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독서의 기록 4
나는 내 심장에서 내 핏속에서 울려 나오는
마을의 소리를 듣네
우리 모두는 멀리 바다를 잃어버리고......
만제 테 파스 페 이곳에서 노예로......
브르타뉴의 생 말로와 바닷가의 예쁜 도시 디나, 그리고 파리에 있었을 때 나는 그 사람들을 봤다.
그나마 파리가 아닌 곳에 사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은 비록 야외 식당의 테이블 대신 부둣가 계단에 앉아 있었어도 아이들의 머리를 예쁘게 장식해 주고, 나들이도 다니고 그랬다. 내가 아이가 귀여워 인사했을 때 그 부모가 반갑게 받아주기도 했다.
그러나 파리는... 온갖 유명한 관광지에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구걸을 하며 앉아있었다. 대부분 여자들은 히잡이나 차도르를 걸치고 있었고 말이다. 절박해 보였다.
그나마 안전한 지역인 몽파르나스 쪽에서는 좀 괜찮았다.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그들을 볼 수 있었고, 중국인이 사장이며 간장 대신 데리야키 소스를 곁들어주는 포장 초밥집 등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에펠탑 근처 작은 에펠탑을 파는 세네갈에서 온 어떤 젊은 친구는 참 붙임성 많고 좋았다. 성격도 쾌활하고. 장면 장면은 단편적이었지만. 그 장면이 담고 있는 정치, 경제, 역사, 전쟁 등등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여러 장면을 보고 현지에 터 잡고 사는 사람의 이야길 들었다. 각종 이민정책에 대해 불만을 토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됐다. 그들의 세금 부담 이야길 솔직하게 들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함. 무슬림권에서 프랑스로 온 사람들이 이야기. 무조건 아이만 많이 낳아 보조금을 얻어 살고 막상 그 돈으로 자녀를 돌보지도 않고 내돌려 키우는 일들의 부작용 '샤흘리 엡도'사건 등등. 그러나 그 반대편을 생각해 보게 됐다. 특히 이 책 <황금물고기>를 읽으며 특히 말이다.
자기가 사는 곳이 정말 안전하고 괜찮다면 왜 굳이 그곳을 떠나게 될까? 안전하고 평온하다면, 아니 완전히 안전하거나 항상 웃고 지내진 못해도 그래도 최소한의 생존과 안전이 보장된다면, '이방인'그것도 멸시받거나 공격받는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외국으로 도망치듯 다니진 않을 거다.
꽤 많은 돈을 들고 이사 갈 집을 고르듯 하기 어려울 거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내가 그물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면 낯선 곳에서 당할 수 있는 위험과 모멸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게 바로 이 소설 <황금물고기>가 이야기하는 주인공 '레일라'의 이야기다.
예닐곱 살에 갑자기 납치되어 북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소녀 노예'로 더부살이를 시작한 레일라. 누군가에 몸 붙여 살면 정말 복불복이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과 태도, 경제, 건강 상태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그나마 처음엔 유태계 스페인 부인의 집에서 일을 도우며 제법 좋은 대접을 받았던 작은 여자아이. 그러나 며느리와 아들이 구박하고 특히 아들은 성적으로 위협해서 매춘굴로 도망하게 되었다. 치안이 불안한 곳에서 공권력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게 되고 작은 여자아이는 도망자, 죄인이라는 걸 뒤집어쓰고 암약해야 했다. 그나마 그 매춘굴에서 돌봄을 받았지만 또다시 다른 곳으로 옮길 일이 생긴다. 그나마 프랑스인 부부가 이 아이를 잘 거두는 듯 보이지만 역시나, 늙은 남자의 롤리타콤플렉스가 문제였다. 그렇게 레일라는 흘러 흘러 빈민촌으로 들어가 연명하게 되고 너무도 열악하고 희망 없던 그곳을 떠나, 결국 살던 문화권과는 사뭇 다른 프랑스로 도망치듯 떠나야 했다.
좋은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머리도 제법 총명했다. 제1세계 프랑스나 독일인 교수가 길을 열어주려고 했지만 그들도 이 작은 여자아이를 성적으로 약취하는 데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볼꼴 못 볼 꼴 보면서 살아왔기에 레일라는 자기를 가두려는 그물에 대해 매우 민감했다.
어떤 만남은 레일라에게 정말 좋은 기회를 열어주는 것처럼 보였고, 레일라의 음악적 재능과 지능, 매력적인 외모가 적어도 어느 곳에는 정착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 르 클레지오는 보여준다. 레일라의 남자친구였던 누누를 비롯해, 같이 도망쳤던 임산부 언니 등등. 그나마 그곳에 정착하는 듯 보이지만 그들도 계속 식물인간처럼 이용만 당하고 산다.
결국 이방인으로 그곳에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낭만적이지만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제1세계의 백인들이 원하는 '그들의 바운더리'는 그냥 창고 같은 곳, 청소나 도우미 정도. 아무리 공부를 해도 그들의 세계에 받아들여줄 생각은 없었다. 문이 있는 듯 희망만 줄 뿐 아예 문이라는 건 있지도 않았다.
레일라의 보폭은 매우 넓다. 그리고 먹을 것 입을 것에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도 않고 말이다. 비참한 상황을 초인적인 인내심과 무심함으로 적응하며 잘 견디기에 여기에서 저기로 그물을 잘 피해 가며 옮겨 다닐 수 있었다. 작가는 이 과정을 매우 무심하게 명랑하게까지 표현했지만 읽는 나는 매우 슬펐다.
결국 레일라는 미국을 거쳐 자기가 납치되었던 그 '힐랄 족'의 고향으로 온다.
미국에서도 좋은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음악적 재능을 눈여겨본 관계자가 공연과 앨범 발매 제의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레일라는 알았다. 아이를 가져도 그 아이를 지킬 수도 낳을 수도 없는 곳. 철저히 '보이는 존재', '규정지어지는 존재'의 바운더리 안에서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제1세계였다. 비록 그곳이 자유의 나라인 미국이라 할지라도.
감성적인 시와 노래, 그리고 섬세하게 표현된 여정과 이 텍스트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하는 작품들이 이 끔찍한 스토리의 적나라함을 편안하게 또 납득할 수 있게 만든다. 프리 모티프를 이렇게 아름답고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게 바로 르 클레지오의 여러 재능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이 아닐까 싶다.
잔혹한 현실을 그저 르포처럼 전한 것도, 잔혹한 현실에서 약자가 되는 사람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묶어 동정심을 자아낸 게 아니라는 것이 이 소설의 장점 중 하나다. 레일라는 유일하다. 아무리 고통을 받고 천대를 받았어도 자기의 생각과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따라 어디든 간다. 작가는 납치당한 뒤 계속 도망다니는 '아프리카계 소녀'를 생존을 위해서만 사는 좀비나 불쌍한 여자로 묘사하지 않는다.
지금도 프랑스의 어느 구석에선 두려움을 안고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살던 곳을 탈출할 수밖에 없는 레일라가 또 다른 위험에 맞닥뜨리고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원래 터전을 철저히 착취하고 전쟁터로 만들어 놓고는 그 열매를 먹는 제1세계인들. 또, 자기의 정치적 야욕과 목적을 위해 변질된 종교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여자와 어린이들을 짓밟으며 식민지의 울분을 푸는 그들이 있는 한 이 슬프고 잔혹한 여행 혹은 도주는 그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