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젤리곰

9주 차의 기록

by 덕순


뱃속의 아기는 9주 차를 기점으로 배아와 태아로 나뉜다.

신체의 필수 기관이 형성되는 배아 시기를 지나,

점차 사람의 외형을 갖추는 태아 시기에 막 진입한 것이다.


7주 차 때 확인한 덕순이의 모습은 사람의 형태라고 하기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중간에 반짝거리며 뛰는 심장으로만

'이 아이가 살아 움직이는구나.' 하고 느꼈다.


그리고 9주 차 때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젤리 곰'을 만날 수 있었다.


뱃속의 아기가 본격적으로 사람의 형태를 갖추면서 이 등신의 아주 작고 귀여운 몸이 되는데,

팔과 다리가 짧게 튀어나와있어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고 했다.


속설로는 코 우유를 마시고 가면 아이가 더 춤을 춘다고 했다.


그날 나는 낮잠을 자느라 초코 우유를 챙길 정신이 없 서둘러 병원을 향했다.



고맙게도 덕순이는 초코 우유 없이도 손짓 발짓을 모두 뽐냈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것처럼 허우적거리다가,

손을 쭉 뻗고 다리를 흔드는 모습이 웃기면서, 신기하고, 무척 귀여웠다.


이 날 병원 검진도 나름 '합격'이었다.

그 전 검진 때 채혈을 했는데, 피검사 결과도 매우 좋았고 덕순이의 크기, 심장 박동도 모두 정상이었다.


이대로만 쭉 간다면 덕순이는 분명 건강한 아기로 태어날 것이다.




그날 이후 덕순이의 춤추는 모습은 핸드폰에 저장해서 날이면 날마다 보며 그 사랑스러움에 말 그대로 '엄마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머릿속은 점점 온갖 잡생각의 지분은 줄어들고 덕순이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를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과거에

또 어떤 사람은 미래에

생각의 추를 놓고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실패, 상처를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더 미래에 놓인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모두에게 주어진 공평한,

그리고 허망한 결말에 삶이 회의적일 것이다.


나는 지난날을 곱씹으며 후회하고

앞으로의 날을 두려워하고

더 미래의 날에 허망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내 생각의 추는 과거와 미래를 숨 가쁘게 오가며

불안정한 진동을 하였고,

도무지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덕순이가 찾아오자,

덕순이를 향한 온 관심이 생각의 지분을 넓혀가면서 추의 진동이 잠잠해짐을 느꼈다.


지금 내가 내 뱃속에 덕순이가 있다는 사실만이 제일 중요한 생각거리였다.


어떻게 하면 덕순이가 건강하게 클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내 생각의 추는 '현재'라는 가운데에 안착했다.


앞으로 남은 삶의 시간 동안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그 불행에서 나는 덕순이 덕분에 벗어날 수 있었다.


존재 자체가 선물인 소중한 덕순이가,

내 삶에게도 큰 선물을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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