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곡의 노래와 10개의 이야기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대한이 살았다'는 3.1운동 직후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 함께 투옥되어 옥중에서도 만세운동을 펼친 7인의 여성 독립운동가 김향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어윤희, 유관순이 서로를 위로하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드높이고자 지어 부른 노래로 후손들에 의해 가사만 전해지다 KB국민은행이 선율을 재창작했다. 지난달 27일 최초 공개된 '대한이 살았다'는 박정현 노래, 김연아 내레이션으로 화제가 됐는데, 이번에 정재일 음악감독의 목소리로 다시 만들어졌다.
정선은 기자, 국민은행, 정재일이 부른 '대한이 살았다' 음원 추가 공개, 한국금융, 2019.03.12
https://www.fntimes.com/html/view.php?ud=201903121902555348179ad43907_18
이 글은 제가 지난 2017년,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독후감 공모전에서 주미대사관상(한라상)을 수상한 글입니다.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했던
명민한 지식인의 생생한 목소리
‘알면 사랑한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분의 책 발간 기념 세미나에 간 적이 있다. 세미나가 끝나고 책에 사인을 받았는데 위의 저 문구를 적어주셨다. 한 줄의 글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말의 깊이와 무게의 가치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사람이나 어떤 대상을 사랑할 때 지성과 감성은 서로 앞서고 혹은 뒤에서 지지하며 그 열정을 실천으로 끌고 가지만, 처음에 사랑이 시작될 때는 우선 알아야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되어야 열정은 대상에 대한 성실성으로 열매 맺는다. 그 사랑과 헌신이 진실하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호머 헐버트 박사가 얼마나 조선을 알기 위해서 노력했고, 조선이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향해 나아가길 바랐는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고종황제가 가장 신뢰했던 외국인이며, 안중근 의사도 돌아가시기 전 박사의 업적을 치하할 만큼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작은 나라를 위해 직접적인 독립운동부터 문화 정립은 물론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한국의 언어를 연구하고 정비했으며, 교육사업과 선교활동까지 병행했던 호머 헐버트. 우리 민족에게는 영웅이요,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이고 빛나는 업적을 지닌 인물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한국을 위해 싸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가진 많은 부분 중 일부, 열매나 결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그러한 숭고한 행위 뒤에는 그 행위보다 더 숭고하고 진실한 한 사람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사람의 진실한 면모를 알려면 그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고,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미 그가 사모했던 하늘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은 그가 남긴 기록을 깊이 읽는 것이다.
그래서 호머 헐버트의 평전이 아닌, 호머 헐버트의 목소리 그 자체를 담고 있는 이 책이 내게 무척 유익했다. 읽으며 재미있었던 부분은 명민한 두뇌와 예술적인 섬세함과 모험심을 갖춘 젊은이가 한 민족의 위대한 스승으로 성장하는 과정, 한국과 한국의 말글과 문화 한국 민족에 대한 그의 호기심과 호감, 때론 실망과 이해를 오르내리며 조금씩 쌓아가는 알면서 사랑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이하게도 가장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그가 한국으로 첫 항해를 떠나서 한국의 해안과 자연환경에 두려움을 느낀 과정을 가감 없이 표현한 부분이었다.
