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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05화
안녕 젤리곰
9주 차의 기록
by
덕순
Jan 21. 2022
뱃속의 아기는 9주 차를 기점으로 배아와 태아로 나뉜다.
신체의 필수 기관이 형성되는 배아 시기를 지나,
점차 사람의 외형을 갖추는 태아 시기에 막 진입한 것이다.
7주
차 때 확인한 덕순이의 모습은
사람의 형태라고 하기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중간에 반짝거리며 뛰는 심장으로만
'
이 아이가 살아 움직이는구나
.' 하고 느꼈다.
그리고
9주 차 때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젤리 곰'을 만날 수 있었다.
뱃속의 아기가
본격적으로 사람의 형태를 갖추면서
이 등신의 아주 작고 귀여운 몸
이 되는데,
팔과 다리가 짧게 튀어나와있어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고 했다.
속설로는
초
코 우유를 마시고 가면 아이가 더 춤을 춘다고 했다.
그날 나는 낮잠을 자느라
초코 우유를 챙길 정신이 없
어
서둘러 병원을 향했다.
고맙게도 덕순이는 초코 우유 없이도 손짓 발짓을 모두 뽐냈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것처럼
허우적거리다가,
손을 쭉 뻗고
다리를 흔드는 모습이
웃기면서, 신기하고, 무척 귀여웠다.
이 날 병원 검진도 나름
'합격'이었다.
그 전 검진 때 채혈을 했는데, 피검사 결과도 매우 좋았고
덕순이의 크기, 심장 박동도 모두 정상이었다.
이대로만 쭉 간다면
덕순이는 분명 건강한 아기로 태어날 것이다.
그날 이후
덕순이의 춤추는 모습은
핸드폰에 저장해서 날이면 날마다 보며
그 사랑스러움에 말 그대로 '엄마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내
머릿속은 점점 온갖 잡생각의 지분은 줄어들고
덕순이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를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과거에
또 어떤 사람은 미래에
생각의 추를 놓고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실패, 상처를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더 미래에 놓인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모두에게 주어진 공평한,
그리고 허망한 결말에 삶이 회의적일 것이다.
나는
지난날을 곱씹으며 후회하고
앞으로의 날을 두려워하고
더 미래의 날에 허망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내 생각의 추는
과거와 미래를 숨 가쁘게 오가며
불안정한 진동을 하였고,
도무지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덕순이가 찾아오자,
덕순이를 향한 온 관심이 생각의 지분을 넓혀가면서
추의 진동이 잠잠해짐을 느꼈다.
지금 내가 내 뱃속에 덕순이가 있다는 사실만이
제일 중요한 생각거리였다.
어떻게 하면 덕순이가 건강하게 클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내 생각의 추는
'
현재
'
라는 가운데에 안착했다.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 동안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그 불행에서 나는
덕순이 덕분에 벗어날 수 있었다.
존재 자체가 선물인 소중한 덕순이가,
내 삶에게도 큰 선물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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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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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03
너의 심장 소리가 들려
04
엄마의 걱정
05
안녕 젤리곰
06
너를 만나기 전엔 몰랐던 세계
07
직접 겪는 임신 이야기
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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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개발자로 근무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평범한 엄마입니다.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등에 업고 아기가 낮잠을 자는 동안 최선을 다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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