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lphin knows Mar 18. 2023

Fourplay "December Dream"

10곡의 음악과 10개의 이야기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면
새롭게 만나게 되는 것들

1991년 결성된 전설의 재즈그룹, 포플레이.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건반주자이자 작곡가인 밥 제임스와, 베이시스트 네이선 이스트, 드럼의 하비메이슨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쭉 활동하고 있다. 이 세분은 그대로 이고  기타 주자만 세 번 바뀌었다. 리 릿나워에서 래리 칼튼으로 그리고 2017 하늘나라로 떠난 척 롭까지.  2012년에 나온 이 앨범은 단단하고도 조화롭게 멋진 곡들을 채워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포플레이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한 사람이 튀기 보다는 여러 사람이 탄탄한 실력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참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곡 'December Dream'은 척 롭이 작곡했다. 척 롭은 브라이언 컬버슨과도 협업하며 길이 남을 곡들을 남겼다. 그래서 그런지 척 롭이란 뮤지션을 그리워하고 기리는 콘텐츠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을 싫어하는 그야말로 방통숭이. 이 오지랖 넓고 비교하기 좋아하는 문화에서 괜히 나서봐야 흠만 잡힐까 봐 어디 구석에서 조용히 글자를 읽거나 뭔가를 보고 생각만 하며 지냈었다.

그렇다고 호기심이 없는 편도 아니어서 새로운 정보나 기회가 오면 귀를 기울이거나 가만히 관찰하고는 한 발을 담가본다. 그러다 '어 이거 좀 위험할 수 있겠는데'싶으면 바로 줄행랑을 고.

그러다가 수년 전에 스페인어 학원에 기웃거리게 되었다. 소설가 '보르헤스'를 참 좋아했고 그의 작품에 매료된 시기가 있어 언젠가 그분의 소설을 원어로 읽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해서 친구의 소개로 원어민 직접 기초부터 교습하는 신촌의 모 학원에 덜컥 등록을 해버렸다. 그 정도의 모험은 어떻게 감당이 되더라. 사교육 학원이나 인강만큼 탈주가 쉬운 곳은 없으니 말이다.


그 학원엔 홀 같은 곳이 있었고 거기에서 음식과 주류를 팔고는 한쪽은 유리로 구분해 놓고 거기서 교습을 했다. 그리고 주말이나 그즈음에 사람들은 남미나 스페인의 음악을 틀어놓고는 춤을 추고 때론 그쪽 문화 공연을 하기도 했다.

꽤 체계 있게 잘 가르쳤다. 그 원어민은 나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었고 냉철한 부분도 있어서 언어 말고도 삶의 태도 등 배우고 싶은 게 많았다. 그리고 그 스페인어 수업은 영어로 이뤄져서(선생님이 한국어가 서툰 스페인 사람이라) 학생들이 한국인 말고도 다양한 외국출신들로 구성되었다.

뭐 그러다 친해지게 되고 말도 트게 되고 그렇게 되더라. 그곳은 학원이 아니라 복합문화 공간이어서 바 같기도 하고 레스토랑 같기도 하고 공연장 같기도 했다. 거기서 살사나 바차타 주크 등을 다양한 춤교습도 이뤄졌다. 가끔 선생님이 내게 '춤 안 배울래?'이랬다. 내 대답은 항상 'Me da miedo.'였다. 무섭다고 했다. 지금도 이 말을 잊지 않는 걸 보며 꽤나 자주 썼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계기가 생겼다.

거기서 몇몇 미국 여자애들과 친해졌는데 그 친구들이 춤 좀 배우라고 성화를 부렸다. 내가 말을 좀 잘 듣는다. 낯선 사람과 몸 닿는 거 끔찍해하는 나는 그 강력한 푸시에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일단 첫 단계로 동네 마트 문화센터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춤인 '플라멩코'를 배우게 됐다. 신기하게도 그러니까 이 방통숭이이며 남이 나 쳐다보는 거 싫어하고, 춤같은 정말 어색해서 절대 못하는 인간도 몸 움직이는 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다 결국 그 친구들에게 멱살 제대로 잡혀 이태원, 홍대 등등의 살사바에 끌려다니게 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처음엔 아 이게 뭐야 싶더니. 나중엔 아 그렇구나 까진 가게 되었다. 무엇보다 살사 음악이 꽤 내 취향이었다. 알고 보니 라틴재즈의 한 갈래라고. 스페인어를 배우던 그 학원엔 '라틴음악공연팀'이 자주 와서 공연을 하곤 했다. 여러 공연팀이 커버했던 노래 중 내 맘에 드는 것이 많았다. Luis Enrique라고 꼭 슈퍼 마리오 닮은 아저씨가 부르는 노래가 꽤 세련되고 좋았다.

어색하기만 했던 살사댄스의 순간을 즐겁게 바꿔줬던 루이스 엔리께의 노래들. 노래도 노래지만 세션팀이 미쳤다. 특히 건반!

