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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18. 2020

오늘도 주머니 한쪽에 이천 원을 품고 있다.

일상의 흔적 122

12월 17일, 오랜만에 맑은 하늘. 주머니에 담긴 소듕한 내 이천 원

창밖을 보니 오랜만에 구름이 걷혔다. 서서히 푸른색으로 번지는 하늘을 보며 손을 살짝 내밀어봤더니 여전히 날씨는 겨울이다. 추운 사무실 공기로부터 조금이라도 방어하기 위해 도톰한 카디건을 껴입었다. 오랜만에 껴입은 카디건 주머니에 바스락거리는 종이가 잡혔다. 살짝 열어봤더니 천 원짜리 2장이 깔끔하게 접혀있다. 역시 겨울엔 주머니에 늘 현금을 숨겨둬야지, 과거의 나 잘했다.


요즘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간편한 카드 혹은 휴대폰에 내장된 카드로 결제하거나 QR코드 결제라는 다양한 방식을 이용한다. 예쁘게 생긴 지갑에 도톰하게 채운 현금과 짤랑이는 동전, 친구들과 찍은 재밌는 사진, 카드 두어 장을 들고 다니던 시절은 끝났다. 가끔 빵빵해진 지갑이 버거워 뒤집어 보면 주된 범인은 포인트를 모으던 카페 쿠폰이다. 이마저도 모바일로 바뀐 지 오래이듯 빠르게 변화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겨울은 귀찮아서 현금을 챙기지 않던 분들도 가슴 한편에 현금을 품고 다니는 계절이다. 붕어빵, 호떡, 군밤, 계란빵 등 겨울 간식을 파는 작은 포장마차에서는 늘 현금만 가능했다. 저렴한 서민 간식 가게에서 카드라니, 안 될 말이다. 간소하게는 천 원, 조금 욕심을 내서 이천 원이면 배부른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그곳. 멀리서 주황색 비닐이 보이거나 탁탁거리는 쇠틀 소리가 들리면 괜히 마음이 설렜다.


고소하게 구워지는 반죽 냄새에 홀려 두둑하게 들어가는 앙금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기다림마저 기분 좋다. 타닥타닥 불꽃 속에서 익어가는 군밤도 마찬가지. 기름에 잠겨 서서히 색이 변해가는 기름 호떡도, 깔끔하게 구워져 담백하게 바삭거리는 구운 호떡도, 먹음직스럽게 부풀어 오른 계란빵도. 겨울 간식을 파는 포장마차를 만나는 건 그날 하루 중 가장 큰 행운을 만난 것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물론 이제는 붕어빵 가게도 QR코드로 결제하거나 현장 계좌이체를 통해 결제가 되기 때문에 예전처럼 현금이 없어도 된다. 하지만 주머니 깊은 곳에 소중히 접어두었던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탁탁 잘 펴서 건네는 그 아날로그적인 맛이 있지 않은가. 추운 날 고생하시는 사장님께 감사 인사와 현금을 전하고 간식을 건네받을 때 손에서 느껴지는 작은 온정. 이 찰나의 순간에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란 과학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순간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편리함을 만들어내고 삶의 질을 크게 올려주었지만, 차가운 플라스틱은 절대 구현해낼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정이다. 겨울은 다른 계절 중 가장 따뜻함이 잘 느껴지는 고마운 계절이기도 하다. 겨울에 만나는 따뜻함 혹은 뜨거움은 대부분 환영받는다. 겨울 간식은 차갑게 얼어있던 뺨을 녹이는 따뜻함이다. 발을 동동 구르고 꼬물꼬물 주머니에 손을 꼭 껴놓다가도 겨울 간식을 먹을 때만큼은 추위를 잠시 잊을 수 있다.


나에게 겨울 간식은 그저 길거리에서 사 먹는 간식 그 이상이다. 추운 바람이 몰아칠 때 잠시 추위를 피할 공간이도하고, 마음이 얼어붙어 추운 날 차가워진 마음에게 건네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허전한 내 기분을 채워주는 든든함이기도 하다. 너무 추워서 걸음을 빨리 옮기는 순간에도 주황색으로 펄럭이는 비닐만 보면 반갑고 설렌다. 나에게 겨울에 만나는 간식 포장마차는 그런 의미다.


출근길 버스에서 슬쩍 손을 넣어 지폐를 만졌다. 빳빳하게 접힌 종이 두장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감사하게도 우리 회사는 붕세권이다. 도보로 5분 거리에 붕어빵 파는 곳이 두 곳이나 된다. 어느 곳에서 붕어빵을 살 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다. 좀 더 바삭한 식감을 원한다면 왼쪽으로, 두둑하고 달달한 앙금이 당길 때는 오른쪽! 그때그때 고를 수 있다. 오늘은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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