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잇 Jan 16. 2017

스낵 비요리(スナック日和)

에다마메

보통, 스낵바라고 하면, 웬만한 술안주 혹은 간단한 반주 거리 정도는 모두 팔고 있다. 게 중엔 돈가스도 있는데, 의외로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해, 타지에서도 맛보러 오는 손님들이 상당하다. 그래서, 우리 스낵바에는 젊은 손님들도 꽤 많이 온다. 


    그런 젊은 손님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라면, 우리 동네에 사는 유일한 젊은이인 사이토(斎藤) 말고 한 명이 더 있는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 긴 생머리의, 매주 토요일 마감시간(나는 보통 새벽 2시에 문을 닫는다.) 30분 전에 와서는, 에다마메¹와 우롱차를 시키는 묘령의 여인이다. 


    그녀는, 귀신같이 그 시간에 와서는, 항상 그 두 개만 시켜서 조용히 먹고 나간다. 항상 그녀의 자리엔, '언제나 잘 먹고 갑니다'라는 쪽지와 더불어, 노구치 히데요²가 나를 반겨줄 뿐이다.


언제는, 내가 하도 말이 없어서,


    "매주 혼자 오시네요, 아가씨"


라고 말을 걸어봤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조용히 에다마메를 까먹을 뿐이었다. 항상 조용하게 있던 그녀이기에, 나도 그녀가 오면 이젠 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은 그녀가 매일 오던 시간이 아니라, 12시에 찾아와서는 우롱차가 아닌, 맥주를 시키는 것이었다. 그녀가 우리 집에서 술을 찾은 것은, 그녀가 우리 집에 찾아온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벌컥벌컥 맥주 한잔을 쭈욱 들이켜더니, 예의 우롱차를 시켰다. 조금은 의아한 마음이 들어 말을 건네보았다.


    "아가씨, 오늘 힘든 일 있었나 봐?"


    역시나, 아무런 말이 없던 그녀인 건가라고 생각하고 다른 주문을 열심히 만들고 있던 찰나, 우롱차를 한잔 다 비우고서는 무거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슬퍼요. 그래서 잠이 오질 않네요."


그녀의 첫마디에, 나는 의외의 모습이구나 하고 그녀를 주목하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아가씨, 뭐가 슬프시길래?"

    "일단, 맥주 한잔요."


맥주 한잔을 건네자, 한 모금 마시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이미 결혼이니, 애인이니 좋은 소식만 들려오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 걸까요?"

    "음… 아가씨는 그럼 지금 아무것도 없는 거야?"

    "아니에요 그런 건. 나름 회사에서는 높은 지위이고. 사실, 지금 제 이름도 있는 아파트도 한 채 가지고 있는걸요. 그만큼 열심히 살아왔어요. 남들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내 행복을 위해서라면 열심히 해왔다고요. 그런데, 왜?"

    "그렇다면, 이제라도 그 행복을 찾아서 가면 되는 거 아냐?"

    "이미 늦은걸요. 문득 내가 해왔던 것들이 내 행복을 위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땐, 제 주변엔 남아 있는 것이 없었어요.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해서 연락이 잘 안 되고. 남자를 만나고 싶어도, 주변 에라곤 회사 사람들 뿐."

    "그럼, 회사 사람들이라도 만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지만, 이미 저에 대한 소문은 안 좋은걸요."

    "사람들은 뒤에서 안 좋은 소문들을 듣는 걸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건 아가씨 혼자만의 착각 아니야? 조금밖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선, 내가 나쁘다고 착각하는 건 대단한 실례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회사 직책 그 이상으로 보질 않은걸요."

    "그럼, 아가씨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랑 충분히 이야길 해봤어? 예를 들면 술을 같이 먹는다거나, 밥이라도 한 끼 하던가."

    "그건… 그쪽에서 별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해보지 않았으면서, 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다는 사람이, 왜 그건 열심히 하지 않는 거냐고."

    "사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무서워요."

    "무서울게 뭐 있어. 사람 관계는 밑져야 본전인 거야."


    그녀는 그렇게 다시, 아무런 말이 없이 남은 맥주를 들이켜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러더니, 조용히 일어나,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계산을 부탁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서, 나는 잔돈과 영수증을 꼭 쥐어주고는,


    "아가씨, 여태껏 해왔던 그 열정을, 이제 다른 곳에도 돌려봐요. 행복해지길(응원할게요)."


라는 말을 건넸고, 그녀는 울상을 지으려다, 이내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왠지 내 딸이 사회의 첫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는 마냥, 가슴이 찡해졌다. 그러고 보니, 사이토 녀석의 전화번호를 영수증에 적어줬는데, 그걸 눈치채려나.


¹풋콩. 술안주로도 많이 먹으며, 보통 통채로 삶아 까먹는다.

²일본의 생리학자. 천 엔 지폐 도안에 들어갈 정도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낵 비요리(スナック日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