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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Sep 29. 2015

엄마라는 이름의 슬픈 풍경

애니메이션 <늑대아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애니메이션은 역시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일 것이다. 나 역시 주변으로부터 귀 따갑게 얘길 들은지라(남자 주인공이 그렇게 멋지다고..) 일부러 찾아 봤던 기억이 난다. 풋풋한 소년과 소녀의 심장 간지러운 풋사랑 이야기가 시간 여행이라는 (언제나 어디에 넣어도 재밌는) 소재와 엮어져 함께 잘 버무려진 수작이었다. 특히 내 기억에 남았던 건 과하지 않은 담백한 표현과 깔끔하게 떨어지는 애니메이팅이었다. 보통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과 같이 서양권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의 풍부한 제스처와 조금은 과장된 표정 연기 등 지극히 '애니메이션'스러운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아닌, 실제 우리 삶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간결하고 담아낼 것만 그려내는 동작 표현법들을 보면서 '역시 정서적으로 이런 표현이 훨씬 잘  맞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렇게 내용보다는 애니메이션 자체로 인상에 남았던 작품은 호소다 마모루라는 신예 감독의 이름과 함께 각인되어 있었다. 

 

 두 번째로 접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이 바로 '늑대 아이' 다.

 사실 매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지만 그의 작품을 반드시 찾아 볼 만큼의 깊은 '팬심'은 내게 없었다. 게다가 늑대 인간이라는 소재도 그리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보려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보다 나를 솔깃하게 만든 어느 감상평에 '호오-'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냥 한번 봐볼까 싶은 가벼운 마음으로 애니메이션을 구해서 보게 되었다.


이 작품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 타이틀에 나와 있는 '늑대 아이'들이 나온다는  것뿐, 그 외 사전 지식은 없었다. 온 가족이 늑대인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는 사람이고 아빠는 늑대 인간, 그 둘 사이의 자식도 늑대 인간이라고 했다. 사실 여기까지 '늑대 아이'가 태어났다는 내용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애니메이션 적이라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다이나믹한 에피소드들이 펼쳐지지 않을까 머릿속에 어림 짐작하며 영상을 따라갔다. 


하지만 웬걸.


애니메이션은 아빠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이들이 늑대 인간이라는 사실만 살짝 옆으로 비껴두고 보면, 그저 '조금 특별한 아이들을 기르는 여느 엄마의 이야기'라 해야 할 만큼 굴곡 없이 잔잔한 휴머니즘 애니메이션이다.  사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그림을 보면서 '너무 가볍다'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섬세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이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 어쩌면 예전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면서 느꼈던 정서적 유대감도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로 비롯된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림만으로 영상의 내용과 깊이를 짐작했던 내 편견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인상깊었던 설원 속 질주 씬

 조금 특별한, 혹은 특이한 아이를 홀로 기르게 된 '엄마' '하나(주인공 이름)'는 아직 어려 인간과 늑대의 모습을 컨트롤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사람들의 시선이 많지 않고 안정적인 시골로 이사를 간다. 아이를 키우며 소소한 장애물들이 하나 앞에 무심히 툭툭 던져지기도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그저 태어날 때부터 그 상황에 준비라도 한 듯이 두 아이를 보듬어 기른다. 낯선 시골에서 밭을 갈아 농사를 짓기도 하고 수입을 위해 일자리를 구하는 사이 모래알 같던 아이들도 모락 모락 자라난다.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떠나지 않던 아이들이 어느덧 자라나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는 법을 찾아내고, 각자의 길을 걷기 위해 엄마 하나의 품을 떠난다. 아이를 키운 12년을 추억하며 엄마는 환하게 웃음 짓는다.

 

  여자 주인공은 원래 성격상, '힘들어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캐릭터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그녀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여야 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힘들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이 닥친다 해도 아이를 기르는 엄마이기에- 그저 괜찮다 괜찮다..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하는 모습이 여타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어쩐지 슬퍼졌었다. 


 애니메이션 끝무렵, 왁자하게 집 여기저기를 뛰놀던 아이들은 떠나고 집은 텅 비어 고요하다. 집 여기저기를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평화롭고 따뜻하지만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떠나고 집은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자라 당연한 듯 집을, 그리고 엄마품을 떠난다. 

  나 역시 대학교 때문에 생전 처음으로 아빠 엄마의 품을 떠나온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낼 곳을 마련한 후, 서울역에서 언니와 함께 엄마를 배웅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느닷없이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언니와 함께 밥을 먹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쭉- 나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을 만큼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엉엉 꺼이꺼이, 울고 또 울었던 그날의 밤. 처음 엄마의 자궁을 벗어나 울 때도 그리 서럽고 차갑게 울어댔을까. 엄마의 품을, 따스한 온기가 스민 집을 떠나왔다는 생각에 온 몸에 한기가 스몄다. 눈이 붓고 몸이 부서지듯 울었던 그 밤을 보내고, 이제는 세상 홀로 태어난 듯이 먼 타지에서 잘 지내고는 있지만 종종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출처가 불분명한 그 눈물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되뇌곤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나, 나는 먹지 않으리라 여겼던 나이를 하나 둘 먹으며 얼굴에 시간의 흐름이 스미기 시작했다. 가끔 돌이켜보면 내 나이 무렵, 이미 우리 엄마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슴에 달았었다. 지금 나는 내 삶 하나 제대로 꾸리겠노라 아등바등 지내고 있지만 그 당시 내 엄마는 나와 언니를 돌보느라 자신의 삶을 살뜰히 돌보지 못 했다. 나와 언니가  자랄수록 엄마의 품은 우리가 비좁지 않도록 차츰 넓어져 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학교 때문에- 유학 때문에-, 나와 언니는 엄마의 품을 떠나왔고, 엄마는 쉽사리 메워지지 않는 자신의 빈 품을, 그리고 아이들의 온기가 스민 집을 오랫동안 헛헛한 눈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그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엄마'가 담겨 있는 집 안의 그 어떤 평범한 풍경도 모두 슬퍼지곤 했다.    


그렇게- '늑대 아이'는 왠지 세상의 모든 엄마를 슬픈 액자에 담아 두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딱지만큼 조그맣던 내가 언제 데굴데굴 굴러 덩치 큰 어른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마치 마법 같을 때가 있다. 어쩌면 그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마법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모양새로 태어나 자랐는지, 내 부모는 어떤 눈으로 내 성장을 바라봤을지 생각해보고픈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 .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 나오는 애니메이션 OST 'おかあさんの唄(어머니의 노래)'를 찾아 들어보길(되도록 한글 자막과 함께) 권하고 싶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잘 그려낸 가사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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