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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그리는 아이

by 알쓸채은

최근 학급 아이들과 '내년의 나에게 편지 쓰기' 활동을 했다.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일종의 타임캡슐 같은 거다.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고3 때 '짠!'하고 같이 열어보는.


여러 활동에 늘 긍정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이라 이번 활동도 별문제 없이 진행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나에게 쓰는 편지는 나를 돌아보고 나를 응원하고 나를 위로하기 위함인데 이게 안 되는 아이들이 있다. 계속 친구 이야기만 쓴다. 'oo 이는 성적이 올랐을까? oo는 살을 뺐을까?" 하면서...


처음엔 장난치는 거 같아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였는데 먹은 아이스크림 반납하라고 하고 싶었다. 활동을 마치고 교무실에서 아이들이 쓴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 아이들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아니었나 싶다.


나에게 편지 쓰기,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심오한 활동이다. 자신을 '나'라는 또 다른 자아로 분리하고 그 자아를 성찰하고 격려하는 일. 이것이 되려면 아이의 내면이 성숙되고 단단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단단하고 성숙해지려면 그 대상에 대한 앎과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잘 알지도, 자신을 잘 믿지도 못한다. '나'가 너무 소중하지만 '나'를 아는 게 무서운 아이들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게 싫다. 그래서 자신에게 편지를 쓸 수가 없다.


인생을 길에들 비유한다. 인생이 길이라면 그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수다. 어른인 나도, 아직 청소년인 우리 반 아이들도 이번 생은 처음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갈 때 지도는 큰 힘이 된다. 그러나 남이 만들어준 지도에는 한계가 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여건에 따라 '좋은 길'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면 초행길은 늘 어렵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가면 한결 수월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길을 운전하는 것에 비할 바가 못된다. 잘 알고 있는 길의 운전은 여유롭다.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때에 따라 운전에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운전하는 '나'를 돌아보게도 된다.


인생도 그렇다. 아이들이 걸어가는 인생은 날마다 초행길이다. 지도가 없거나 남들이 그려놓은 지도를 따라가기만 하다 보면 자신이 가고 있는 길도, 그 길 위에 있는 '나'도 잃게 된다.


아이들에게 각자 자신의 인생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나만의 지도'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아이들 스스로가 지도를 그릴 줄 아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 이 길로 가면 지름길. 이 길로 가면 막다른 길. 자신은 숲길을 잘 가는지 아스팔트 길을 잘 가는지도 판단해 볼 일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을 주고, 선택의 시간을 주고, 실패하고 일어설 시간도 주어야 한다. 많이 만나 보고, 많이 먹어 보고, 많이 만져 보고. 햇살이 비칠 때, 소나기가 올 때, 장맛비가 쏟아질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났을 때,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을 때 나는 어떤지....


편지 쓰기 활동 제대로 안 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글부글 했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학교에 있는 아이들도, 우리 집에 있는 아이도 '나'에 대한 앎을 늘리고, 그 앎을 바탕으로 '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진, 그런 단단한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해야겠다.


살다 보면 분명 한 번쯤은 외로운 순간이 온다.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힘이 되지 못하는 그런 날. 그런 날은 나만이 나를 오롯이 보듬어줄 수 있다. 그런 날 우리 아이들이 오래 외롭지 않도록 지도를 그리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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