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사냥철에 양들은 도망쳐요2
클럽을 갈 때는 잘 골라서 들어가야 한다. 간혹 터무니없이 비싼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고, 술값이 비싼 쪽도 피해야 한다. 내가 자주 가는 클럽은 입장료를 받는 클럽이었다. 대신 술값을 따로 받지 않아서 가성비가 나쁘지 않았다.
클럽 직원들은 수시로 창고 냉장고에서 싸구려 보드카를 가지고 와, 가지런히 정렬해 둔 플라스틱 소주잔에 따랐다. 대충 따르다 보니 흘리는 게 반이었다. 이렇게 가득 찬 소주잔을 큰 쟁반에 옮기고, 쟁반은 스탠딩 바에 올려진다. 클럽을 찾는 손님들은 돌아다니며 소주잔을 하나씩 집어 들고는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는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흩어졌다.
클럽 바닥에는 버려진 소주잔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누군가의 발에 차여 으스러진 플라스틱 조각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가끔 구석진 화장실에 들르면, 꺼져가는 백열등 아래서 신발 밑창에 밟힌 플라스틱 조각과 유리 파편이 번득이곤 했다. 흐릿한 내 모습이 실루엣처럼 비쳐 보였다.
공짜로 취하는 건 좋지만, 냉장고 관리는 좀 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술에서 묘한 물 비린내가 났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도 냄새가 맡아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굳이 클럽에서 이런 걸 따질 필요는 없었다. 찾고자 하는 건 완벽한 술이 아니니까.
클럽 중앙의 거대한 기둥을 돌아가면 큰 탁자가 나온다. 의자는 따로 없기에 다들 탁자에 기대어 서 있었다. 여자들은 클럽에 들어오면 주로 이곳에 모여 있었다. 돈이 좀 있는 남자들은 일부러 비싼 음료를 시켜서, 여자에게 다가가 자기 과시를 했다. 저들끼리 모여 여자들을 끌어모으고, 그녀들에게 몸을 비벼대는 모습이 자주 연출 됐다.
주변을 맴도는 건 그룹에 끼지 못 하는 남자들 뿐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훑어보며 플라스틱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면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터가 좋지 못하다는 말을 핑계로 다른 클럽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한편 클럽 구석에서 기역(ㄱ자 모양의 탁자에 백인 여자 세 명이 보였다. 그들을 서로 마주 보고 대화 중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눈에 띄었다. 흑발에 머리를 짧게 친 여자였다. 나머지는 금발이었기에 그녀가 더 독보여 보였다.
그녀는 친구들을 따라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클럽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듯했다. 아마도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정신 차리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도 처음 클럽에 왔을 때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때, 클럽의 노래가 바뀌었다. 마침 그녀의 친구들이 좋아하는 곡이었는지,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주변의 남자들도 그들에게 관심이 있던 참이었는지 슬금슬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흑발의 여자만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입구에서 가져온 소주잔을 양손에 챙기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미리 입고 있던 셔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서 옷은 깔끔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어설픈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움찔거리며 들고 있던 잔을 움켜쥔 채 몸을 뒤로 뺐다. 경계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난 그녀 앞으로 플라스틱 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살짝이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그녀는 다시 앞쪽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먼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나도 따라서 인사했다. 그 순간 음악이 바뀌었다. 그러자 중앙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큰 소음에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앞에 놓인 잔을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거 정말 맛없는 보드카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한국말을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몸을 약간 웅크린 채 고개만 들어 날 흘깃거렸다. 멀찍이서 보기에는 그녀가 그렇게 작은 키인 줄 몰랐다. 얼굴 여기저기에는 작은 점들과 주근깨 같은 것들이 많았다.
“한국말할 줄 아네.”
“잘하는 건 아니야.”
“그 정도면 훌륭한걸.”
요란한 클럽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한동안 대화를 이거 나갔다. 먼저 자기소개를 시작한 건 그녀였다.
“난 프랑스 사람이야.”
“몰랐어. 한국 사람들은 백인이면 모두 미국에서 온 줄 알 거든.”