또한, 새해축제를 실컷 구경하고 관찰하다 통행시간이 지나서 동료와 함께 담을 넘은 것, 지저분하고 벼룩이 끓는 주막에서 잠을 청하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린 기고문을 보고 헐버트 박사가 위인이기 이전에 서구에서 천진난만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년의 심장을 지니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을 영웅으로 포장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감상적인 동정심으로 한국인들을 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영웅으로 포장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감상적인 동정심으로 한국인들을 대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숨겨진 재능에 놀라면서도 부족한 부분은 글 속에서 바로 지적했다. 누군가에게 아첨하거나, 대충 겉핥기식으로 보고는 감상에 젖는 것은 그답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헐버트 박사가 어떤 글에서도 자신을 부풀리거나 혹은 억지로 낮추는 척하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아마 태생적으로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헐버트 박사는 위인이기 이전에 관찰력이 매우 뛰어난 지식인이었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특히 놀랐던 것은 그 언어에 대한 놀라운 재능이다. 천로역정을 번역하고, 조선의 말글에 능통했던 것은 둘째다. 기본적으로 학자에게 꼭 필요한 자세와 언어의 발생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과 그 끈기 있는 연구와 결과가 그가 직접 쓴 글의 모습 그대로 이 책에 담겨있다. 그저 그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자신의 삶에 녹여 넣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기록의 진실성은 바로 그의 인격적인 모습에서 더욱 강화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직접 다른 나라에 조선을 소개한 글 조선에 머물고 살고 특히 조선의 말글을 연구하고 조선의 미래에 대해 염려하고 기대했던 모든 글들을 담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꼭꼭 씹어 읽으며 호머 헐버트라는 사람이 했던 모든 파격적인 행보와 역사에 길이 남을 의롭고 선한 행적보다는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방향성’과 소신, 무엇보다 탐구하고 연구하고자 하는 자세, 그 명민함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순간순간 진실하고 겸손했다. 그의 귀한 인격적 자질은 그가 직접 집필한 사민필지의 머리말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한 외국인이 조선말과 어문법에 익숙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특별히 언문으로 천하 각국 지도와 목견한 풍기를 대학 기록할 새 먼저 땅덩이와 풍우박뢰의 어떠함과 차례로 각국을 말씀하니 자세히 보시면 각국 일을 대충은 알 것이요 또 외국 교접에 적이 긴요하게 될듯하니 말씀의 잘못됨과 언문의 서투른 것은 용서하시고 이야기만 자세히 보시기를 그윽히 바라옵나이다. (본문 중)
또한 드라비다어와 한국어를 비교한 본문을 살펴봐도 그렇다.
준비 부족으로 인한 이 논문의 빈약한 결과에 양해를 구하면서, 한국어와 드라비다어의 어휘의 유사성에 관한 비교표를 제시하고자 한다. 드라비다어 단어 250개 중한국어와 유사한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본문 중)
이 글에서 볼 때 헐버트 박사의 겸손은 한국인들과는 다르게 유교문화권에서 성장해온 동양인의 겸손과 겸양과는 다르다. 예 할 것은 예, 아니오 라고 할 것은 아니오 라고 말하라는 성경의 한 구절을 그대로 살고 있는 듯했다. 소신있는 지식인이 자료의 부족함을 아쉬워하며, 바로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본다. 이 책의 모든 글들이 귀하지만 바로 이런 부분이 백미라고 본다. 이런 부분들을 읽으며 헐버트 박사의 담백함이 그가 해낸 위대한 업적의 근원지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그는 교육서를 직접 집필하기도 했고, 여행기나 정치나 종교 관련 이슈에 대해서도 글을 많이 남겼지만, 무엇보다 한국의 말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애정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애정은 한국의 말글을 만든 세종대왕을 연구하면서 더욱 깊어졌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세종의 한글 창제 목적은 백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세종은 백성의 임금이었다. (본문 중)
결론적으로,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고 요동의 중국인 학자에게 열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 비판과 조언을 구한 세종은 모든 위인들의 특징인 겸손함을 지녔음에 주목하라. 또한, 백성의 관습을 배려하고 백성에게 익숙한 한자 필법에서 최대한 적게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음소를 삼각 구조로 배열하여 음절을 이루게 할 만큼, 탁월한 실용성을 지녔음에 주목하라. 이러한 점에서 세종은 참 독창적인 인물이었다. (본문 중)
그는 세종을 이렇게 평가했고, 그에게서 바로 이 세종대왕의 위인으로서의 자질을 발견했다.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 조선의 말글 연구에서 다양한 나라의 언어와 한글을 비교한 논문들을 참고하고 다른 지식인의 의견이 있으면 막힘없이 받아들이는 모습. 자신의 연구한 것들을 꼼꼼하게 되짚고 재검증하는 과정을 볼 때 세종대왕이 가졌던 위인의 자질을 그도 지니고 있음을 본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난, 그저 위인으로만 알고 있었던 헐버트 박사의 관찰하기 좋아하고 모험심 있는 청년기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 모습에서 타고난 호기심과 명민함으로 한글을 연구하는 학자의 모습 나중에는 그렇게 앎으로 탐구하던 조선을 아파하고 사랑하게 되는 지도자적 면모에 감탄하게 된다. 지성이 빛나던 양심적인 지식인의 공감 능력과 아픈 심정을 발견하게 된 구절이 있다.
