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아주 오래된 농담>

어떤 독서의 기록 5

by Dolphin knows

우리나라 소설은 참 오랜만에 읽는다. 최근에 읽었던 마지막 한국 소설이 정세랑 작가의 작품이었다.

정세랑 작가가 현실을 해부하고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고 가능한 미래를 그려내는 것이 참 맘에 들었다.

박완서 작가도 마찬가지다. 어디서부터 이 세상이 특히 대한민국이 어떤 식으로 미쳐돌아가고 있는지

매우 노골적이고 신랄하게 우리에게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자꾸 '에밀 졸라'가 떠올랐다.


돌아가실 때까지 도대체 다음엔 무슨 책을 쓸지 도저히 모를 정도로 샤프했던 작가. 날카로운 펜으로 날마다 새로운 괴물들을 보여주는 이 분이 정말로 맘에 들었다. 중고교 시절엔 보통은 엄마의 말뚝,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정도로만 알았던 이분의 작품을 대학을 거쳐 사회인이 될 때 만나보니 <노골적인 세련미>가 가득한 분이었다. 특히 이 분 작품중 인상 깊었던 건 <환각의 나비>와 <공놀이하는 여자>였다.


낭만따위는 저리 다 집어치우라고 하는 작가의 신랄한 태도 또 매우 담백하지만 예리한 묘사가 읽다 보면 재미있다가도 아팠다. 이 소설은 개와 늑대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한다. 그저 돈때문에 택한 지긋지긋한 결혼에서 벗어나 재산을 챙기고 자기 맘대로 사는 현금. 마흔일곱 살의 나이에도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사람. 개와 늑대로 따지자면 늑대인 이 인물은 사생활 문제 하나 없이 깔끔하고 모범적으로 사셨던 박완서 작가의 마음 속 어딘가 숨어있는 불온한 열정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영빈와 영준, 영묘 삼 남매의 이야기가 처음에 펼쳐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의 역할을 하다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큰 형 영준에게 배턴을 이어받아 집안의 긍지와 공급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영빈. 틀에 자기를 가두고 또 가두고 살아서 겉으론 번듯하게 살았던 공부잘하는 둘째 영빈이 제도권의 삶과는 한참 먼 현금과 만나며 이야기의 스파크가 튄다. 그저 그런 불륜 이야기냐 싶다가도, 이 현금이라는 사람이 그저 그런 팜 파탈이나 불륜녀와는 다른 느낌으로 그려지고 있다.


현금은 종이와 글자너머 그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했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반려견과는 한참 다른 늑대. 비슷한 생김새와 유전자를 지녔지만 생활패턴이나 감성은 한참 다른 늑대 그 자체! 현금은 이 소설 속 어떤 인간보다도 훨씬 생동감 있었고 불임 클리닉에서 만난 영빈의 아내 수경의 사정을 다 듣고는 인간적인 연민과 예의가 되살아났는지 조용하게 물러나고 영빈의 가정을 지켜준다. 신혼 첫날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려는 개망나니 사채업자의 아들을 단련된 손힘으로 제압하고 난 뒤부터 그렇게 밥을 차려달래도, 굶고 시위해도 밥을 안 차려주고, 불임이라고 증거를 만들어 그 집을 동정을 받으며 빠져나와버린다. 남이야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는 거다. 싫은 건 죽어도 안 한다는 그 태도는 어릴 때부터 그 나이까지 유구하다.


나는 이 여자가 '개가 아니라 늑대'구나 싶었다.

자기의 고상한 원래 이름 뜻인 거문고(현금, 玄琴), 대신 현금은 그야말로 현금(現金)이라며,

돈의 무서움과 인간이 돈을 가지고 어떻게 치사해지고 무서워지는지 애초에 깨달은 현금은 누구도 그녀에게 '사료'를 줄 수 없으니 스스로 사냥하며 살아온다.

나는 이 여자가 '개가 아니라 늑대'구나 싶었다.

이 소설에도 자꾸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말이다.

현금이 늑대라면 영묘와 영빈 그리고 영빈의 아내 수경은 딱 현금과 반대 지점에서 살고 있다.

강아지의 나라에서 제도와 집안과 때론 친어머니와 시가의 압박에 절어서 그대로 시들거나 자기 몸에 뭔가를 한다.

충분히 벗어날 수 있음에도 안 하는 건 개들이 주인 곁에서 사료를 얻을 가능성이 늑대보다 충분해서 였을까? 개과에 속하는 사람들은 다른 상상을 하고 삭풍을 맞는 것보다 때로 좋은 머리를 써서 잠깐의 발악 혹은 일탈을 하며 원래대로 주저 않는 편이 계산 상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본다.

실제로도 그 모든 것들이 이 소설에 드러나있고.



