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타우너 vs 멜팅소울 vs 파이브가이즈
햄버거 하면 정크푸드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요즘 와서는 그런 이미지가 조금씩 옅어지는 분위기다. 유기농 채소에 건강한 재료를 사용한 수제버거는 이미 2000년대 초반 일본 브랜드가 들어오면서 반짝 유행한 적이 있다. 조금 비싸지만 번도 고기도 고급스러운 느낌이라 자주 갔었는데 역시 가격의 벽이 컸던건지 몇 년 못가 철수했던 기억이 난다. 모스버거도 한국에서 성적이 신통치 않아 매장이 별로 없고 메뉴도 예전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
프랜차이즈의 부침이 심하다는 한국시장 진출은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여러 모로 도박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여러 업체가 경쟁하는 와중, 내 기준으로 인상적이었던 버거 맛집을 꼽아봤다. 다른 햄버거집에 없는 개성을 지닌 가게들이 오래 갔으면 하는 마음인데... 안 팔리는 메뉴가 은근슬쩍 없어지는 현상이 개선된다면 마이너 입맛들도 존중받는 세상이 올까 기대해 본다.
첫 번째 소개할 맛집은 광화문, 안국, 청담 등 여러 지점을 갖고 있는 다운타우너. 남푠님과 함께 방문한 곳은 광화문점으로 파이낸스센터 지하에 있다. 이곳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수제맥주와 하이볼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 아무래도 직장인들이 많은 동네다 보니 그런건가...
특이하게 이곳에는 마운틴듀가 음료 메뉴에 있다. 남푠님의 픽은 베이컨 치즈, 나는 기본 다운타우너 버거를 골랐다. 양상추, 토마토의 퀄이 꽤 괜찮다. 살짝 오버쿡된 느낌의 패티는 꼬소~하니 불향이 살아있다. 샛노란 치즈가 식욕을 한결 돋운다. 프렌치 프라이는 여러 가지 토핑을 골라 곁들일 수 있는데 치즈소스의 늬끼~한 맛이 감자와 궁합이 좋다. 3000원에 음료 무한리필이 가능한 것도 큰 강점이다. 다음번엔 주류를 곁들여 마셔보고 싶은...
https://place.map.kakao.com/1065020423
다음번 주자는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에 있는 멜팅소울이다. 조금 늦은 점심을 먹을 곳을 찾다 우연히 발견한 맛집임. 푸드코트에 그닥 끌리는 메뉴가 없어서 몇바퀴를 돌았는데, '이럴땐 무난하게 가자' 싶어서 버거를 택했다. 버거 위에 왠 오렌지 주스가 올라갔나 궁금한 마음도 있어 주문했는데 얘의 정체는 바로 치즈다.
컵 모양의 칸막이(?)를 제거하면 좌르르 폭포처럼 쏟아지는 치즈가 버거를 흠뻑 덮는다. 치즈러버인 나로서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었다...ㅠㅠ 보다시피 손으로 먹는건 불가능하고 나이프를 사용해 잘라 먹는다. 치즈 대신 화이트 소스를 올린 버전도 있다. 생각지 않게 개성 넘치는 버거를 만나 매우 흡족했던 한끼였다.
https://place.map.kakao.com/1825119648
끝으로, 웨이팅을 거쳐 간신히 먹을 수 있었던 파이브가이즈다. 최근에 지나가다 보니 오픈발은 예전만 못한 듯 하다. 파이브가이즈 체인점은 2년 전 유럽여행 때 정말 어디가나 있었다. 다만 타깃이 좀 다른 것인지 버거보다 쉐이크 종류를 더 미는 듯... 쌓여 있는 땅콩들은 공짜라서 자꾸 손이 가지만 사실 안먹어도 그만인 것 같다. 근데 견과류 알러지 있는 사람들은 아예 매장에 못갈수도?
은박지에 감싼 버거는 김 때문에 눅눅해져서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속재료 하나하나가 따로 놀지 않고 융합되는 느낌...치즈가 적당히 녹아 고소한 맛이 더 업그레이드된다. 감튀는 양념이 특히 맛있다. 오래전 파파이스에서 팔던 케이준 감자가 생각나는데, 짭짤한 양념 덕에 케찹 없이 그냥 먹어도 맛나다. 소스는 케찹에 후추, 맥아식초 등 다양하게 골라 먹을 수 있다. 피시 앤 칩스에 식초를 뿌린다는 영국인들 취향을 반영한 것 같은....
다만 파이브가이즈에는 맛을 떠나 치명적 단점이 있다. 음료가 너무 과하게 비싸다는 것! 패스트푸드점 탄산음료가 꽤 헐값에 납품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폭리가 의심되는 수준이다. 차라리 쉑쉑처럼 진저에일, 루트비어 같은 특수한 음료를 판다면 모르지만.. 아무튼 파이브가이즈 버거는 테이크아웃을 추천하고 싶다.
https://place.map.kakao.com/614833390
*사실 사먹는 버거와 별도로, 나의 인생버거는 따로 있다. 대학시절 첫 미국 방문 때 공원 바비큐 파티때 먹었던 버거다. 좋아하는 채소를 듬뿍 넣고, 육즙가득 갓 구운 패티를 얹으면 푸짐한 셀프 버거가 완성된다. 은은하게 불맛이 살아있는 그때의 와퍼는 새로운 세계에 설레던 스무살 때의 나를 떠올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