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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un 26. 2015

그대 아직 약속을 기억하나요? 

흙냄새 가득한 한국 애니메이션  흙꼭두장군

 예전에 '명절 특선만화'와 같은 통로로 시청했던 만화영화 중 하나인 <흙꼭두장군>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 제목만으로는  갸우뚱하다가 이미지를 꺼내 보이면 금방 이 애니메이션을 알아채는 이들이 꽤 될 거다. 종종 기억에 남는, 혹은 좋아하는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누군가 물어오면 이러저러한 애니메이션들이 있고 그중 <흙꼭두장군>도 참 좋아하노라 이야기를 하곤하는데, 그만큼 <흙꼭두장군>은 지금 꺼내봐도 이야기나 캐릭터가 가지는 힘이 상당한, 참 괜찮은 애니메이션이라 말하고 싶다

.  

시대를 초월한 귀요미 흙꼭두장군

 생각해보면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둘리>나 <영심이> <달려라 하니> 같은 한국적인 색채나 정서가 잘 녹아든 국산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기획물로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낼 만큼 그때의 애니메이션 산업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개인적인 추측이다.) 그 흐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오지 않은 것이 조금 많이 안타까울 따름.


 처음 영상의 오프닝만 보더라도 당황스러울만치 낡은 느낌으로 세월이 와 닿는다. 흙꼭두장군에 등장하는 배경이 원체 시골인데다 2000살 넘었다고 으쓰대는 흙꼭두장군의 나이부심(?)과 더불어 책가방도 아닌 책보따리를 지고 뛰어다니는 주인공덕에 애니메이션 자체가 아주 아주 예스러운 느낌이 가득하다. 그러나  조금 '오래된 것'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이야기의 구성이나 짜임이 꽤나 탄탄하고  흥미롭다. 게다가 흙꼭두장군과 그의 애마 캐릭터는 지금의 눈높이로 센스로 살펴봐도 놀라우리만치 깜찍하다! 

 이야기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발굴된 왕릉을 둘러싸고 벌어지게 되는데,  그중 오랜 기간 왕릉을 수호해온 흙꼭두장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왕과 왕비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애쓴 흙꼭두장군과 그를 돕는 순수한 아이의 우정, 그리고 사후에도 서로의 사랑과 약속을 간직한 채 잠들어있었던 왕과 왕비, 아이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도굴을 감행해야만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 등, 애니메이션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판타지와 역사적 이야기가 잘 버무려져 다양한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요소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사실 이 애니메이션을 갑작스럽게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즐겨보는 역사 관련 프로그램에서 언급된 어떤 왕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현재는 북한에 남아있어 직접 볼 수 없는 고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묘에 얽힌 이야기다.  익히 알려진 대로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는 살아 생전 아주 애틋하게 사랑했던 사이였다. 사이 좋게 자리한 두개의 묘를 발굴. 조사해보던 중 다른 왕릉과는 다른 묘한 점 하나가 발견되는데, 내부가 돌벽으로 완전히 막혀 있는 게 일반적인 형태의 왕릉과는 달리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릉에는 그 사이를 연결하는듯한 작은 통로가 하나 발견된 것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아직 완벽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하는데, 아마도 두 사람이 죽어서도 서로의 영혼이 오가며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만든 통로가 아니겠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딱딱한 이론과 학설을 뛰어넘는 아주 낭만적인 추측인 것 같아 아주 흥미로웠다. 이 이야기를 듣던 중 흙꼭두장군이 지키던 왕과 왕비의 묘의 모티브가 아마 공민왕 내외의 왕릉에서 온 것이겠구나 추측하게 됐다. 단순한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라 생각했던 것이, 실재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건과 사랑을 모티브로 제작된 것이라 생각하니 이전에 비해 또 새로운 느낌으로 이 애니메이션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매력이 넘치는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저 '추억의 만화영화'정도로만 기억되고 있는 건, 아마도 오래 전에 제작된 영상이니만큼 거기에 묘사된 '우리 모습'과 지금 살고 '우리 모습'이 남의 것인냥 너무도 달라져버렸기때문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인 김병규 작가의 <흙꼭두장군의 비밀> 책도 생각난 김에 구매해서 보게 됐다. 그러면서 언젠가 이 애니메이션을 현대의 옷을 갈아입은 모습으로 재탄생시켜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하게 됐다. (but흙꼭두 장군이랑 수레 캐릭터는 제발 그대로 가주세요!!) 짧은 길이든 긴 길이든 뭐든 좋다. 좋아진 애니메이션 기술에 힘입어 다시 보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졌다. 2000년 넘게 누군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앙증맞은 흙꼭두장군. 결국 흙에서 와 흙으로 돌아가는 순리를 순순히 받아들이던 그의 해맑은 모습을 과거가 아닌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볼 수 있게 되길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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