영빈 삼남매의 모친. 그 후지고 기만적인 태도도 맘에 안 들지만(작가가 정말로 그 같은 분들의 속을 들어갔다 나온 듯 아주 재수 없고 노골적으로 써주셨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좋았다.) 진심 밥맛 떨어졌던 건 영묘의 시가인 y건업 집안이었다. 겉으로야 재벌 운운하지만 사실은 땅 놀이를 하던 졸부, 그룹 어쩌고 해도 교양과 지식도 부족하고 사실 부도 직전의 기업을 온갖 교양 있는 척을 해대며 치장한다. 영묘도 이 소설 속에서 말하지만 돈을 쓰는 방법이 우리와 다르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이상하다. 보통은 의,식,주가 먼저인데 묘하게 꼬여있다. 부잣집 그것도 자칭 재벌이라 풍요로울 것같지만 그 식구들은 말도 안되는 이유로 '돈'으로 가스라이팅 당하고 통제당한다. 먹을 것 하나 마음껏 사먹을 수도 없고, 임신한 며느리가 자몽이 먹고싶어도 못먹어, 친정오빠에게 부탁해 그 자리에서 몇 개를 까먹고 있다. 특히 며느리 한복이나 홈드레스 사줄 돈도 안 해주면서 그 옷이 아니라면 안된다고 집안의 꽃 노릇을 시키고(그것도 영묘 오빠인 영빈이 사다 나름). 아들이 응급실에 갔을때 응급실 비용은 아까워 하면서 남들이 볼까봐 특급 vip룸에 입원시킨다.

우선순위가 묘하게 뒤틀려 있고. 이 엉망이 된 우선순위는 결국 죽음과 혼란으로 귀결된다.


무려 재벌가에서 아들이 그야말로 암에 걸려 죽어가는데도 아들을 치료하기 보단 아들의 죽음을 그럴듯하게 준비하는데 신경을 쓴다. 그것도 장남을. 이유는 나중에 나온다. 혹시라도 암에 걸렸다는 걸 알면 자기의 아내인 영묘와 자식에게 재산을 분할시킬까 봐. 무속이나 민간요법 그리고 집안과 관계있는 병원을 이용해서 끝끝내 아들을 죽게 만드는 과정을 묘사했는데 이거 분명히 소스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말도 안되는 농담같이지만 웬지 실제 있었던 일을 복사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죽음이나 남은 손자들의 맘을 위로하기보다는 그저 어떤 유명인이 왔는지 비디오로 찍고 있고, 천박한 땡중 사실 박수를 집에 들여 엉뚱한데 돈을 처바르질 않나. 이걸 박완서 식으로 다 까발려 묘사하는 데 중간중간 헛웃음이 터졌다. 이게 정말로 다 허구였으면 좋겠는데 실제 모 건설그룹을 모델로 해서 만든 거란다. 최근에 여러 이야기도 나왔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그 정재계 로비 엄청나게 한 지금은 공중분해된 기업이 한 짓과 그 무속 중독 이야기 등등. 이 소설속 y건업 자기네가 등신짓 해 아들 죽여놓고 며느리의 사주 탓을 한다. 한 술 더떠서 경제적으로 팔다리 자르고 사회적 식물인간을 만들려고 하기까지한다. 그러나 이 모든 헛짓은 부서진다. 영묘를 아꼈던 작은오빠 영빈의 고민 어린 e메일과 마지막에 꼭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나타나서 y건업의 시애비에게 제대로 서열정리해준 큰 오빠(A.K.A. 개를 짓밟아준 늑대)의 기지 덕에 말이다.

남들이 사는 대로 남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남 보기 그렇듯 하게 살기 위해서 사람들은 답답해하다가 미쳐간다. 누군가에 대한 연민 때문일 수도 있고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이미 남들이 사는 대로 사는 삶에 좋은 지분을 가졌을 때 그걸 놓기 힘들다. 그러나 그 중간에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욕을 먹든 말든 자기의 모습과 성질(특히 늑대의 경우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에)을 파악하고 손털고 런 하는 사람들이 결국 개들의 왕과는 상관없이 풍요롭고 자유롭게 산다. 작가는 말미에 이미 암을 초기에 발견하고 또 그 암 치료를 막을 점쟁이나 미친 집안사람들이 없는 치킨 박이라는 사람을 등장시킨다. 그러나 그도 결국엔 죽고 만다. 암을 고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는 이 이야기가 결국 '돈'이야기라고 한다.


박완서 작가는 이 이야기가 결국 '돈'이야기라고 한다. 그 말에 동의한다. 현금이 그나마 늑대로서 자유롭게 살았던 이유도 투자 성공 덕이 있고 영준도 미국이라는 기회의 땅에서 한몫을 잡고 영묘의 시가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조건 없는 100만 불 기부를 할 수 있었으니까. 작가도 이 돈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본인이 실패도 해보고 시도도 해서 번 돈이지 어디에 소속되어 꼭두각시처럼 번 돈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그들은 돈을 자기의 마음과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러나 자유롭게 살 만한 조건이 충분히 됨에도 불구 인격이나 행실 그리고 여러 가지로 쓰레기 같은 박수무당에게 잡혀사는 미친 y건업 집안을 보면 '돈'이 사람들을 잡아먹고 그 위에 귀신이 그 돈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모양새다. 나는 영준이 이걸 꿰뚫어봤다고 생각했다. 하긴 y건업 그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봐야 그 사람들에게 통하는 유일한 언어인 '돈'으로 서열잡지 않는 한 절대로 뭘 바꾸거나 할 수 없다.

그냥 그 생각을 했다 y건업 같은 집안이 어디 한 둘인가. 건너들은 이야기도 좀 어이없고 무시무시한 게 많아서. 모 호텔 사장. 아내를 때리고 자식시켜 고문하고 결국 자살로 몰아갔는데도 사법처리 안받고는 곱게 폐병 걸려 죽어버렸으니.

작가가 그래도 주인공들은 끝까지 아프게 몰지도 않고 때에 맞춰 구해줬음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지옥도를 본 느낌이다. 이 농담이어야 할 것 같은 현실이 이 나라에 아주 오래전부터 뿌리박혀있다고 말이다.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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