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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16화
엄마가 된다는 것
20주 차의 기록
by
덕순
Feb 22. 2022
지금까지 나는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심오하게 생각해본 적도,
자세히 파고들어 공부를 해본 적도 없다.
임신을 알게 된 이후부터
모든 것을
직접 겪고 부딪히며 알아가고 있다.
학창 시절 얇게 배운 임신과 출산에 관한 지식들,
인터넷에 떠도는 경험담,
다소 우울한 이야기들이 많았던 웹툰까지...
간접적으로만 알아왔던 임신과
내가 직접 겪은 임신은
여러모로 차이가 많았다.
내 깨달음의 흐름은
시간의 순서대로 배열하자면,
고등학생 시절부터로 돌아간다.
17살 고등학교 1학년
,
가정 시간에 배우는 첫
단원이 바로 임신과 출산이었다.
주입식 교육의 폐헤로
선생님의 필기를 열심히 받아 적어
외울 생각만 했던지라
별 생각과 감흥이 없었다.
이슬,
오로,...
몇 가지 생소한 단어들이 나왔었지만
그것들이 언제 나오고 며칠 동안 지속되는지
외우는 것에만 신경이 쏠려있었다.
그럼에도 기억이 나는 것은
선생님께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일어나는 몸의 변화보다는,
여성으로서 아이를 출산하는 것에 대한
숭고함을 강조하셨다는 것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고통이자
일종의 축복이란 것이었다.
17살의 나에겐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와는 앞으로도 관련이 없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화학 선생님께서 임신을 하셨다.
점점 배가 부풀어 오르시더니
만삭에 가까웠을 때에는 걷는 자세조차 불안정해 보일 정도로 배가 나오셨었다.
만삭
의 선생님은 수업 시간 도중에 임신에 대해 적나라한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건 나에게 조금 충격적이었다.
첫째를 낳으셨을 무렵 선생님은 하루 종일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말이
안 통하는 아기 옆에서 젖을 짜내셨다고 했다.
하루 종일 양쪽 젖을 짜내는데
젖꼭지가 남들과 조금 달라
더 고통스러우셨다고 했다.
마치 '젖소'가 된 기분이었다고 하셨다.
아직도 이 말이 기억에 남는 것은
그때 반에 있던 모두가 경악할 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아이를 안고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며 수유를 할 것 같은
내
상상 속의 모유수유가
'젖 짜는 젖소'가 되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이때까지도 나는 너무 어려서
왜 젖을 직접 짜야했는지,
그런 일을 겪지 않으면 안 됐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회사를 다닐 무렵,
'아기 낳는 만화'라는 웹툰을 접했다.
그 웹툰이 주는 충격은 너무 크고 신선했다.
여성이 겪는 임신 증상들과 그 불편함, 아픔에 대해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하는데,
난생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난임센터에서 인공시술을 받는 기분을
'돼지가 되어 발정제를 투여받는 기분'으로 묘사한 것,
임신 증상 중 하나로
겨드랑이, 인중 등이 새까매진다는 것 등이었다.
엄마의 몸이 아기를 위해 철저히 희생되는 과정을 보여준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했다.
이런 과정을 왜 교과서에는 가르치지 않았느냐며
분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쯤부터 나
는 임신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내 인생을 포기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교과서에서 알려준 숭고함이란 하나도 없는
그저 암컷 포유류가 되어
번식을 하는 과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인셉션의 팽이처럼 내 마음
깊숙이 박혀서 결혼을 했을 때에도 나는
남편의 바람과는 달리 최대한 아기를 늦게 낳고 싶은 입장이었다.
그리고 2020년 12월 어느
말일쯤에 예기치 않게 덕순이가 찾아왔다.
2021년 1월 17일
아직도
잊지 못할 그 일요일 아침에 나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에게 닥쳐올 수많은 시련의 파도를 짐작했다.
돌이킬 수 없으니
이제 시작인 것이었다.
내 인생은 앞으로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처럼, 아기 키우는 만화의 작가처럼, 아기를 위해 희
생당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5개월이 훌쩍 지난
20주 차인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니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생각보다 임신으로 인한 고통은
다양하고, 예기치 못하고, 컸었다.
내 몸의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보다
내 몸이 알아서 아기를 위해 변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갑자기 찾아온 입덧은
그중에 가장 큰 고통이었다.
생각도 못했던 허리 통증은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데,
예전엔 번쩍 들었던 물건들도 쉽사리 옮기지 못한다.
커진 자궁으로 인해
점점 소화하기가 불편해지는데
식욕은 날마다 늘어나서 이 또한 힘들었다.
가슴은 또
왜 이렇게 커지면서
못생기게 쳐지는지.
정말 말 그대로
'아기의 밥통'이
되려 하는지.
거울을 볼 때마다 속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
걱정인 건 앞으로 이런 시련이 훨씬 더 남았다는 것이다.
덕순이 초음파 사진을 모아둔 앨범
그리고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점이 또 하나 있었다.
임신으로 인한 행복감은
교과서에서 알려준 것보다
훨씬 더 숭고하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임신이 뜻대로 되지 않아
고통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갑자기 찾아온 덕순이에게 느낀 고마움,
검진 전 날마다 밤을 설치며 걱정하다가
너무 멀쩡하게 잘 움직이는 아기를 봤을 때의 그 행복,
남들만큼 평범하게 건강하다는
검사 결과를 문자로 받고
온몸에 힘이 풀릴 정도로 긴장이 놓이는 안도감,
첫 태동을 느꼈을 때
놀라움과 기쁨,
원하는 성별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행복함...
이 모든 느낌은
학교에서 알려주지도,
시험을 본 적도 없는
내가 집적 겪어서 알게 된 것들이었다.
나는
자신 있게 앞으로 더 많은 시련이 남았겠지만, 그만큼 더 많은 행복 또한 주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행복은
앞으로의 시련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 행복 중에도
열달 동안 품은 아기를 낳아,
처음으로 끌어안는 그 순간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벅차오르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기가 커가면서
엄마를 알아보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줄 때,
나는 내가 희생해야만 하는 모든 것들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이,
또 우리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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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개발자로 근무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평범한 엄마입니다.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등에 업고 아기가 낮잠을 자는 동안 최선을 다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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