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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jin Jeung Oct 10. 2024

화려한 그녀의 소박한 식사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삶과 일화

영화 '클레오파트라' 스틸컷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 중에는 유명세가 너무나 막강한 나머지 그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몇 있다. 가령 채플린의 경우 코믹한 ‘트램프’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그는 수십 편의 영화를 찍은 감독이자 진지한 정극 연기로도 인정받은 배우다. 난해한 추상화로만 알려진 피카소도 사실주의 화가들 못지않게 세심한 스케치에 능했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헐리우드 영화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있다. ‘세기의 미녀’, ‘8번 결혼한 여자’라는 타이틀이 그녀의 전부는 아니다. 타고난 배우로서의 재능과 영화에 대한 열정,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남에게 베푸는 선한 영향력 등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여러 모로 헐리우드의 전설로 남을 만한 다채로운 면모를 가지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1932년 영국 런던에서 미술중개상 아버지와 연극배우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인이었던 테일러 가족은 경제적으로 유복했고 그녀는 발레와 노래, 승마 등을 배우며 공주처럼 자라났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짙어지자 일가는 1939년 미국으로 귀국, LA에 자리를 잡았다. 헐리우드와 인연이 닿은 것은 이때의 일로, 1942년 10살의 엘리자베스는 아역배우로 데뷔했다. 아역배우로 이름을 날리다 1951년 ‘젊은이의 양지’에 출연하며 성인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아역배우들이 성인이 돼서까지 롱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을 보면, 엘리자베스의 커리어는 극히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1950년대 최고 인기작이었던 ‘자이언트’를 비롯해 ‘클레오파트라’,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등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뛰어난 미모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코미디에서 로맨스, 스릴러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소화해 내는 연기력을 가졌다. 별도의 연기교육을 받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천부적 재능이라 할 만 하다. 

영화 외적으로 엘리자베스를 유명하게 만든 요인은 8번에 이르는 결혼과 이혼이다. 얼핏 생각하면 화려한 연애사를 써온 것 같지만 사실 그녀의 결혼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못했다고 한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재벌집 첫째아들‘ 콘래드 니키 힐튼 주니어와 첫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알코올 의존증에다 도박중독이었고 그 사실을 약혼기간 동안 숨겨왔다. 한술 더 떠 본인보다 주목받는 아내를 시기해 임신한 엘리자베스의 배를 걷어차는 가정폭력까지 저질렀다. 


짧은 결혼생활을 끝낸 후 엘리자베스는 안정된 삶을 위해 20세 연상의 배우 마이클 와일딩과 결혼했다. 영국 출신의 와일딩은 엘리자베스를 따라 미국에 오지만 별다른 배역을 맡지 못하면서 부부 사이가 벌어진다. 그는 결혼 전 동료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와의 관계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테일러가 촬영으로 집을 비운 사이 스트리퍼를 부른 일을 계기로 둘은 갈라섰다. 


세번째 남편 마이크 타드와는 사별이라는 엔딩을 맞았다. 엘리자베스가 가장 사랑한 남자로 알려진 그는 유대인 영화제작자였고, 남편을 따라 그녀는 유대교로 개종했다. 하지만 결혼한 지 불과 1년만에 타드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엘리자베스는 상심한 마음을 달래줬던 가수 에디 피셔와 재혼했다. 문제는 그가 테일러의 절친 데비 레널즈의 남편이었다는 것. 두사람은 대중에게 큰 비난을 받았으나 피셔가 작정하고 멘탈이 약해진 엘리자베스에게 접근한 것이 알려져 등을 돌렸던 팬들은 나중에 돌아왔다. 친구 데비와도 결국 화해했다고. 


웨일즈 출신 배우 리처드 버튼과는 한 번 이혼 후 재결합했다가 또 다시 헤어지는 과정을 겪었다. 두 사람은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만났고 버튼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역을 연기했다. 엘리자베스와 리처드는 다혈질적 기질 때문에 자주 다퉜지만 후일 그녀는 “죽은 후 함께 묻히고 싶다”고 할만큼 그에게 진심이었던 것 같다.  

7번째 결혼 상대는 군인 출신의 정치인 존 윌리엄 워너였다. 이때 엘리자베스는 배우라는 본업을 잠시 내려놓고 정치인의 아내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하지만 내조가 우선인 삶에 적응하지 못한 그녀는 우울증과 폭식증을 겪었다. 두 사람은 결국 이별을 택하지만 이후에도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마지막 결혼은 20세 연하의 블루칼라 노동자 래리 포튼스키였다. 트럭 운전사라는 직업 때문에 언론들은 그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였고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포튼스키는 끝내 엘리자베스와 이혼했다. 

남들보다 많은 결혼 횟수 때문에 왠지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는 팜므 파탈 이미지가 붙었는데, 중년 이후의 행보를 보면 오히려 이와 반대다. 그녀의 사회적 공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는 절친 록 허드슨의 에이즈 감염이었다. 이전에도 심장병 연구재단을 지원하거나 아프리카 병원 건립 자금을 내는 등의 기부를 해왔지만 친구의 불행은 엘리자베스의 내면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온 듯 하다. 


그녀는 허드슨이 입원해 있을 때 남몰래 병문안을 다니는가 하면 신종 질병이었던 에이즈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찾아다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최초의 에이즈 모금행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에이즈가 ‘천형’으로 불리며 감염자들을 죄인처럼 낙인찍던 시절, 엘리자베스의 활동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는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로널드 레이컨 전 대통령은 그녀의 설득에 감화돼 국가 차원에서 에이즈에 대응할 것을 선언했다. 


