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코드 O42
두 달가량 병실을 오가는 임신부들을 워낙 많이 보다 보니 반은 의사가 다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병실에 새로 들어오는 산모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일반 검진을 왔다가 갑작스레 입원을 당하는 경우, 갑작스러운 증상으로 응급차를 타고 오는 경우, 고위험 산모로 관리받다 출산을 위해 자연스레 병원을 찾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병실에 갓 들어온 환자들은 간호사 선생님과 간단한 인터뷰를 해야 한다. 역시나 얇은 커튼은 어떤 방음 기능도 없으므로, 나는 그들이 나누는 몇몇의 대화만으로 대략적인 산모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을 찾는 산모들은 크게 4가지의 문제로 입원을 했다.
1. 자궁 경부 이슈; 자궁 경부 길이가 갑자기 짧아지거나, 맥 수술의 부작용이 나타나 입원한 산모.
2. 양수 이슈; 나와 같이 양막의 일부 혹은 전체가 파수되어 양수가 새어 나오는 경우.
3. 임신 중독 및 임신성 당뇨로 인한 조기 출산; 이 경우는 대부분 미리 증상을 파악하고 여러 방면으로 관리를 받다가도 갑작스레 태아의 발달 속도가 느려지는 등의 문제가 생겨 예상보다 이른 출산을 준비하는 경우.
4. 다태아 임신 및 출산;다태아 출산은 단태아 출산보다 여러모로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 무거워진 배 무게로 인해 갑작스레 경부가 짧아지거나, 쌍둥이 중 한쪽에 양막 혹은 성장 지연과 같은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병원에서 다른 임신부들의 배에 비해 훨씬 큰 부피감이 느껴지는 다태아 임신부들을 마주 볼 때면, 그야말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일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듯, 실로 나는 입원해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공부나 취미 활동도 할 수 없었다. 하던 프로젝트의 스토리보드라도 그려볼까 싶으면, 이런 약간의 주의를 기울이는 일 정도만으로도 배에 통증이 오거나 수축이 왔다. 결국 뇌부터 발끝까지 릴랙스 된 채 그냥 멍하게 누워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아니면 잠을 자는 등 무의미한 활동들을 이어해야 했다. 이참에 미뤄뒀던 잠 실컷 자라는 위로의 말도 어느 순간 고깝게 들릴 정도였다. 나는 누워 내 증상에 대해, 고위험 산모에 대한 글과 자료를 읽어보았다. 관련 서적을 읽고 이러한 고위험 산모로 출산을 하거나 아이를 잃는 경우들을 찾아보았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보고 내가 정말 엄청 유난스러운, 그야말로 일반적이지 않은 예외적인 임신 기간을 겪었다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나 많은 수의 임산부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여러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임신 기간을 보낸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노산과 인공수정, 혹은 시험관으로 다태아 출산이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해마다 고위험 산모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병원에 누워 어째서 임신 전에 이러한 산모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나 한탄했다. 그리고 주변의 반응들을 보면서 일반 산모와 고위험 산모의 차이는 임신의 경험 유무만큼이나 인식의 차가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장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한 친언니에게도 내가 겪는 증상과 상황은 낯설고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하물며 남편과 양가 부모님은 어땠겠는가. 처음에는 모두가 내 상황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낙관론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여태 잘 버텼으니 별일 없을 거라고. 이건 다 액땜 같은 일일 뿐 너는 별 탈 없이 만삭이 되어 건강한 아이를 낳을 거라고 말이다. 나는 이제 사람들이 예의 말하는 예감, 느낌과, 액땜과 같은 비과학적인 말은 믿지 않는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만삭의 임신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원 후 얼마가지 않아 알았다. 이미 34주를 넘겨 입원한 산모가 아니라면, 고위험 산모의 만삭의 정의는 34주라 했다. 내가 최대한 버틴다고 해도 34주에는 아이를 낳아야 했다. 감염과 합병증, 아이의 성장 지연과 같은 여러 위험 요소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겪는 현실은 30주를 넘기기만 해도, 아니 솔직히 병원에서는 내가 28주만 넘길 수 있어도 기적이라 말했다. 그 28주도 대부분은 낙관할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너를 이른둥이로 만날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단다. 그래서 '이른둥이 육아 가이드북' 이라는 책을 샀고, 입술을 꽉 깨문 채로 책 페이지 페이지를 넘겼다. 이른둥이 육아 가이드북의 첫 단락은,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이들이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서 겪는 여러 병증에 관한 설명이었다.
다른 가족은 몰라도 남편은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할 한 단 사람이었다. 너를 이른둥이로 만날 거라는 사실을, 처음 남편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걱정 많은 나의 쓸데없는 우려라 치부하길 여러 번에 종국에는 나에게 왜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지 역정을 냈다. 나는 차분히 설명했다. 지금 내 증상은 만삭까지 갈 수 없으며, 여기 의료진 그 누구도 나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고, 우리는 우리 아이를 이른둥이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편은 충격에 전화를 끊었다. 먼 곳에서 어디 하나 물어볼 곳, 하소연할 곳 없이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각종 이른둥이 관련 자료들을 찾으며 괴로워할 남편의 모습이 선해 눈물이 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이었다.
언급한 적이 있듯, 병실은 언제나 무거운 공기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검진을 왔다가 갑자기 입원을 당한 산모들은 당황스러움에 며칠을 울곤 했다. 집에 두고 온 첫째 아이 걱정, 갑작스레 남겨진 남편 걱정, 직장 걱정을 하느라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 산모도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 증상으로 인해 발생한 이 상황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신은 물론 부부가 함께 하는 일이지만, 자궁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은 100프로 임신부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기에 그로부터 발생되는 죄책감이 생각보다 크다. 내 몸이 약해서, 내 자궁이 약해서, 내가 지병이 있어서, 내 아이가 안정적으로 지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엄마들은 깊이 괴로워했다. 누군가 꺼이꺼이 울어도, 누군가 갑작스렇게 찾아온 고통으로 신음 소리를 내뱉어도, 다른 환자들은 어떤 말도 커튼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섣부른 위로도 섣부른 연민도 내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운명공동체처럼 그저 가만히 그들의 눈물과 한탄과 걱정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할 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가지 증상을 가진 산모를 고위험 산모로 규명하고 지원하고 있다. 나의 진료코드는 O42번 [양막의 조기 파열]이다. 나는 출산 후 진단 서류를 제출하고 국가로부터 입원비 중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물론 전액을 지원받는 것은 힘들지만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