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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an 14. 2024

지난여름, 산에게

임신을 하고 하고 싶었던 것-2

5. 맛있는 음식을 먹기 

병원밥은 끔찍하게 맛이 없었다. 

대게 병원밥은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나는 화장실 문에 붙어있는 <병원에 대한 불만사항은 이리로 말씀 주세요!> 팸플릿을 볼 때마다 이번에야말로 항의글을 쓰고 말겠다 다짐하다 결국 입을 다물고는 했다. 병원밥이 맛없는 건 당연한 거다. 그저 임신한 주제에 이렇게나 오래 입원하고 있는 나 자신이 이상할 뿐. 

 아침, 점심, 저녁 따박따박 나오는 밥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맛없는 밥’으로 자신 있게 정의 내릴 수 있었다. 간은 적어 슴슴했고, 국은 입에 떠 넣어도 무슨 재료를 주재료로 끓인 국인지 판가름하기 어려웠다. ‘어디서 검증받은 좋은 쌀’과 같은 안내서를 곁들인 맨밥은, 쓴 밥도 맛있게 해 준다는 무적의 마법사 ‘조미김’으로도 회복되지 않는 맛을 자랑했다. 쌀을 검증했다는 기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입원 내내 신선한 과일 한 조각이 메뉴에 등장한 적이 없었고 가끔 나오는 고기반찬은 빠짝 말라 뼈에 붙어있거나 누린내가 났다. 그 와중에 콩볶음 미역줄기 같은 (나에게 있어) 비주류 반찬은 큰 그릇에 그득하게 나왔다. 여러 병원에서 일해보았다는 의료진들도 이 병원밥 앞에서 고개를 내저었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온도’였다. 식사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로 차려져 왔다. 간도 적고 온도도 어정쩡하다 보니 입에 음식을 넣으면 어떠한 기쁨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기다려지는 메뉴는 아침에 나오는 시원한 팩우유 하나였다. 어느 순간 나는 병원 밥냄새만 맡아도 돌던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러나 식사를 먹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억지로라도 먹어야 했다. 신선한 야채 과일 그리고 맛있는 살코기가 간절하게 먹고 싶었다. 단순한 식탐이라기보다 동물적인 본능에서 일어져 오는 욕구였다. 결국 두 팔 걷고 나선건 친정 식구들이었다. 언니는 여유가 될 때면 과일과 먹을거리를 짊어지고 왔다. 엄마도 갓 구운 고기를 통에 담아 간호사들 손에 넘겼다. 면회 시간은 오전에 짧게 제한되어 있었지만 보호자가 가지고 온 물품은 시간 상관없이 전달받을 수 있었다. 외부인 제한 구역이다 보니 직접 건네받을 수는 없었고, 간호사분들이 물건을 받아 입원 환자에게 전해줄 수는 식이었다. 신선한 망고, 아삭거리는 수박, 내가 좋아하는 산딸기가 간호사분 손에 가득 들려오면 입에 침이 고였다. 나는 음식을 받으면 다급히 커튼을 치고 허겁지겁 입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한참 먹고 싶은 게 많은 때였다. 하지만 대부분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없거나,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어야 할 때가 임신 기간 내내 이어졌다. 이런 결과로 퇴원 이후에도 먹을 것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졌다. 그때 잃었던 입맛은 아직도 원상복구 되지 않았다.


6. 푹신한 침대에서 자기

 병실 침대는 딱딱하다. 몸의 안락함이 아닌 치료와 안정, 정확한 자세로 고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배가 불러오면서 어떤 자세를 취해도 이 침대 위에서 영 편하지가 않았다. 몸을 돌려 옆으로 눕는 건 늘 망설여졌다. 딱딱한 침대 바닥과 내 배 사이에 쿠션 역할을 할 수 있는 양수가 없다 보니, 혹시라도 내가 옆으로 몸을 돌리다가 네 다리나 팔이 어딘가에 짓눌리면 어쩌나 걱정됐기 때문이다. 결국 낮이건 밤이건 대부분 하늘을 보는 정자세로만 누워있었다. 그렇게 누워있자니 등이 배겨 참을 수 없었다. 내 등은 일평생 바짝 마른 멸치마냥 살 한 줌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점차 내 몸이 딱딱한 침대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입원 2주쯤 지났을 때 등에 쿠션 역할을 할만한 살집이 생겨난 것이다. 아마 몸 전반적으로 둥실둥실 살이 오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때마침 등살이 생긴 덕분에 잘 때 그나마 덜 불편해질 수 있었다. 병원의 밤은 빨리 찾아오고 밖의 밤보다 길었다. 오랜 밤, 딱딱하고 좁은 침대에 누워있자면 두 팔을 뻗어도 넉넉할 푹신한 매트리스와 쿠션감이 가득한 베개와 이불이 간절했었다.


7. 기지개 켜기, 맘껏 웃기

 임신을 하고 한 번도 몸이 쩌억 벌어지도록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본 적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손만 쭉 뻗는 스몰 기지개로 만족해야 했다. 발끝에 쥐가 날 정도로 몸을 크게 스트레칭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침마다 간절했다. 하지만 배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했다. 기지개뿐 아니라 앉았다 일어날 때, 몸을 일으켜 세울 때와 같이 작은 움직임에도 배에 힘이 들어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온 신경을 '배에 힘주지 않기'로 집중했다. 이건 아직까지 버릇처럼 남아있는 터라, 한 번씩 배에 힘을 줄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만다.(그 탓에 남겨진 뱃살이 절대 빠지지 않고 있다.) 

 한편 크게 웃는 것 역시 멀리해야 했다. 웃다 보면 배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처음 양수가 새는 증상이 시작되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웃긴 영상을 보며 웃다가 왈칵하고 양수를 쏟아낸 적이 있었다. 웃음을 피하기 위해서 남편의 시시껄렁한 농담, 개그맨들의 익살스러운 개그, 화면 속 어리바리 동물들의 귀여운 실수들을 최대한 멀리해야 했다. 웃는 것을 멀리해야 하는 것만큼 사람 마음이 각박해지는 일이 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병원 입원해 있는 동안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본 일은 내 기억에 단 한차례도 없었다.


8. 내일을 기대하기 

 낮에는 멀쩡하다가 밤이 되면 갑작스럽게 양수가 대량으로 새거나, 알 수 없는 출혈이 발생하거나, 괜찮았던 컨디션이 쳐지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나뿐만 아니라 비슷한 증상으로 입원한 산모들이 동시에 겪는 어려움이었는데, 아마도 밤이 되면 분비되는 호르몬 탓이 아니겠냐는 의료진들의 소견을 들었다. 물론 그 역시도 추측일 뿐이다. 임신 중 나타나는 증상은 절대적인 답도 이유도 없을 때가 많았다. 때로는 임신 자체가 허공에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병원에서 듣는 ‘잘 모르겠다’는 답만큼 환자로서 절망적일 때가 또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매일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절망과 슬픔과 좌절과 두려움과 무기력함과-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는 모이고 모여 동그랗고 커다랗고 무서운 어떤 것이 되어 나를 덮쳐오는 듯했다. 마치 밤이 되면 찾아오는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침대 밑에 도사리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고요히 잠을 자다가도, 어떤 날은 갑자기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며 나를 위협하는 것이다. 오늘 밤은 제발 무사하게 넘어가길, 내일 아침에 일어나 남편과 가족들에게 지난밤 나는 괜찮았다, 잘 잤다 말할 수 있길 기도했다. 이 어둠의 늑대가 고요히 이 밤에 깨어나지 않길, 평화로운 단잠에서 헤어 나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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