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으로 채워주기
금요일 밤늦은 회식을 끝내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아이가 아빠와 마주 앉아 엉엉 울고 있다.
포효하고 있었다가 더 나은 표현이려나.
남편은 울부짖는 아이를 달랠 생각은커녕 오히려 굳은 표정으로 아이에게 거듭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빠는 그럴 생각이 없어!"
아이를 울린 장본인은 남편인가 보다.
회식으로 늦게 온 탓에 이 사태가 벌어진 것 같아 남편 눈치 슬슬 보며 우는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본다.
아이가 아빠에게 해외여행 가자고 조르다가 일어난 비극이란다.
우리 집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초등학교 2학년 교과목 중에 "세계"라는 과목이 있다.
각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 인사법, 놀이, 노래 등을 체험하며 세계 여러 나라의 존재와 문화의 다양성을 배우는 교과다.
세계를 배우며 자연스레 우리 집 아이도 가보고 싶은 나라가 생겼는데 다른 아이들이 이미 이 나라도 가봤다 저 나라도 가봤다 자랑을 하니 아직 비행기도 못 타본 우리 집 아이의 서러움이 올라와 아빠에게 외쳤단다.
"우리 반에서 나만 해외여행 못 가봤어요!"
엄마 아빠에게도 계획이 있어
우리는 교사 부부다.
교사의 가장 큰 장점은 제법 긴 방학.
결혼 전 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한창 유럽 여행 붐이 일 때였다.
방학 동안 시간도 많겠다 신나게 유럽 여행을 다녔었다.
결혼 후 자본주의에 눈 뜨고 나니 방학마다 한 달치 월급을 쏟아가며 다니는 해외여행 경비가 아까웠다.
게다가 맞벌이 부부로 육아에 찌들어 있을 때라 아이 동반 해외여행에 대한 욕구가 1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도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꿈만은 1등이라 우리에게도 계획이 있었다.
남들보다 더 풍족하게 채워주진 못해도 어디 가서 기죽지는 않게 키워야지 싶었다.
계절마다 가는 동남아는 우리 형편에 사치고 아이 4학년쯤 유럽 한 바퀴 돌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초등학교 2학년이 일본, 중국도 아니고 뉴질랜드 가서 마오이족을 보겠다고 울부짖는다.
아이의 결핍 어디까지 채워줘야 할까
자기만 해외 안 가봤다며 꺼이꺼이 울어대는 아이를 보며 모성애가 불끈 솟아올랐다.
"그래, 뉴질랜드는 너무 멀고 이번 방학에 동남아라도 갔다 오자!"
큰맘 먹고 외쳤는데 아이는 싫단다.
다른 아이들은 프랑스 가서 에펠탑도 보고, 호주 가서 캥거루도 보고, 미국 가서 자유의 여신상도 봤단다.
다 그런 건 아닐 거라는 내 말에 방과 후에 야구하는 친구도 파리 가서 며칠째 결석했다고 더 크게 운다.
당장 친구가 갔다는 말에 또 마음이 아파서 생각해 보겠다며 아이를 달래 재웠다.
아이가 잠든 후 우리 부부는 밤새 초록창에 유럽 여행 검색을 했다.
AI에게 3인 가족 유럽 여행 최소 경비도 물어봤다.
AI 왈, 10일 다녀오는데 600~1,000만 원 정도 든단다.
아이 말에 의심이 갔다.
천만 원 가까운 여행 경비를 부담하는 집들의 경제력도 놀라웠고,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된 아이들이 이렇게나 먼 나라를 여행했다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학교에 출근해서 동료 선생님들께 물었다.
아이 말이 진짠지 뻥인지.
내가 사는 동네에 근무했던 선생님 왈,
"그 동네 아이들 많이 다녀.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엄청 다니더라고. 둘째인 집들은 갔다 왔을 수 있지."
이사 잘못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핍이 없는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결핍이 없다.
매일이 어린이날이다.
결핍은커녕 '가지고 싶다.',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어른들이 제공해 주는 것들이 너무 많다.
덕분에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경험이 드물다.
결핍과 간절함이 없으니 당연히 성취욕, 지구력, 의지력 또한 무너진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는 물론, 물질적으로도 풍요롭다.
학용품도, 책도, 간식도 제공되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은
고등학생쯤 되면 주어지는 것에 감사는커녕 기쁨을 못 느낀다.
예를 들어 행사 간식으로 햄버거 세트가 제공된다고 하면 아이들은 묻는다.
"메뉴 선택할 수 있어요?"
안된다고 하면 그때부터 불만이 샘솟는다.
행사 때마다 맘스터치 싸이버거만 먹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자꾸만 생겨나는 불만 탓에 만족감도, 나아가 행복함도 도통 느낄 수가 없다.
결핍으로 채워주기
돌이켜 보면 내가 다녔던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대학생 때 과외해서 모은 돈으로 간 가장 가난했던 첫 유럽 여행이다.
비행기값 아끼려고 경유도 엄청하고 맥도널드 햄버거도 비싸서 제대로 못 사 먹었지만 그 여행이 제일 값지다.
여행 경비가 정말 빠듯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가 없는 형편에 여행 경비를 보태주셨다.
많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아빠는 곁에 안 계시지만 아빠가 전해준 사랑은 지금도 남아 때때로 마주하는 힘든 순간 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며칠 고민 끝에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계획대로 4학년 때쯤 해외여행 가자고.
그때까지 네가 가고 싶은 나라에 대해 책으로, 영상으로 공부하면서 많이 많이 꿈꾸라고.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느낄지 꿈꾸는,
지금 당장 채워지지 않는 그 결핍이 널 더 단단한 어른으로 이끌어줄 거라고 다독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