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과 헌 것

18주 차의 기록

by 덕순


나는 둘째의 서러움을 아직까지도 얘기하는

뒤끝 있는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언니를 찍어준 사진은 앨범으로 못해도 한 권은 꽉 채우는데,

나를 찍어준 사진은 마치 에필로그처럼 언니의 앨범 맨 끝 두 장에 모여 있다.


그것마저도 주인공 언니를 빛내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옷 차림새를 보면 더 서럽다.

언니가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남매였음 덜 했을 텐데 하필 자매여서 언니 입던 옷들을 고스란히 물려 입었다.


나는 그렇게 새것보다 헌 것이 많은 둘째였다.


그래서 나는 덕순이에게는 내가 못 가져본 온갖 새것들을 주고 싶었다.


덕순이는 내 삶에서 처음으로 온 딸이고 어쩌면 하나뿐인 딸일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걸 아낌없이 해주고 싶었다.


이런 나의 어릴 적 서운함과 덕순이를 향한 사랑이 섞여서 묘한 감정이 생겼다.


그것은 일종의 죄책감이었다.




덕순이가 딸이란 걸 알게 된 첫 주말,

울렛에 가서 이름도 어려운 어느 비싼 브랜드 매장에서 덕순이의 옷을 모자부터 신발까지 다 샀다.


일종의 첫 선물이었다.


아기 옷은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저 조그마한 모자도 4만 원대였고 생각 없이 주워 담으니 한 벌 세트에 16만 원이 훌쩍 넘었다.


계산대 앞에서 금액을 알아차린 순간, 흠칫 놀랬다.


나는 옷만큼은 돈 아까워하는 성격이라 3만 원 넘는 티셔츠도 못 사는데 16만 원이 넘다니...

너무 비싼 거 아닌가란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덕순이에게 미안해졌다.


'하나뿐인 내 딸한테 사주는 건데 비싸다는 생각을 하다니.. 나는 나쁜 엄마일까?'


나는 5천 원짜리 스니커즈를 샀을지언정 덕순이에게 사 주는 것에 가격을 준다는 것은 덕순이에게 무척 잘못하는 것만 같았다.


오히려 쿨하게, 사치스럽게 더 비싼 것들을 사 줘야 좋은 엄마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기 옷도, 유아용품도 모두 한 철이었다.


아주 잠깐 쓰는 시기가 지나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지라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가장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중에 하나가 중고거래였다.


말이 중고 거래지, 새 상품 위주로 찾아서 원래 가격의 절반 정도로 데려왔다.


새것으로 올라온 육아용품들은 보통 필요할까 봐 미리 사 두었다가 아기가 거부하거나, 비슷한 물건을 선물로 받거나 해서 애매해진 물건들이 많았다.


난처해진 물건을 처분하고 싶은 판매자의 니즈와 잠깐 쓸 물건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나의 니즈가 만나 모두가 만족하는 가격대에 거래가 성사되었다.


'그래, 이런 건 사면서 돈을 번다하는 거야.'


어차피 필요해서 사야 하는 물건 좀 더 싸게 샀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덕순이를 위한 용품에 가성비를 따지는 게 과연 좋은 걸까 하는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무조건 싼 것, 싼 것을 구하다가 덕순이가 다른 아기들에 비해 귀티가 덜 나면 내 잘못 아닐까


혼자서 심각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성비를 따져서 싸게 사고 싶은 마음과 덕순이를 향한 죄책감이 부딪혀 내 맘엔 혼자만의 고민이 쌓였고 이 고민은 아직도 미해결 상태이다.




다만 고민 끝에 아주 작은 합의점을 찍었다.


'내가 편하고자 사는 물건은 헌 것'

그리고

'덕순이만을 위한 물건은 새것'


이 공식이다.


가령 수유를 할 때 엄마의 팔목에 부담을 덜어주는 수유쿠션은 중고여도 깨끗하다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덕순이의 피부에 직접 닿는 손수건은 지난번 베이비페어에서 최고급 대나무 원단이라는 가상 비싼 것만을 골라 샀다.


덕순이가 입는 예쁜 옷들도 내 능력이 닿을 때 까진 항상 새 옷을 입히고 싶다.


나중에 덕순이가 자라서 함께 어린이날 선물을 보러 간다면 장난감만큼도 중고가 아닌,


덕순이가 고르는 장난감을 사서

집까지 새 박스를 가져가서

직접 박스를 뜯어보는

그 즐거움을 함께 선물하고 싶다.




이 공식이 항상 들어맞진 않다.

내 욕심인지, 오로지 덕순이를 위한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덕순이도 원할 거라고 큰소리치며 용감하게 산 이 예쁜 침대도 따지고 보면 내 욕심이었다.


갓난아기 덕순이야 어디에 자기를 눕히든 모를 텐데, 나는 저 침대에 누워있을 아기 덕순이 모습을 상상하면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울 것 같아 안 살 수가 없었다.




아마 내 고민은 덕순이가 태어나도, 자라도 완벽히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덕순이가 이것만큼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덕순이를 알게 된 지 이제 겨우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직접 안아보지도 못했지만,


모든 걸 다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엄마 아빠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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