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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앞에서 두렵지 않은 아이가 되려면

by 알쓸채은

한 13년쯤 되었을까. 교사 3년 차 여름이었다.
1학년 때부터 가르쳐 온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입시 상담으로 분주한 어느 날, 조용히 자기 일에만 몰두하던 한 소녀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당연히 진학 상담인 줄 알고 옆자리를 내주었더니, 단둘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상담실로 자리를 옮겨 무슨 일이냐고 묻자, 소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퇴를 하겠다고 말했다.


자퇴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놀란 마음에 사정을 물었다.
엄마가 큰 빚을 져 집이 넘어갔다고 했다. 빚쟁이들이 찾아오고, 엄마는 어디 계신지도 모른다고. 벌이가 괜찮던 아빠의 월급과 간호사로 일하던 언니의 월급까지 모두 압류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도 일을 하겠다고 했다.


당시 소녀와 6살 차이밖에 안나는 사회초년생 담임이었지만, 졸업을 코앞에 둔 고3에게 자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긴 안목으로 보자고, 중학교 졸업장보다 고등학교 졸업장의 선택지가 훨씬 넓다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다행히 소녀는 자퇴하겠다는 마음을 거두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돈을 벌기 위해 4년제 대학 대신 전문대를 선택했다.


그로부터 3년쯤 후, 새 학교에서 근무하던 나를 그 소녀가 찾아왔다.
연락도 없이 찾아온 소녀를 보며 깜짝 놀라는 내게 소녀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자퇴를 말려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엄마의 빚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했다고 했다. 자신의 말에 안도하는 나를 보며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지금 생각하니 4년제에 갈 걸 그랬어요. 취업하려고 보니, 4년제 졸업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더라구요.”


그녀의 말이 오래 남았다.

아이들과 진학 상담을 할 때마다, 알바를 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그 소녀가 떠오른다.


겉으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아이들도 늘 경제적인 문제를 염두에 둔다. 특히 진로를 정하거나 진학을 고민할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돈이라는 현실 앞에서 멈칫한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아이일수록 ‘월급이 꾸준한 안정적인 직업’을 원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삶을 더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월급을 받는다’는 틀 안에서 자신의 직업과 삶을 한정 짓는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건 분명하다. 돈이 주는 여유는 우리에게 더 많은 기회를 꿈꾸게 하고 실제로 그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최서영 작가의 『어른의 품위』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가난의 정말 무서운 점은 생각을 움츠러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맞다. 경제적 불안은 아이의 생각과 도전을 가로막는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아무리 “도전하라”고 외쳐도 경제적 불안은 아이의 발목을 붙잡는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아이를 결국에는 눈앞의 현실로 끌어다 놓는다.


우리 집 아이도, 다른 집 아이도 돈에 있어 조금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돈 때문에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거나, 후회스러운 악수를 두지 않기를 바란다. 돈을 버는 길이 월급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돈에 얽매이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꿈꿨으면 한다.


아이가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하려면, 무엇보다 나부터 돈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야 한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도전 앞에서 실패가 두렵지 않은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나부터 경제 공부에 열을 올려 본다. 아이가 ‘엄마 아빠는 이미 잘 살고 있으니, 나는 내 길을 가면 돼’, '돈을 버는 방법은 다양하니 취업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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