
안녕 젤리곰
06
너를 만나기 전엔 몰랐던 세계
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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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개발자로 근무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평범한 엄마입니다.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등에 업고 아기가 낮잠을 자는 동안 최선을 다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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