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변수는 무척 다양하고,공부는 성공의 수단이기보단 단지성공할 수 있는 확률을 높여줄 뿐이라는 사실을결국 그 '성공'을 이루지 못했을 때어른이 다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억울한 일이지만우리 사는 이 세상은노력만 한다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노력을 안 해도 가끔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복불복이기 때문에마음 한편이 어쩐지 후련할 때가 있다.
인생만큼 거창한 대상이 아니지만, 나에게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임당 검사도어쩐지 마음이 편안한 이유도 '어차피 복불복'이기 때문이었다.
임당 검사는임신성 당뇨 검사의 줄임말이다.
다시 말해임신을 했을 때 당뇨가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이다.
20주 차 정밀초음파 검진 때 나는 간호사 선생님께 시약과 함께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병원 방문 한 시간 전에약 한통을 다 마시고 와서병원에서 채혈을 한다고 했다.
그 약은 악명이 높았다.
너무 달아서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라고 하니,단 것 좋아하는 나지만먹고 싶지 않았다.
설탕 덩어리 약을 먹고내 몸이 당을 얼마나 빨리 처리할 수 있는지그 능력을 검사하는 것이었다.
나는 2018년도부터 지금껏 약속을 제외한 평소 같은 저녁은항상 과일을 먹는 습관을 들였다.
(참고로 2018년도는 채식에 도전했던 질풍노도의 해였다.)
점심을 먹은 지 한참 지난공복인 상태여서 소화에 부담이 없고금방 배가 꺼지더라도잠을 일찍 자기 때문에저녁에 먹는 과일이 제일 몸에 잘 맞았다.
덕분에 통통했던 몸도 날씬해져서결혼식 때는 인생 몸무게를 찍고예쁜 신부가 될 수 있었고,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건강검진 때 수치도 매우 좋았다.
공복혈당도 매우 낮고중성지방도 평균보다 한참 아래였다.
과일은 당 덩어리라는 오명을 썼지만과일 그 자체를 온전히 먹으면꽤 이상적인 음식이었다.
좋아하는 과일을 마음껏 먹으니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너무 괴로운음식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으로부터해방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과일을 신봉하고 사랑하는 나에게임당 검사는 또 다른 관문이었다.
아무리 평소 내 몸에 자신감이 있다 해도 임신은 처음이어서 과연 이 식단을 유지해도 될지는 판단이 안 섰다. 그도 그럴 것이 맘 카페에선 수박이 당을 올리고 아기를 키우는데 특효라는 말이 많았다. 그래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과일이라고들 했다. 니는 여름 내내 수박만 저녁으로 먹기 때문에일찍이 담당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저녁에 밥 대신 수박을 먹는데 괜찮을까요?'
나를 봐주시는 의사 선생님은무척 자유로운 편이시다.
술, 담배만 빼고임산부는 먹지 말라는 세상 많은 음식들을별다른 제재 없이 허락해주셨다.
지나치지만 않으면 뭐든지 괜찮다는 식이시다.
이번에도 역시웃으시면서 마음껏 먹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덧붙이셨다.
어차피 임당은 식단의 문제가 아니라고.
호르몬의 문제기 때문에걸릴 사람은 뭘 먹어도 걸리고안 걸릴 사람은 뭘 먹어도 안 걸린다고 하셨다.
다시 말해 복불복인 것이었다.
그 누가 임당이 걸리는 호르몬을 갖고 싶어 할까?
모든 예비 엄마들은당연 피하고 싶겠지만어차피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이었다.
임당 이어도 내 잘못이 아니고,임당이 아니어도 내 공로가 아니었다.
그저 운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어쩐지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내가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출출할 때마다 군것질을 해도 저녁에 수박을 한 바가지씩 먹어도괜찮다는 마음의 위안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임당이철저한 식단 관리로 미리 막는 질병 같은 거였다면,
나는 아마노력을 했는데도 임당이 확정되면억울 해했을 테고노력을 안 하다가 임당이 확정되면 스스로를 자책했을 것이다.
세상을 수학 공식처럼 본착각 때문에30살이 되도록 지쳤던 나에게복불복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나이를 아주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돌이켜 생각해보면억울할 것도,자책할 것도 없는 이 세상이 오히려 맘에 든다.
그래서 그냥 빌어본다.
부디 무사히 통과하기를
노력하진 않았지만 운이 따라주기를.
이 불량한 엄마는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을 한입 가득 먹으며 분에 넘치는 바람을 해본다.
ps. 처음 이 글을 쓴 뒤 한참 지난 지금 말하자면, 이때 임당 검사 결과는 '재검'이었다. 평균보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다행히 다시 검사를 받고 나서야 '정상'판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