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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14화
새것과 헌 것
18주 차의 기록
by
덕순
Feb 18. 2022
나는 둘째의 서러움을 아직까지도 얘기하는
뒤끝 있
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언니를 찍어준 사진은 앨범으로 못해도 한 권은 꽉 채우는데,
나를 찍어준 사진은 마치 에필로그처럼
언니의 앨범 맨 끝 두 장에 모여 있다.
그것마저도 주인공 언니를 빛내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옷 차림새를 보면 더 서럽다.
언니가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남매였음 덜
했을 텐데 하필 자매여서
언니 입던 옷들을 고스란히 물려 입었다.
나는 그렇게
새것보다 헌 것이 많은 둘째였다.
그래서 나는
덕순이에게는 내가 못 가져본
온갖 새것들을 주고 싶었다.
덕순이는
내 삶에서 처음으로 온 딸이고
어쩌면 하나뿐인
딸일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걸 아낌없이 해주고 싶
었다.
이런 나의
어릴 적 서운함과
덕순이를 향한 사랑이 섞여서
묘한 감정이 생겼다.
그것은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덕순이가 딸이란 걸 알게 된 첫 주말,
아
울렛에 가서 이름도 어려운 어느 비싼 브랜드 매장에서
덕순이의 옷을 모자부터 신발까지 다 샀다.
일종의 첫 선물이었다.
아기 옷은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저 조그마한 모자도
4만 원대였고 생각 없이 주워 담으니
한 벌 세트에 16만 원이 훌쩍 넘었다.
계산대 앞에서 금액을
알아차린 순간,
흠칫 놀랬다.
나는 옷만큼은 돈 아까워하는 성격이라
3만 원 넘는 티셔츠도 못 사는데
16만 원이 넘다니...
너무
비싼 거 아닌가란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덕순이에게 미안해졌다.
'하나뿐인 내 딸한테 사주는 건데
비싸다는 생각을 하다니.. 나는 나쁜 엄마일까?'
나는
5천 원짜리 스니커즈를 샀을지언정 덕순이에게 사 주는 것에 가격을 준다는 것은 덕순이에게 무척 잘못하는 것만 같았다.
오히려 쿨하게
, 사치스럽게
더 비싼 것들을 사 줘야
좋은 엄마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기 옷도, 유아용품도 모두 한 철이었다.
아주 잠깐 쓰는 시기가 지나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지라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가장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중에
하나가
중고거래였다.
말이
중고 거래지, 새 상품 위주로 찾아서
원래 가격의 절반 정도로 데려왔다.
새것으로
올라온 육아용품들은 보통 필요할까 봐 미리 사 두었다가 아기가 거부하거나, 비슷한 물건을 선물로 받거나 해서
애매해진 물건들이 많았다.
난처해진 물건을 처분하고 싶은
판매자의 니즈와
잠깐 쓸 물건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나의 니즈가 만나
모두가 만족하는 가격대에 거래가 성사되었다.
'그래, 이런 건 사면서 돈을
번다하는 거야.'
어차피 필요해서 사야 하는 물건
좀 더 싸게 샀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
덕순이를 위한 용품에
가성비를 따지는 게 과연 좋은 걸까 하는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무조건 싼 것, 싼 것을 구하다가
덕순이가 다른 아기들에 비해
귀티가 덜 나면
내 잘못 아닐까
혼자서 심각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성비를 따져서 싸게 사고 싶은 마음과
덕순이를 향한 죄책감이 부딪혀
내 맘엔 혼자만의 고민이 쌓였고
이 고민은 아직도 미해결 상태이다.
다만
고민 끝에 아주 작은 합의점을 찍었다.
'내가 편하고자 사는 물건은 헌 것'
그리고
'덕순이만을 위한 물건은
새것'
이 공식이다.
가령
수유를 할 때 엄마의 팔목에 부담을 덜어주는
수유쿠션은 중고여도 깨끗하다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덕순이의 피부에 직접 닿는 손수건은
지난번 베이비페어에서
최고급 대나무 원단이라는
가상 비싼 것만을 골라 샀다.
덕순이가 입는 예쁜 옷들도
내 능력이
닿을 때 까진
항상 새 옷을 입히고 싶다.
나중에 덕순이가 자라서
함께 어린이날 선물을
보러 간다면 장난감만큼도 중고가 아닌,
덕순이가 고르는 장난감을 사서
집까지 새 박스를 가져가서
직접 박스를 뜯어보는
그 즐거움을 함께
선물하고 싶다.
이 공식이 항상 들어맞진 않다.
내 욕심인지,
오로지 덕순이를 위한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덕순이도 원할 거라고
큰소리치며 용감하게 산
이 예쁜 침대도
따지고 보면 내 욕심이었다.
갓난아기
덕순이야 어디에 자기를 눕히든 모를 텐데,
나는 저 침대에 누워있을
아기 덕순이 모습을 상상하면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울 것 같아
안 살 수가 없었다.
아마 내 고민은
덕순이가 태어나도, 자라도
완벽히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덕순이가
이것만큼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덕순이를 알게
된 지 이제 겨우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직접 안아보지도 못했지만,
모든
걸 다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엄마 아빠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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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12
평범하길 바래
13
너와 나의 연결고리
14
새것과 헌 것
15
존재감 뿜뿜
16
엄마가 된다는 것
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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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개발자로 근무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평범한 엄마입니다.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등에 업고 아기가 낮잠을 자는 동안 최선을 다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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