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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진 leeAjean Sep 30. 2024

[소설] 24화_사냥철에 양들은 도망쳐요

소설_사냥철에 양들은 도망쳐요 2







36


 밥을 먹고 삼촌에게 연락했다. 오랜만에 걸려 온 나의 연락에 삼촌은 반가운 듯 말했다. 삼촌은 여전히 나와 친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오후에 삼촌의 집에 간다고 말하였다. 삼촌은 저녁에 맛있는 걸 먹자고 말했다.


 삼촌의 집에 도착했다.


 “훈이 왔냐.”

 삼촌이 콧소리를 섞어가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네.”

 내가 말했다.


 “음… 여기서 조카만 봐주면 되고, 형수는 일 있어서 새벽에 온다더라. 나도 저녁때 올 거긴 한데… 회사 일 길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밥은 먼저 먹어도 돼. 그렇게 되면 밤에 맥주나 한 캔 까자고. 맞다, 애는 매운 거 먹이지 말고. 배탈 나더라.”


 삼촌의 옆에 조그만 아이가 서 있었다.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삼촌이 나가고 조카와 단둘이 있었다. 조카를 쳐다봤다. 조카의 얼굴에는 많은 얼굴이 보였다. 삼촌의 얼굴도 보이고, 벽에 걸린 가족사진 속 형수님의 얼굴도 조금 보였다. 이제 보니 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보니 엄마를 닮았다.



 조카는 이제 초등학생 4학년이라 말을 잘했다. 다만 대화는 되지 않았다. 여전히 날 경계해서 말이 안 이어졌다. 삼촌이 말하길 핸드폰을 쥐어 주면 알아서 혼자 잘 있을 거라고 했다.


 삼촌이 돌아올 때까지 그동안 청소를 좀 했다. 애를 봐준다는 명목으로 온 건 맞지만, 용돈도 받고, 공짜 밥도 먹을 테니 뭐라도 해야 할 듯싶었다. 사실 여기 안 왔다면, 집에서 글을 쓰고 있었겠지만… 그러다 다시 공책을 접지 않았을까 싶다. 이젠 귀찮았다. 간혹 컴퓨터로 글을 쓰곤 했다. 아마 마지막 저장 기록이 한 달 전으로 잡혀 있을 거다. 한 달 가까이 빈 화면만 보고,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청소하던 중 익숙한 물건을 발견했다. 노트북이었다. 이걸 버리지 않고 아직도 들고 있다니, 삼촌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 옆에 놓인 검은 봉투가 보였다. 봉투 안에는 노트북 충전기가 담겨 있었다. 



 방 청소는 다 끝냈다. 충전기를 꽂고, 노트북을 펼쳤다. 바탕화면에 나파밸리의 들판이  보였다. 오랜만에 봐도 어색하지 않았다. 바탕화면에는 메모장 파일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파일 제목은 ‘사냥철이 다가오면 어린양들은 도망처요.’ 였다. 마지막 수정 날짜도 적혀 있었다.



 [2014년 01월 01일]


 “삼촌, 뭐 해?”

 조카가 등 뒤에서 물었다.


 “어, 아냐 별거 안 하고 있었어.”


 “삼촌 울어?”


 “아냐, 아냐.”


 “삼촌 운다!!”

 조카가 처음으로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나를 참 많이 닮았다. 특히 웃는 게 그렇다. 팔로 조카의 몸을 둘렀다. 조카는 움찔했다. 나는 조카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37


 [양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웃는다. 이유야 다양하다. 풀을 뜯어먹고, 배불렀을 수 있고, 목이 마른 데 생각보다 빨리 강가를 발견해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거다.


 하루는 배가 고픈 늑대가 양이 사는 초원에 나타났다. 이리저리 눈을 돌리던 늑대는 초원 한복판에 서 있는 두 마리의 양을 발견했다. 두 양은 각각 아무 표정이 없는 양과 웃고 있는 양이었다. 늑대는 그들에게 곧장 달려 나가, 무표정한 양의 목을 물어 죽이고 먹어치웠다. 웃고 있던 양은 늑대가 식사하는 사이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죽지 않음에 감사했다. 이날 이후 모든 양들은 본능적으로 웃게 됐다.



 수백의 웃음 중 대부분은 가식 섞인 웃음이다. 늑대에게 물려 죽지 않기 위해 발현된 하나의 본능이다. 하지만 절벽 걷기에 성공한 어린양을 볼 때, 어미 양은 미소를 지었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단정 지은 마음이 부정당하며, 그동안 억누른 마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게 바로 진실된 웃음, 즉 미소다.]