조선이 국가 재정을 위해 돈을 좀 모으면
중국이 그 돈을 삼켜버리고,
조선이 예술을 고양시키면
일본은 예술품뿐만 아니라
예술품의 생산자까지 도둑질해 가버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과거 한때 중국과 일본은 조선의 예술, 성장 동력, 그리고 꿈까지 빼앗아간 흡혈귀 같은 존재들이었다. 조선인들은 자신이 열심히 문명 진화를 위해 노력한다 해도 국경 너머에서 누군가 쳐들어와 희망의 싹을 잘라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조선이 국가 재정을 위해 돈을 좀 모으면 중국이 그 돈을 삼켜버리고, 조선이 예술을 고양시키면 일본은 예술품뿐만 아니라 예술품의 생산자까지 도둑질해 가버리는 상황에서 말이다.(본문 중)
이상 다섯 가지 발명품(금속활자, 거북선, 현수교, 폭발탄, 한글)은 한국의 자랑거리인 동시에 불명예이기도 하다. 이러한 위대한 발명품들은 한국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발휘되는 발명에 대한 잠재 능력을 잘 말해주지만, 한국인들을 칭찬만 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그토록 놀라운 발명의 성과를 이뤘지만, 그 성과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위대한 발명품들을 사장시켜 버렸기 때문이다.(본문 중)
세종대왕이라는 뛰어난 위인이 통치했던 나라, 또한 그가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해외에 소개한 조선의 다섯 가지 위대한 발명품이 사장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
헐버트 박사가 한국에 대해 더 알면 알수록 애정도 깊어지지만, 그만큼의 아픔도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의 발명품을 소개한 부분에서는 스스로의 가치를 사장한 한국을 비판하는데, 그 안에 담긴 진심과 안타까움이 보여 그 부분만 몇 번을 다시 읽게 되었다.
사실, 책의 시작 부분은 한국인인 내게 무척 아프게 다가왔다. 그저 구한말 한국의 정치제도뿐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부패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구열강들이 득세했고, 우리보다 먼저 서구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이 강제로 우리의 국권을 빼앗고 짓밟았다 정도가 내가 아는 범위였다.
그러나 헐버트 박사의 눈으로 본 당시의 조국은 무척 비참했다. 대한민국의 적은 일본뿐 아니라. 중국의 견제와 열강의 역학관계 속에서 숨조차 쉬지 못했던 정치적 상황. 각종 제도적인 여건과 의료와 교육의 부족과 절망하고 삶을 포기한 젊은이들과 고통받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담백하지만 아프게 담아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등 우리의 역사 속엔 푸른 눈의 목격자들이 있었고, 헐버트 박사도 그런 분 중 하나였다고 본다. 이 나라 밖에 있기에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한국의 한계와 가능성 아픔과 휘말릴 수밖에 없는 사정까지 바로 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 분들의 기록이 중요한 것이다.
2014년 여름 난 런던에 일주일간 머물렀고, 귀국하기 전날 꼭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들렀다. 성공회에 몸담은 적이 있어서 종교적으로도 관심이 있었고, 무엇보다 찰스 디킨스와 엘리자베스 1세, 헨델과 윌리엄 윌버포스가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사원의 돌 하나하나가 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의 발자취였고 시대가 할퀴고 간 상처와 음모 그리고 위대한 성취까지 다 담고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잠든 그들만큼 격변의 시대에 살았고, 태평양을 건너 긴 항해를 했고 서양에서 태어나 동양 한구석의 조그만 나라에서 황제의 고문역할을 했으며, 태어나지도 않은 나라의 독립과 계몽을 위해 살았던 헐버트 박사. 그분의 삶의 무게와 업적을 볼 때 충분히 거기에 잠들어 있는 인물과 견주어 봐도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헐버트 박사는 자손들에게도 영예로울 그곳에 묻히는 것보다는 위태로운 운명 앞에서 선 한국에 묻히기를 바랐고, 실제로 그리됐다.
아기가 태어날 때는 놀람과 당황으로 그저 자기 뜻과는 달리 울음을 터뜨린다. 그래서 모든 울음이 뜻이 없고 비슷하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자라 다양한 경험을 하며, 때론 영광과 고난을 겪으며 삶을 마감할 때 하는 말은 그 사람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마다 유언이 다르다고 본다.
나는 이 책을 펼치기 전에 헐버트 박사가 자신이 묻혀야 할 곳을 힘주어 말한 부분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 결국 책을 덮으며 그분이 왜 그렇게 말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한국 땅 양화진엔 누구보다도 한국인을 잘 알고 사랑했던 지식인이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