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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an 19. 2024

지난여름, 산에게

배넷저고리와 아기 침대

 5월. 밖에는 장미가 피었을까 궁금했다. 

 2023년 5월 20일, 임신 주수 25주가 되었다. 초기에 목표로 했던 24주를 넘긴 것이다.

임신 주수 24주~26주 기간은 제법 안정적인 기간이었다. 물론 병원에 계속 머물러야 했지만 큰 출혈도 없었고, 감염과 같은 심각한 이벤트도 없었다. 그즈음에 너의 몸무게는 800g 정도였다. 200g 한 줌이던 네가, 고작 희미한 노크처럼 내 뱃속에서 토닥거리던 네가, 제법 사람다워졌다 했다. 너는 그 작은 자궁 안에서도 얼마나 깨발랄하게 놀았는지 모른다. 매일 아침 양수 검사를 하던 의사 선생님들도 너의 활발한 움직임을 경이로워하곤 했었다.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해 멍하게 있다가도 너의 쿵 하는 발차기로 번뜩 정신이 드는 아침을 난 참 좋아했다. 삭막한 병원에서도 내가 의지 할 거라고는 너 하나였다. 무섭고 깜깜한 밤이면 배에 손을 얹고 너의 움직임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그러면 어쩐지 너와 함께 그 밤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덜 무서워지곤 했다. 너는 알까? 그 작은 너에게 내가 얼마나 기대었는지. 나중에 꼭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시간이 가고 있네요”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무료하게 침대에 누워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를 향해 간호사 선생님들이 힘내라며 한 마디씩 얹어주고 가곤 했다. 그렇다. 어찌어찌 시간은 흘렀다. 나는 이제 너를 살아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가느다란 기대로 더듬더듬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나는 ‘우리가 함께 할 미래’에 대해 생각할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속에 항상 조심해야 해,라는 마음이 짙게 깔려 있었지만.

 25주가 지나자, 조심스러워하던 가족들도 이제 정말 너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물론 나는 늘 걱정이 많았다. 24주는 생존을, 25주는 지나야 네 뇌가, 28주는 지나야 폐를 제외한 너의 장기가 발달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매일 살얼음이 낀 호수 위를 맨발로 걷는 느낌이었다. 홀로. 아득히. 돌아갈 곳 없이.  


 아직까지 튀르키예에 있던 남편은 집에 아기 침대를 사 두는 것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어왔다.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적당한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 내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몇 없었다. 확실한 단 한 가지는 우리는 우리 아이를 이른둥이로 만날 거라는 것, 하나였다. 그리고 그 한 문장에 숨은 의미는 무척 많았다. 

이른둥이로 아이를 만단다, 는 말은 

 아이는 태어나 오랫동안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NICU)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 퇴원을 한다고 해도 일반적인 신생아보다 훨씬 자주 병원을 다녀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튀르키예로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서는 남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 그 탓에 나와 아이는 한국에 남고 남편 홀로 튀르키예로 돌아가 생활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등등... 그리 유쾌하지도 심플하지도 않은 차가운 현실을 담은 문장이었다. 

 아기 침대에 대해 조심스레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자 남편은 기어코 화를 냈다. 왜 자신은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냐고. 왜 우리 아이를 행복하게 만날 수 있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좌절했다. 나는 그저 속절없이 눈물이 났다. 내 말은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지얂냐는 그의 말을 나 역시 믿고 싶었다. 하지만 아닌 걸 어떡하란 말인가. 임신 초기, 오랜 출혈로 침대에 누워 지낼 때 나 역시 매일 생각했다. 침실 어디쯤 아기 침대를 놓으면 가장 좋을지. 그래, 그냥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남편과 전화를 끊고 엉엉 울었다.


 다음날 엄마 전화가 왔다. 25주도 지났고 이제 슬 아기가 태어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으니 언니와 같이 배넷저고리나 우주복, 아기 담요 같은 기본 육아 용품을 사러 간다고 말이다. 어제 남편과의 통화 후 허물어져있던 내 마음을 아직 단단하게 보수하지 못한 때였다. 아기 용품이라니. 임신하고 하고 싶었던 것 중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남편과 아기용품 사러 가기>였다. 아기자기한 아기 옷과, 장난감, 아기가 물고 빨 젖병, 작은 양말과 모자, 부드러운 담요.  

 나는 아기 용품을 사러 간다는 엄마의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통곡했다. 우는 나를 향해 엄마는 섭섭해하지 말아라, 며 달랬다. 하지만 내 눈물은 엄마의 행동이 섭섭해서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금의 내 상황이, 남편조차 아무것도 하지 말라 말해야 하는 내 상황이, 기가 차서 나는 눈물이었다. 

 

 그날 오후, 엄마는 귀여운 토끼가 그려진 담요와 하얀 우주복 사진을 보내왔다. 옷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 나는 또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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