그리고 그 미국인 여자애가 제대로 배우려면 한국 살사 동호회 들어보라 해서, 역시나 말 잘 듣는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 한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살사화를 샀다. 평소라면 절대로 쳐다도 안 봤을 반짝이 가득한 그것도 발바닥과 발목 아픈 힐을 사다니. 내가 어떻게 된 건가 싶었다. 그러나 이 살사화는 보기와는 달리 밑창이 매우 부드럽고 편했다. 역시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세계가 있다.


출처 : 신세계 닷컴

내가 몸치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았기에 '잘해야겠다'라는 부담감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꽤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몸이 닿는 문제는, 시간이 잘 해결해 주더라. 누구든 처음이라 어색하긴 마찬가지니까. 그냥 나는 남들보다는 좀 더 나이들어 살사를 배우기 시작한 처지라 나보다 어린 애들에겐 '어휴, 네가 몸치 누나 리드해 주느라 고생한다. 연습해서 멋진 공연 해!' 뭐 비슷하거나 나이 좀 더 있는 사람에게도 '고생 많으십니다. 나랑 많이 연습해서 멋진 사람이랑 더 멋지게 추세요' 뭐... 이런 마음으로 임하니 또 그럭저럭 할 만했다. 무엇보다 일단 춤을 춰보니 유산소 운동 하나는 확실하게 됐다. 처음엔 20분도 못 버티고 헥헥대다가 나중엔 한 시간 두 시간도 버틸 수 있게 됐다.  

공연할 기회가 좀 있었는데, 워낙 예쁘고 잘생기고 젊고 잘난 애들이 많아서 굳이 나 같은 몸치가 거기 들어갈 이유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역시 대한민국이라 춤을 정말 잘 춰보겠다고 몸을 갈아 연습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이었다. 굳이 나까지 거기 동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매일 움직이지 않고 생각만 하는 나와는 달리 일단 무슨 일이든 부딪쳐보고 아무래도 계속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성격이 화통하고 친화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꽤 많았다. 물론 어디에나 또라이는 있었다. 나도 몇 또라이에겐 엇 뜨거라 하며 질려서 손 털기도 했으니까. 그나마 나는 술을 전혀 못해서 뒤풀이 자리엔 거의 가지 않거나 초반에 집으로 가버렸다. 그 덕에 떠들썩한 사건을 목격하거나 그 중심에 설 기회가 없었고 무엇보다 나란 사람은 남이 주목할 부분이 별로 없는 평범이었다. 특히, 그 세계에서 한 획을 긋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사람도 아니어서 '그들만의 뜨겁고 무시무시한 사연'의 주인공이 될 일은 저절로 피해 갔다.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해 12월 갑자기 나는 사내정치에 질려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수년 만에 여유라는 걸 갖게 됐다. 하필 그때 같은 기수 공연이 있다고 했고 아 그럼 해볼까 맘이 생겨버렸다.


공연이라니, 세상에나


그렇게 총 8명이 공연연습을 하게 됐다. 참 다행인 게 그 공연멤버들이 성격이 하나같이 참 원만하고 좋았다. 특히 전체 안무를 짜고 리드하는 여자 동생은 키도 훌쩍 크고 성격이나 외모도 시원시원하고 매력적이라 같이 있으면 정말 즐거웠다. 매번 연습할 때 영상을 찍었는데, 그때 점검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 보면 정말 형편없었다. 이런 나를 어르고 달래 가며 공연 때까지 사람 꼴 만들어준 그 친구에게 경의를 표할 정도다.

그리고 공연 당일, 내가 좀 실수를 하긴 했지만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이게 성취감이라는 건가?

술자리 극혐하고 남과 접촉하는 거 싫어하고 조금만 신세 져도 무조건 갚아야 하는 <혼자가 제일 좋아> 형의 인간이 조금씩 변해갔다. 사람을 검증하고 검증해서 내 카테고리에 넣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개방성이라는 게 조금은 생겼다.

그리고 공연 과정에서 같이 밥을 먹고 연습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먹을 것을 싸들고 응원 와주는 또래 여자애들을 만나 감동하기도 하고 뭐 그랬다. 신기하게도 나는 거기에서 괜찮은 여자들을 만났다. 그렇게 하나하나 친구라는 이름으로 수집되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내 안부를 묻고 필요한 때 큰 도움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 해 12월이 이제 수년 전이다. 그때도 지난 겨울만큼 추웠고 몸이 안 따라서 고생을 하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지하 연습실에서 사람들과 보낸 시간을 꽤 즐겁고 따뜻하게 기억한다.  

지금은 체력이고 멘탈이고 다 안되어서 더는 춤을 추진 않는다. 그럼에도 평소의 나와는 정 반대로 살았던 몇 년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전 08화 Innsbruck ich muss Dich lassen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