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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18화
익숙함과 이별할 때
22주 차의 기록
by
덕순
Feb 26. 2022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함을 곧 안정감으로 느낀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도
그 일상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가끔씩 누리는 소소한 여행을
소중한 일탈로 간직한다.
만약 매일매일을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해야 한다면?
안정적인 것을 특히나 좋아하는 나는 당연하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매일 예측할 수 없는 일상은
꺼려
질 것이다.
일상은 평범하고 지겹기 때문에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그 일상과 이별해야 할 때가 다가올수록
조금 덜 힘들게 이별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그 일상은
매일매일 나와 남편,
우리 가족 구성원 단 둘이서 겪는 생활들이다.
2018년 12월 15일
,
우리 둘은 결혼을 했고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가족이 되었다.
평생을 따로 살다가
하루 종일 붙어있자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많이 싸웠던 것 같다.
싸우고
화해하다 보니
어느덧 서로에게 맞춰가고 익숙해졌다.
2020년 4월 19일
,
우리 둘은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갔다.
둘이 살긴 무척 좁았던 18평 낡은 전셋집을
뒤로하고 32평의 넓고 환한 새 집으로 살림을 꾸렸다.
취향껏 인테리어 공사도 마친 터라
벽지 바닥 천장 모두 내가 원하는 색으로 단장을 한 새 집이었다.
이곳에서 나와 오빠는
처음으로 갖게 된 집이 너무 좋아서
주말에 집 안에서만 뒹굴거리며 게으름도 피워보았고,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 잔치를 벌이며
어깨를 으쓱해보기도 했다.
이곳은 그렇게
우리들의 일상의 무대가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출근날 아침 알람부터 시작한다.
새벽 6시 10
분,
첫 알람이 울리면 내가 먼저 일어나서 씻고 돌아와 자고 있는 오빠를 깨운다.
둘이서 출근 준비를 하면
7시쯤 집을 나오게 된다.
집을 나오기 전
에 고대기를 제대로 껐는지 확인해보고
식탁 의자, 화장대 의자, 책상 의자 모두 올려놓고
로봇 청소기를 틀어놓는다.
우리는 각자 회사에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고,
점심에 밥 먹는다고 잠깐 연락을 하고,
다시 오후에 일을 하고,
대부분 내가 먼저 퇴근을 한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척 가볍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에 혼자 돌아와
불을 켜고
로봇청소기가 어디 걸리지 않고 제대로 청소를 했는지 확인하고
씻고 나와 저녁으로 시원한 수박을 먹는다.
평일 저녁엔 제대로 밥을 차려먹지 않고
가볍게 과일, 시리얼 등으로 끼니를 때운다.
샤워를 하고 조금 있으면
오빠가 퇴근하고 돌아온다.
오빠
도 씻고 나처럼 간단하게 저녁을 찾아 먹는다.
그리고 우리 둘은 거실 소파에 앉아
<
맛있는 녀석> 들을 보거나,
뉴스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고
오빠가 핸드폰 게임을 할 때 괜히 심술을 부리며 방해하고,
각자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10시 전에 내가 먼저 졸려서 자러 간다.
오빠는 나를 재운다며 같이 침대에 누워
얘기하다가
내가 잠이 들 때쯤 나가서
혼자만의 자유 시간을 즐기다 온다.
(아마 오빠가 하루 일과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 같다.)
평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같은 일상 속에 우리는 지겨움과 행복함을 함께
느낀다
.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이 오면
아침 일찍 눈을 뜨는 나는
먼저 일어나
집안 정리를 찾아서 하다가,
오빠가 먹고 싶어 했던 주말 메뉴를 한 상 가득 차려준다.
주방의 밥솥, 인덕션, 오븐은
주말 아침에만 바쁘게 움직인다.
10시~11시 사이 아점으로
주말 특식을 먹고 나면
잔뜩 배가 불러서
둘이 커피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다가
어디로 놀러 나갈지 결정하고
나갈 준비를 한다.
집도 좋아하지만
둘이서 나가 노는 것도 무척 좋아해서
주말은 대부분 다른 약속 없이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며 보낸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면
다시 월요일 아침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제
이곳에서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이 일상과
이별해야 할 때가 다가온다.
이별이란 말이 거창하긴 하지만,
덕순이가 세상에 나올 때쯤이면
앞서 줄줄이 늘어놓았던
월요일부터 주말까지의 일상이
180도 변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 내가 8월 중순부터
휴직에 들어가면서
많은 것들이 서서히 바뀔 것이다.
만삭의 몸으로
덕순이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이제 얼마 남지 않는
소중한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그때에는
아무 약속 없이
혼자만 있는 그 적막함을
그 심심함을
감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덕순이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
많은 것들이 급격하게 변할 것이다.
나도 덕순이도
서로에게 적응하는 데 무척 힘이 들 것이다.
월요일과 금요일
,
그리고 주말의 경계는 사라지고,
매일매일이 전쟁 같은 육아의 연속일 것이다.
덕순이를 두고 혼자 외출할 수 없으니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정말 큰맘 먹고 외출을 한다면
같이 들고 나오는
유모차, 기저귀, 젖병 온갖 살림이 한 짐일 것이다.
오빠도 잔뜩 예민해진 나를 돌보느라
지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힘든 건 아마도
덕순이 일 것이다.
9달 동안 아늑한 뱃속에서 지내다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얼마나 무서울까?
우주 한가운데에 붕 떠있는 공포라고 하던데
그것은 아기가 견디기엔 아마 너무 큰 공포라
매일매일 안아주고 어르고 달래도
칭얼거리고 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우리 셋은
지금의 일상과 이별하고
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것이다.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세명 모두 몹시 힘들겠지.
하지만 아무리 새 옷도
입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새 일상이
익숙한 헌 일상이 되어가면
이 또한 지겹고 평범하고 소중한 나날들이 될 거라 생각한다.
다가올 이별 뒤에는
새로운 만남이 있고
새로운 만남은 또 그 끝에 이별이 있다.
그 사이에 일상이 있어
우리의 삶은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다.
덕순이와 나 그리고 남편, 우리 셋이 함께하는
월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주말이
어떤 그림일지는 아직 짐작할 수 없지만,
먼 미래에
그 일상과도 이별할 때가 다가오면
무척 슬플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셋이 그리는
일상은 행복하고 아름답고 소중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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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16
엄마가 된다는 것
17
제일 행복한 순간
18
익숙함과 이별할 때
19
어차피 복불복
20
행운을 끌어당기는 우리들
너를 품었던 시간의 기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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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개발자로 근무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평범한 엄마입니다. 백일이 갓 지난 아기를 등에 업고 아기가 낮잠을 자는 동안 최선을 다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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