이렇게 말하자, 내 말이 웃긴 듯 그녀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나는 마리(Marie)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마리는 한 번 웃고 나서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웃음소리에 맞춰 그녀의 짧게 친 단발이 찰랑였다. 머릿결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난 프레스턴이야. 데빈 프레스턴”
“에이, 장난치지 말고. 진짜 이름을 알려 줘.”
마리의 놀리는 듯한 말투에, 나도 따라 웃었다.
“프레스턴은 너무 미국 이름 같지? 내 이름은 ‘백 택’이야.”
난 이번에도 가짜 이름을 댔다.
“택, 되게 짧은 이름이네. 여기 클럽엔 자주 와?”
“글쎄… 자주는 아니고, 종종.”
‘종종’이라는 말을 하며 끝말을 올렸다. 순간 ‘종종’이라는 말을 프랑스 사람이 알아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얼굴을 적당히 찡그렸다.
“‘종종’이 무슨 말이야?”
“‘종종’? 음… ‘가끔’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래? 나도 여기 자주 오는 건 아니고, 종종 와. 오늘처럼 친구들이랑 같이.”
마리가 같은 말로 답하자, 입에서 옅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클럽의 어두운 조명 탓에 마리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천장에 매달린 미러볼이 회전하며 마리의 얼굴을 잠깐씩 비추고 있었다. 미러볼의 푸른빛이 그녀의 단발을 쓸고 지나갈 때, 어쩌면 그때쯤 그녀에게 반했던 것 같다.
“아까 봤을 때 친구들이랑 같이 온 거 같던데 맞아?”
“응, 맞아! 사실 오늘이 내 생일이라서, 친구들이 특별한 생일 파티를 해주겠다고 이렇게 클럽으로 데려온 거야.”
마리의 목소리는 음악 소리에 약간 묻히긴 했지만 크고 또렷했다.
“오 생일 축하해. 그럼 올해로 몇 살이야?”
“너네는 꼭 나이를 물어보더라, 21살이야.”
“미안, 한국 사람들 습관이 그래서 그래. 그나저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 간 거야?”
“너도 알잖아, 어디 갔는지. 그 애들 가는 걸 보면서, 일부러 기다린 거잖아.”
그녀는 여유롭게 자신의 한 손을 바지 엉덩이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허리를 앞으로 빼서 몸을 탁자에 기울였다. 그리고 앞에 놓인 소주잔을 홀짝이며 한 모금 삼켰다.
“아, 들켰네.”
맞는 말이라, 그저 내 술잔을 들어 그녀의 잔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마리도 잔을 같이 툭 쳐주며 호응했다.
“그러는 너는, 클럽에 왜 온 거야?”
“음…. 가끔씩 소설 쓰다가 막혔을 때면, 이렇게 와서 머리를 환기시키고는 해.”
“아, 소설을 쓴다고? 전문적으로 쓰는 거야?”
“아냐, 그냥 취미로 하는 거지. 평소에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해.”
마리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어떤 장르를 쓰는지 물어봐도 돼?”
“딱히 장르는 없어. 그냥 그날그날 사람의 순간을 쓰지.”
사실 글을 안 쓴 지 꽤 됐다. 그냥 솔직하게 ‘요즘은 클럽에서 계속 살아.’라고 말한다면 이 대화는 어색해질 게 뻔했다.
“순간을 쓴다니… 괜찮네.”
“어때 ‘순간’이라고 하니까 멋있어 보이지?”
내가 물었다.
“썩 별로네.”
마리는 솔직한 대답과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창피했지만, 그녀의 웃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 맞다. 나도 하나만 물어봐도 돼?”
“너무 개인적인 것만 아니면 다 좋지.”
“맛있는 보드카랑 맛없는 보드카의 차이점이 뭐야?
“글쎄… 누가 가져오냐에 따라 맛은 달라지지.”
이 말을 끝으로 둘 다 한참을 웃었다.
