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기 전엔 몰랐던 세계

10주 차의 기록

by 덕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했던가.


덕순이를 알게 된 지 한 달 반이 채 안된 지금의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고, 성장했다.


처음부터 아기를 가질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해왔으면 아기를 갖기 전, 후의 성장의 폭이 가파르진 않겠지만,


나는 어떻게 보면 덕순이에게 사전 예보 없이

점거(?) 당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 전엔 몰랐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덕순이를 만나고 나서야 몰랐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덕순이를 알기 전,

나의 세계는 적어도 '아기'에 있어서만큼은 인과관계가 분명했다.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갖지 않을 것이고,

갖기 위해 노력하면 알아서 아기는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건 당사자의 의지만이 생명을 결정짓는 유일한 변수라고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때가 되면 아기를 자연스럽게 갖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곧 별다른 노력이 없이 '쉽게'라고 받아들여졌다.


아기를 가진 나는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갖지 않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편이었을 것이다.


(노력이 부족하다니, 마치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 대가로 나는 덕순이라는 축복을 받았다.)


이런 나의 단순한 생각은 세 번의 병원 검진을 오가면서, 맘 카페의 몇몇 글들을 보면서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동네에서 제일 큰 분만 전문 산부인과를 다니다 보니 예약을 안 하면 진료받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실 처음 병원을 갔을 때 들었던 생각은

'우리나라가 저출산 국가가 맞나..?'였다.


산모들이 검진받으러 오는 병원이니 산모들이 많은 거야 당연하다마는,

평소에는 마주치기 드문 임산부들이 총집합해 있는 것 같았다.


앞사람도, 내 앞 앞사람도, 그리고 나도.

모두 아기 천사를 품고 있는 예비 엄마 들이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무리 세상이 엉망진창이라

사람들이 점점 결혼을 안 하고 아기를 안 낳는다고

연일 뉴스와 기사가 쏟아져 나와도,


어딘가에선 아기가 나올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엄마 아빠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두 번째,

병원을 오가면서 그곳에 있는 난임센터를 처음 보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내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기가 찾아오는 '자연스러움'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역 수칙이 엄격 한터라, 지금은 보호자조차 출입이 거부되어 병원 문 밖에 기다리는 마당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남자를 보면 궁금증이 생기곤 했다.


'어디가 불편해서 남자가 산부인과 진료실을 가는 걸까..?'

쓸데없는 오지랖과 궁금증이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난임센터가 있는 층에 내렸다.




'난임, 임신이 어려움'

여태껏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였다.


그만큼 나는 임신을 계획한 적도 없고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난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겐 나처럼 갑작스럽게 아기가 찾아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맘 카페의 여러 게시판 중엔 난임 관련 게시판이 있었고, 그곳의 몇몇 글들을 보면서

아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 중에 고민하는 사람들, 하루에 한 번씩 본인의 배에 주사기를 찌르는 사람들,

매일매일 임신테스트기를 하며 한 줄에 절망하는 사람들,


진료 과정의 아픔과 수치스러움을 다 감내하는

예비 엄마들의 글들을 보면


슬픔, 분노, 자책감, 기대와 실망 이런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감히 내가 다 공감할 순 없지만,

덕순이가 무탈하기만을 바라는 내 조바심보다 훨씬 절박하고, 간절할 것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 당사자가 나라면

나는 저 모든 걸 견딜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었다.




비혼 주의, 딩크, 욜로...


요즘 세상에는 행복의 새로운 기준이 생기고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로서의 행복은 약간 철 지난 촌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딘가에선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아기와 건강하게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행복하고 싶은 엄마 아빠들이 있었다.


이것이 덕순이를 알기 전까진 몰랐던 세계였다.


아기를 낳으면 그 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 준 덕순이에게

온 마음을 다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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