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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데 뭐부터 할까?

by 알쓸채은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아이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고요. 진짜 학부모의 세계로 들어온 친구에게 축하를 전했더니 1년 학부모 먼저 한 제게 친구가 묻습니다.


"학교 1년 보내고 나니 이건 꼭 하고 갔으면 싶은 거 있어?"


제 머릿속에 순간 떠오른 생각은...


"혼자 똥 닦을 수 있어?"


아이 공부와 같은 이야기를 내심 기대했던 친구는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이야기해 달라고 했지만 저는 나름 진지했어요.


지난해 제 눈에는 여전히 아기 같은 저희 집 아이가 학교에 간다고 하니 온 만 가지 생각이 밀려오더라고요. 적응도 잘 못하고 낯도 심하게 가리는 아이가 학교에 잘 갈 수 있을까에서부터 시작해 책가방은 뭘 사야 할지, 옷은 어떻게 입혀야 할지, 학용품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공부는 얼마큼 해야 할지, 친구는 사귈 수 있을지 등등...


수많은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제일 먼저 시작했던 건 젓가락질 연습이었어요. 홈런볼을 나무젓가락으로 먹게 하는 맹훈련을 하며 젓가락질을 시켰는데요. 막상 학교에 가보니 젓가락질은 못해도 되더라고요. 젓가락질 못하는 친구들은 개인 수저 들고 오라고...


학교 가면 젓가락질할 줄 알아야 된다고 아이를 닦달했는데 그 노력이 허무한... 그러면서 생각하길 엄마 욕심에 아이가 학교 가기 전에 학교 생활에 필요한 능력치를 모두 쌓고 척척척 학교 생활을 했으면 싶지만 학교는 그런 곳이 아니었어요.


학교는 아이가 독립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곳이지 독립할 조건을 모두 갖춰서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 아이가 학교 가기 전 준비해야 할 것은 대체 수단이 없는 것만 챙기면 되어요. 그다음은 아이의 몫이니까요.



스스로 똥 닦는 법은 배우자



그 대체 수단이 없는 것 중의 하나가 큰일을 보고 뒤처리를 하는 거예요. 학교는 보육보다는 교육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곳이라 선생님은 가르치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쉬는 시간 아이가 화장실을 가고, 친구들과 놀고, 수업 교실을 이동하고, 점심 먹고 약을 챙겨 먹는 일은 아이가 해나가야 하는 일이에요.


저희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는 화장실에 빨간 버튼이 있었어요. 큰 일을 보고 아이 혼자 뒤처리를 하지 못할 경우 빨간 버튼을 누르면 선생님이 도와주셨지요. 하지만 초등학교 화장실에 빨간 버튼이 있을 리가 만무해요.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응가하고 싶다고 수업 시간 갑자기 집에 가겠다는 아이도 있고, 수업 종이 쳤는데도 아이가 교실로 돌아오지 않아 화장실에 찾으러 가면 큰일을 보고 뒤처리를 못해 이도 저도 못하며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해요.


스스로 똥 닦는 법이 생각보다 큰 과제인지 <슈퍼 히어로의 똥 닦는 법>이라는 그림책도 있더라고요. 아이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주니 자기 안다며 딩동댕 유치원에서 봤다며 큰일을 보고 나면 휴지를 몇 칸 써야 하는지까지도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꽤나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해요!


image.png 안영은, <슈퍼히어로의 똥 닦는 법>


아이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런저런 걱정들이 밀려오신다면 선생님의 도움 없이도 학교 내에서 아이가 생존할 수 있는 능력. 특히 아이의 생리 현상과 관련된, 선생님의 손이 가장 닿기 어려운 부분부터 챙겨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플 때 꼭 챙겨 먹어야 하는 아이 가루약 타 먹기 같은 것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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