클럽에서 누군가와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주위의 분위기와 더불어, 술에 취해 난동 부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말리는 직원들, 그 사이에 욕설 섞인 고성이 오가며 서로에게 집중하려다가도 정신이 다른 곳으로 새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마리와는 잔잔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입 모양에 집중하고, 말, 그 이상의 비언어적 수단에 의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변이 시끄러워 말을 못 알아들을 때면 서로 더 가까이 붙어서 귀에 대고 말하기도 했다. 눈동자가 적당히 닫혔다, 띄었다 하는 모습, 누군가 뿜어대는 담배 연기에 타이밍 맞춰 코를 훌쩍이는 모습. 점점 취해가며 균형이 어그러지는 모습 등. 모든 게 대화의 일부였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다.
“택, 너 나파밸리를 알아?”
“나파밸리? 그게 뭐야?”
“나파밸리는 미국에 있는 지역 이름이야. 포도 농장이 많은 곳인데, 난 며칠 전까지 거기 있었거든.”
“아, 세계 여행 중이구나.”
“응, 맞아. 우리 엄마가 러시아 사람인데, 평생 일기 쓰는 걸 좋아하셨어. 몇 달 전에 그 일기를 읽다가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 했던 곳들을 여행하고 싶어 졌어.”
마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엄마는 몇십 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셨대, 그러다 일하던 곳에서 컴퓨터가 바뀌었는데 배경화면에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대. 푸른 들판이 보였는데, 그곳이 바로 나파밸리였던 거야.
“그것만 보고, 엄마가 여행을 떠나신 거야?”
“맞아. 꽤 충동적이었지, 우리 엄마.”
“운명적이네, 그래서 나파밸리는 어땠어?”
“아주 좋았어. 그쪽 음식도 맛있고. 근데 일기에 적혀 있던 것처럼 감동적이진 않더라고. 오히려 여기 한국에서 우리 아빠를 만났다는 걸 듣고, 한국이 더 기대되더라.”
“아, 아빠가 한국 분이셨구나.”
내가 물었다.”
“응, 아빠가 너 같은 애들을 조심하래.”
마리의 말에 피식했다.
“그런데 왜 프랑스 사람인 거야?”
“두 분이 같이 여행하다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이 프랑스였대.”
“이유가 심플하네, 그럼 한국은 와 보니까 어때? 기대만큼 좋아?”
안타깝게도 마리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때 마침 그녀의 친구들이 마리를 불렀기 때문이다. 마리도 계속 얘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다음을 기약하자고 하며 연락처를 물었다. 마리는 흔쾌히 자신의 SNS 계정을 알려주었다. 그 후 곧바로 그녀는 친구들과 클럽을 나섰다. 아니 헤어지기 직전에 마리는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Ne t'inquiète pas.”
마리가 말했다. 제대로 들었지만, 알 수 없는 말이라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프랑스 말이야. 혼란스러워 보여서 말해봤어. 다음에 연락 줘.”
마리는 뜻을 알려주지 않은 채, 특유의 발랄한 미소와 함께 손짓하며 친구들과 클럽을 떠났다. 마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혼란스러워 보인다.’ 혹시 살면서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던가. 기억을 되짚어 봤다. 아무래도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혼란스러워 보인다.’ 새벽에 거리를 걸으며 그 말을 곱씹어 봤다. 살면서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던가. 아마 있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듯 말 듯했다. 평소와 달리 해가 뜨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마리의 마지막 인사를 떠올리며 그 뜻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한 발음이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발음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후 마리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녀는 자신이 남긴 마지막 말뜻을 알려 줬고, 그녀와는 그녀가 프랑스로 떠나기 전까지 짧게 만났다.
나파밸리의 어느 포도 농장, 햇살 가득한 들판 아래 한 사진작가 살았다. 그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옷을 챙기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집을 나서려다 문득 멈춰 선 그는, 아마도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싱긋 웃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상쾌한 바람결에 이끌려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췄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순간, 일상의 순간에 미소가 번지며 우연이 된 날이었다. 마치 그의 삶에 스며든 기쁨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렇게 웃음을 머금고서 작가는 목에 걸린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포도 농장 한가운데 펼쳐진 녹색 들판을 담기 위해서였다. 작가가 찍은 그 들판의 사진을, 어쩌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사는 마리의 엄마도 봤을지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어딘가에서는, 어린 시절의 내가 그 사진을 보고 소설의 영감을 얻으려 했던 걸지도. 그 모든 것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순간이었을까.
사진 : martin osl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