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학기 말 유연화 수업을 하면서 <더 빠르게 실패하기>라는 책을 발췌독했다. 책의 첫 부분에 괴짜 할아버지가 유산을 물려주는 이야기를 읽다가 한 남학생이 대뜸 물어본다.
"샘은 아이한테 뭐 물려줄 거예요? 딱 한 개만 골라보세요."
애는 장난으로 던졌는데 나는 또 진지하게 받는다.
"긍정"
아이는 시시하다는 눈빛을 날린다. 교사 짬밥 16년 차에 얻은 찐 깨달음인데 아이는 무시하는 눈치다.
문득, 이제까지 교사 생활을 하며 만난 고등학생 수를 세어보니 약 1,600명이다. 1,600명의 수많은 아이들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나와 시간을 보냈다. 그 수많은 아이들 속에 20대 성인의 관문으로 웃으며 진입한 아이들에게는 모두 긍정의 태도가 있었다.
'긍정'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큰 의미를 담고 있다. 보통 긍정이라고 하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긍정의 사전적 의미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사실이나 의견, 상태를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즉, 좋은 것은 좋다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수용하는 것.
뭔가 모호한 이 '긍정'의 의미는 '낙관'의 의미와 비교해야 그 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 긍정: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는 태도. 문제를 직시하고, 실제로 행동함.
- 낙관: 현재의 어려움, 문제를 인식하기보다는 미래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 기대에 무게를 둠.
긍정의 핵심은 처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수용하고 해결책을 찾고 '행동'하는 것이다. 반면, 낙관은 상황을 수용하되 기대만 갖고 '회피'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다 잘될 거야."라고 생각은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의 삶도 아이들의 삶도 문제의 연속이다. 긍정의 태도가 있는 아이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며 하루하루 성장하고, 긍정의 태도가 없는 아이들은 성장이 더디다.
얼마 전 학교에서 아이들과 대학 진학 상담을 하고 선생님들 기운이 쪼옥 빠지는 일이 있었다. 아직 2학년 2학기 시험을 하나도 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려고 한다. "지금 성적을 올려서 더 기회가 많은 곳으로 가보자!"가 아닌, "아, 여기는 갈 수 있군요. 다행이에요." 즉, "공부 더 하기 싫어요, 해도 안될 것 같아요. 그냥 여기 갈게요"다.
상담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됐다. 우리 학교 3개 학년을 통틀어 제일 밝고 '긍정적'이라는 평을 듣는 아이들이었지만 실제로는 밝고 '낙관적'인 아이들이었던 거다.
긍정이 있어야 그다음이 있다. 양육의 목표는 아이의 자립과 독립이다. 아이의 온전한 자립과 독립을 위해 전문가들, 육아서들에서 강조하는 자질들이 참 많다. 자존감, 회복탄력성, 지구력, 성취감, 자기 주도성 등등.
자립과 독립으로 가는 길 후반부에 와있는 고등학생들을 보면서 이 수많은 자질들이 하나의 가치로 귀결됨을 알았다. 긍정의 가치를 알고 그 태도를 지닌 아이여야 그 나머지를 가질 수 있다. '어쨌든 지금의 모퉁이를 돌아가겠다,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가겠다'는 힘이 있어야 그다음이 가능하다. '긍정'의 가치를 아는 아이는 뭘 해도 한다.
AI에게 아이의 긍정적인 태도를 기르는 방법을 물었다. 칭찬과 격려, 감정 수용과 표현, 실패를 통한 성장 인식, 부모의 긍정적 태도 모범, 감사 실천 등을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하란다. AI의 조언 중 제일 중요한 건 부모의 긍정적 태도 모범이다. 나부터 긍정적이고 볼 일이다. 지금 성적 맞춰 대학 가겠다는 아이들을 회피하기보단 해결책을 모색하는 교사를, 엄마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