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밥을 잘 챙겨먹는 일부터 시작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기

by 송송

무너짐은 조용히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거창한 계획이나 다짐 같은 건 아니었다. 그땐 그럴 힘도, 의지도 없었으니까. 그저, 밥을 잘 챙겨먹는 일부터 시작해보자는 작은 의지만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배가 고픈지도 잘 몰랐다. 시간이 되면 뭔가를 입에 넣긴 했지만 그건 ‘먹는다’기보다는 그냥 ‘채워 넣기‘에 가까웠다. 그저 그의 루틴에 맞게 요리를 하고 먹었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맛을 느끼려는 마음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정해진 루틴 속에서

해야 할 일을 하나 처리하듯 식사를 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강박 속에 살았다. 잦은 부상으로 재활 또한 길어지며 예민해진 그와 그의 몸에 최대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찾느라 나또한 예민해져갔다.


따뜻한 음식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온기를 느끼지 못했고, 입안에 무언가가 들어오고 지나가는 감각조차

어딘가 멀게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하루를 넘기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밥을 좀 제대로 먹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상을 다시 찾기 위한 아주 작은 첫걸음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동안의 식사는 대부분 그를 기준으로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컨디션에 맞춰 고르고, 그의 루틴에 맞춰 시간을 정하고, 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것들로 채워진 식단. 그 안에는 분명 사랑이 있었지만, 나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아주 사소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나는 지금, 뭘 먹고 싶지?”

대답은 금방 나오지 않았지만 그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낯설고, 조금은 조용한 변화가 시작됐다.

어느 날은 따뜻한 국이 먹고 싶어서 천천히 끓여봤고,

어느 날은 괜히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동네의 작은 카페를 찾아 들어가 보기도 했다.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이었지만, 그곳에 앉아 있는 시간은 이상하게도 내 것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도 아니고,누군가의 일정에 맞춘 자리도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해 앉아 있는 시간. 그게 그렇게 낯설고,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냥, 그 자리에 조금 더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내가 느끼는 아주 작은 신호들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고, 굳이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선택들. 예전 같았으면 지나쳤을 감정들을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 사소한 선택들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내가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밥을 잘 챙겨먹는다는 건 단순히 몸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나를 다시 돌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고, 내가 나를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는 아주 조용한 선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잘 먹으려고 노력한다. 거창하게가 아니라, 그날의 나에게 필요한 만큼.

한 번쯤은 나를 위한 식사를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동네를 산책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그 시간을 내 것으로 남겨두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있다. 그게 다시 나로 돌아오는 가장 느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그래서 혹시, 그때의 나처럼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너무 멀리서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주 작은 것부터, 나를 위해 밥 한 끼를 챙겨 먹는 일부터라도 작은 의지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