금수저로 태어나 만인의 사랑을 받고, 평생을 화려하게 살다 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차별받는 소수자를 위해 헌신했다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반전’이다. 그녀는 미모와 부, 명성 같은 것들에 반드시 행복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자연인 엘리자베스의 사생활은 생각보다 소탈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헐리우드 대표 미녀로 불리면서도 대식가로 유명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영화 ‘황해’에서 김 먹방을 선보인 하정우처럼, 현역 시절의 엘리자베스는 맛깔나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먹방 배우였다. 그녀가 좋아한 메뉴는 바로 빵이다. 기다란 바게트에 베이컨과 땅콩버터를 가득 채워 점심으로 먹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대스타의 식사치고는 꽤나 소박한 느낌이다. 동시대에 활약한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역시 바게트에 땅콩버터와 베이컨, 바나나와 초콜릿 등을 듬뿍 채운 ‘풀스 골드’ 샌드위치를 즐겼다. 땅콩버터는 미국 어린이들의 도시락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재료이기도 하다. 


미국식 식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땅콩버터의 기원은 남미 원주민들의 전통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운 땅콩을 으깨 먹었다고 하며, 원주민 요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불명이지만 1884년 캐나다의 마르첼로 길모어 에드슨이라는 인물이 구운 땅콩을 걸쭉하게 만들어 빵에 발라먹은 것이 최초라고 알려졌다. 본격적으로 땅콩 제품을 상업화한 인물은 미국의 조지 워싱턴 카버이다. 구운 땅콩에 팜유를 넣고 곱게 갈아낸 후 설탕, 소금을 첨가하는 레시피는 오늘날까지도 전해져 내려온다.  

돼지고기 삼겹살을 훈연한 베이컨은 가히 미국의 국민 식재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는 대중적인 음식이 아니었으나 1920년 “든든한 아침 식사에는 베이컨 에그가 있어야 한다”는 마케팅에 힘입어 소비가 급증했다. 미국식 아침식사라고 하면 토스트에 얹은 베이컨 에그와 시리얼, 오렌지 주스와 커피 조합을 연상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한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청춘스타로 활동하던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 사이, MGM 구내식당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샐러드’라는 메뉴가 있었다고 한다. 로메인 레터스와 워터크래스(물냉이)를 기본으로 잘게 찢은 칠면조살과 살라미, 에멘탈 치즈 구성이다. 드레싱은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이다. 수십년 전 레시피지만 요즘에도 왠지 인기 있을 것 같은 메뉴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에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칠면조는 알고 보면 영미권에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통한다. 닭고기보다 기름기가 적기 때문인데 실제로 칠면조살을 맛보면 심심하고 퍽퍽하다 느끼게 된다. 한 마리당 10kg 가량인 칠면조는 명절에 일가친척이 모였을 때 다같이 나눠 먹는 ‘가성비’ 메뉴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명절 후 남은 음식 처리법을 팁으로 알려주듯, 서양에서는 남은 칠면조를 샐러드나 샌드위치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스위스 치즈는 ‘톰과 제리’에서 많이 보았을, 구멍이 뽕뽕 뚫린 연노랑색 치즈다. 짜고 진한 맛일 것 같지만 의외로 풍미가 연하고 은은한 호두향이 난다. 칠면조와 마찬가지로 ‘저탄고지’ 식단에 단골로 나오는 식재료다. 한국에서는 낯선 물냉이는 흔히 ‘크레송’이라고 불린다. 겨자과 식물이라 톡 쏘는 향이 나며 스테이크처럼 묵직한 육류와 잘 어울린다. 영국식 애프터눈티 샌드위치나 샐러드로도 자주 활용된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은 냇물에서 캔 물냉이를 삶은 감자에 곁들여 먹는다. 

다이어터들에게 샐러드는 일종의 바이블과도 같은 존재인데 살을 뺄 목적이라면 마요네즈 대신 생채소를 올리브유에 살짝 버무리는 쪽이 정석이다. 요즘은 유분이 적고 유산균이 풍부한 그릭요거트를 드레싱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와인을 오랜 시간 숙성시켜 만드는 발사믹 식초는 밍밍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생 야채에 깊은맛을 더한다. 


그밖에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좋아했던 음식으로는 스펀지케이크에 과일과 크림, 와인 등을 층층이 올린 트라이플과 인앤아웃버거가 있다. 고지방식을 딱히 피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급격히 체중이 불어났을 때는 하루 4km씩 꾸준히 조깅을 하고 탄수화물을 제한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요리와 블러드 오렌지 주스도 그녀의 최애 메뉴였다. 남유럽에 흔한 블러드 오렌지는 이름 그대로 붉은빛이 나는데 보통 오렌지에 비해 신맛보다 단맛이 강하다. 한국에서도 블러드 오렌지 주스를 구매할 수 있지만 가격이 꽤 비싼 편. 


화려한 배경과 타고난 재능으로 꽃길만 걸었을 것 같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삶의 어둠은 그녀에게도 존재했고, 말년의 선행은 어쩌면 내면의 결핍을 조금이라도 채우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소탈했던 그녀의 일상사와 식성을 보면 전설적인 월드스타에게서 뜻밖의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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