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사냥철에 양들은 도망쳐요.
원래부터 꼬마의 주변은 늘 북적였다.
친구가 꽤 있었고, 싱글거리며 웃을 줄 알았기에 또래에게 미움받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가벼운 미소가 도움 됐던 것 같다. 꼬마는 또래와 유치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지루함이 찾아온 건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였을지 모른다.
새로운 재미에 빠져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꼬마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묘한 실망감에 빠졌다.
글자를 해석하는 수고로움과 달리, 기대했던 큰 감동은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꼬마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낡은 노트북이 있었다. 꼬마는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자신이 읽은 소설을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히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꼬마는 창가가 보이는 곳을 좋아했다. 겨울 창문에는 서리가 껴있어서, 간간이 눈이 내리니 산만한 화분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잊기에도 좋았다.
꼬마가 글을 쓰기 시작하자, 가상의 존재가 꼬마에게 찾아들었다. 실존하지 않았지만, 꼬마의 머릿속에 조금씩 비치고 있었다. 바로 어미 양이었다.
“바깥에 눈이 내리는데, 왜 방에만 있는 거야?”
어미 양이 꼬마에게 물었다.
어미 양은 매년 12월에 어김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었다. 처음에 꼬마는 어미 양을 마주했을 때 신기했고, 그녀가 사라질 때마다 아쉬워했다. 하지만 몇 년간 같은 일이 반복되자 무감해졌다.
“눈은 이곳에도 내리잖아.”
꼬마가 노트북을 가리키며 말했다.
“때로는 상상보다 경험이 중요하지.”
어미 양이 나긋나긋이 말했다.
“날 가르치려 들지 마, 12월에만 갇혀 사는 주제에.”
꼬마의 말에는 날이 서있었다. 어미 양은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꼬마는 자신이 위협적으로 말한 걸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무형의 존재를 받들고 사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간혹 받들기만 하던 인간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창조해내곤 한다. 친구, 연인, 부모 그리고 신. 고통에서 오는 환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꼬마 역시 자신의 머릿속에 12월의 어미 양을 만들어 냈다. 겨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꼬마의 열아홉 번째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새해를 눈앞에 둔 날, 꼬마가 어미 양에게 물었다.
“너는 왜 12월에만 나타나는 거야?”
매년 찾아오는 어미 양에게 꼬마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당연한 존재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금증이 생겼다. 어미 양은 이 갑작스런운 질문에 당황한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미 양이 말이 없자, 꼬마는 재차 질문했다.
“12월에 나타나서, 사라지는 이유가 뭐야?”
어미 양은 이번에도 말이 없었다.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꼬마가 말했다.
“아냐, 네가 처음으로 물어봐서 놀랐어. 그래서 말이 없던 거였어.”
어미 양이 입을 열었다.
“처음이었나?
“응.”
어미 양은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음… 12월에만 나타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지? 그건 네가 날 겨울 속에 정의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12월에만 올 수 있어.”
“다른 날도 겨울이잖아.”
“겨울은 외로운 계절이지, 그리고 계절의 끝자락에는 외로움을 마주치고 말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난 외롭지 않아. 이제 어른인 걸.”
꼬마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어미 양의 말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그렇다면 더는 내가 필요 없겠는 걸.”
어미 양의 말에 꼬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꼬마야, 언젠가 다시 나타날게.”
어미 양은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먼지처럼 ‘흩어졌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사라졌다.
꼬마는 문득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 화면의 하단을 살폈다.
[2014년 01월 01일]
새해였다. 어미 양은 평소처럼 사라졌다.
그때 갑자기 꼬마의 핸드폰이 울렸다. 병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꼬마는 전화를 받은 후, 다급하게 널브러진 옷을 걸쳤다. 그리고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양말의 짝이 안 맞는다는 걸 알았다.
꼬마는 이제 혼자가 됐다. 더는 소설을 읽어줄 사람은 없었다. 다음 해 12월. 꼬마는 마음을 졸이며 어미 양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미 양은 오지 않았다.
다음 해, 그다음 해에도.
어미 양이 사라지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꼬마는 어른이 됐다. 거울 속 얼굴은 바뀌었고, 평화로운 세계를 꿈꿨다.
누구나 레드카펫을 꿈꾼다. 하지만 꼬마 앞에는 어쩌면 절망에 가까운 소식만이 놓여졌다.
비극적인 소식이었다.
비극은 달콤하면서, 짜다. 중독성 강한 감미료 같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모두가 병들어버렸다.
‘인간은 위기를 직면할 때 비로소 강해진다.’
내가 싫어하는 말이다.
시대상을 반영했을 때, 지금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개인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를 직면할 때 나약해진다. 차가운 전쟁이 돌아오고, 지구 환경이 나빠져간다. 꼬마들의 세상은 죽어가고 있었다. 작은 힘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종이 빨대를 물고 열심히 커피를 마시는 일. 그리고 환경을 지켰다고 자위하는 게 고작이었다.
[사냥철이 다가오면 어린 양들은 도망쳐요]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양들은 무엇을 피해 달아났을까. 늑대를 피해 달아난 걸까? 아니면 오늘따라 양고기가 먹고 싶은 포수를 피해 달아난 걸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폭풍우 때문 일지도, 아무렴 어린 양들이 도망친다는 사실엔 변함없다.
어미 양의 동화를 듣던 어린 양은 옆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동화와 달리 우리는 행복한 결말을 맞았으면 좋겠어요.”]
난 아직 이 소설을 처음 읽은 순간에 멈춰있다.
지구 어딘가에서 또 전쟁이 터졌다.
소식은 금세 뉴스를 탔다. 화면 속 기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전했다.
폭탄이 터지고, 누군가 총에 맞고, 약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집을 잃고, 고아는 얼마나 생겨났으며, 그로 인해 주가가 얼마가 떨어진 지 따위를 말이다.
이 소식에 그녀는 격분하며 말했다.
“내 얘기 좀 들어봐.”
그녀의 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응, 잘 듣고 있어.”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그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벽에 걸린 타일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타일을 23개까지 세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근데 왜 대답이 없어?”
그녀가 다그쳤다. 눈썹이 찌푸려져 있었다.
“음… 적절한 말을 생각 중이었어.”
변명 같은 대답을 했다.
이후 그녀와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서로의 밥그릇을 비울 때까지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식기구가 귀를 쬐는 소리만 들려왔다.
식사 후 산책을 했다. 1시 시간 정도 걸었고, 역시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그녀로부터 문자가 와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우리 헤어지자, 인연이 아닌 것 같아.’ 문자를 확인할 땐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저녁에 먹은 가게가 괜찮은 곳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미 양이 사라진 지 8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내게는 많은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고 있다.
아참, 내일은 오랜만에 친한 친구와 술을 마시기로 했다.
일찍 자야 할 텐데, 잠이 오지 않았다.
사진 : marion re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