 








0


 예전 일이다. 삼촌은 내게 여행을 가자고 졸랐다. 나는 어느 곳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방에 누워 있고 싶었다. 사실 원하는 게 따로 있었다. 삼촌도 이걸 눈치채고 내게 물었다. 어떤 걸 하고 싶냐고, 나는 말했다.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삼촌은 하는 수 없이 입고 있던 겉옷을 내려놨다. 이때 삼촌이 어떤 책을 가져올지 기대했었다. 소설이면 더 좋을 텐데, 사실 어떤 책이든 상관없었다. 그런데 삼촌의 손에는 시집이 들려 있었다. 난 시집은 읽기 싫었다. 삼촌에게 읽기 싫다고 말했지만,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집을 읽어갔다. 하는 수 없이 삼촌의 무릎에 누웠다. 천천히 시를 들었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때 생각했어. 나는 이 시집을 읽기 위해, 이 순간을 위해 사는 게 아닌가 하고… 하늘 바람이 뺨을 타고 지나가면 괜히 시원해지는 기분을 즐기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꼬마에게 말했다.


 난 내 안에 꼬마와 마주할 수 있었다. 꼬마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작은 집, 구석진 곳에. 그리고 좌식 테이블을 자신의 앞에 끌고 온 채 노트북을 잡고 소설과 씨름하고 있었다. 옆에는 소설 한 권과 때 묻은 백과사전이 놓여 있었다. 소설의 표지는 검은 배경에 우울한 표정의 양 한 마리가 꿇고 앉아 있었다.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내보았지만 꼬마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오히려 내 말에 일부러 대꾸하지 않는 것 같았다.


 “꼬마야 무얼 쓰고 있니?”

 나는 꼬마에게 다시 물었다.


 “소설을 써요.”

 꼬마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대단하네. 어린 나이에 글 쓰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고마워요.”


 “혹시 왜 소설을 쓰는지 알려줄 수 있니?”

 꼬마는 입술을 머금고 잠깐 망설였다. 그리고 답했다.


 “엄마한테 칭찬받으려고요. 제 나이에 소설을 쓴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칭송받기도 하잖아요.”

 난 사실 알고 있었다. 꼬마가 답하기 전부터 무슨 말을 할지를 말이다. 나는 다시 물었다.


 “꼬마야,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겠니?, 어째서 소설을 쓰는 거야?”

 나는 다시 물었다.


 “......”

 꼬마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꼬마의 시점에서 같은 질문을 들었더라도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신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능력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최후의 익명성이다. 인간은 사회를 살아가며 정해진 답을 하게 설계됐다. 그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받는 고통은 어쩔 수 없다. 이런 고통을 줄이고자 생각이란 걸 하게 됐다. 그중 하나가 스스로의 익명성을 믿고 솔직한 자신과 마주하는 법. 누군가는 자유 의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죽을 때까지 자유 의지가 발현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최후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거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죽으면 그때부터 그를 새롭게 기억할 사람은 없어진다. 남겨진 이는 죽은 이를 잠시 추억할 뿐이다. 시간이 흘러 추억할 이 마저 사라지면, 죽은 이는 세상에서 영원히 소멸한다. 영원히. 인간은 이처럼 슬픈 운명을 타고났다.


 “기억되고 싶어요.”

 꼬마가 말했다.


 “...뭐라고?”


 “이게 솔직한 대답이에요, 기억되고 싶어요. 영원히.”

 난 꼬마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간은 결국 잊혀져요. 자신이 정의 내린 어미 양이 사라진 것처럼. 그럼에도 저는 어미 양을 기억하고 있죠. 하지만 제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미 양은 완전히 사라져요. 우주의 관점에서 인간은 작은 존재고, 역사로 보면 찰나의 존재예요. 그런 인간이 신이 정한 순환의 룰을 깨고 기억될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이야기를 남기는 거죠. 혹여나 제가 사라지더라도, 저를 만들어 낸 사람들과, 그렇게 탄생한 제 이야기는 남을 테고, 그러면 사라진 사람들도 영원히 기억될 테니…”



 꼬마는 말을 끝내고 다시 노트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디뎌가며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룰을 깬다라… 멋진 표현이다.




 한 소설에서 어린양들은 도망치고 있었다. 무엇을 피해 도망쳤을까. 배고픈 새끼를 보살펴야 하는 어미 늑대를 피해 달아난 걸까? 가족과 겨울을 버티기 위해 절인 양고기가 필요한 포수를 피해 달아난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폭풍우 일지도. 아무렴 어린양들이 도망친다는 사실엔 변함없다.



 어미 양의 동화를 조용히 듣던 어린양은 이렇게 말했다.



 “이 동화처럼 우리도 행복한 결말을 맞았으면 좋겠어요.”



 양들은 다시 달렸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어린양들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달리는 것이다. 어딘가로,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정처 없이 달리며 웃고, 넘어지고, 때로는 슬프고, 누가 쫓아와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 종착지에 행복이 없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달린다. 다음이 없어도, 언젠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느 날이었다. 문득 어린양을 쳐다봤다.




 어린양은 웃고 있었다. 웃듯이 웃으며, 웃는 것처럼. 불현듯 행복해 보였다.       














 사냥철이 다가오면 어린양들은 도망쳐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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