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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 수도원 순례

프랑스 노르망디 - 몽 생 미셸 수도원

by 유럽집
프랑스 몽생미셸 여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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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버킷리스트, 성지 순례



1999년에서 2000년도로 넘어갈 때 우리도 밀레니엄 바이러스니, 지구의 종말이니 그런 거 조금씩 믿었었잖아요? 그와 비슷하게 중세 유럽 사람들도 999년에서 1000년으로 넘어갈 때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전 세계가 멸망할 거라고 믿고 살았었데요.


두려움에 떨다 서기 1000년이 되고 아무 일이 없자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보다는 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참회'라는 뜻을 담고 '성지 순례'라는 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참회 이기도 하고, 성지 순례 이기도 하고 여행이기도 했던 셈이죠.


중세시대를 한번 생각해볼까요? 영화 <장미의 이름>을 봐도 좋고요, 그동안 봤던 중세 배경의 미드 <왕좌의 게임>이나 <라스트 킹덤>을 떠올려도 좋습니다. 지역 영주나 기사에 속해서 안전을 보장받는 장점도 있지만 우리의 조선시대 삶처럼 평생 한 곳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게 대부분이었을 거예요.


중세 사람들은 얼마나 떠나고 싶었을까요. 게다가 영주나 기사가 악덕하다면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을까요. 그래서 수도원 순례는 신앙심으로 떠나기도 했던 한편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중세 사람들에게 '버킷리스트'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중세 사람들에게 순례지였던 프랑스 서북부, 몽 생 미셸 수도원. 이번엔 그들의 이야기도 함께 해드릴게요.




Episode. 몽생미셸 수도원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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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세인들은 목숨을 걸고 순례길을 멀으며 무사히 새 천 년을 맞이한 데 감사했다"



책 <미술이야기 4>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창 밖을 보면서 중세 순례자들에 대해 상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마을, 풍경, 드넓은 초원을 지나 마침내 바다 위에 떠 있는 '몽생미셸 수도원'을 보는 그 순간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저는 자동차로 세상 편하게 갔지만 중세 사람들은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위해 몇 달, 몇 년씩 오직 두 다리로 걸어야 했을 거예요. 고향의 가족, 연인을 뒤로한 채 도적을 만나 객사할지도 모르는 그 순례길을 말이에요. 어쩌면 가는 중간중간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달랐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더군다나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했습니다. 도대체 이 힘든 순례를 왜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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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몽 생 미셸' 추측 모형 / 밀물 때 '몽 생 미셸'(출처: 프랑스 관광청)


1000년 넘게 바다 위에 오롯이 서있는 미지의 섬 X 순례자.



바닷물이 차있는 몽 생 미셸은 갑자기 차가운 기운이 몸을 휘감은 것처럼 뭔가 두렵기까지 합니다. 실제로 순례자들은 키보다 높은 바닷물이 밀려와 익사한 경우도 많았다고 해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마치 '순교'처럼 여기고 겸허히 죽음을 맞이했다는 겁니다. 무사히 건넜을 땐 아마 용서받았다고 생각했었겠죠? 그렇게 참회를 위해 순례를 떠났던 거겠고요.


몽생미셸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언덕 위에 있는 세인트 미카엘 천사의 교회. '성 미카엘 천사'가 오베르 주교의 꿈에 나타나 이 곳에 교회를 지으라고 했던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초엔 위 사진처럼 작은 교회가 지어졌고 세월이 지나면서 다양한 양식으로 증축되고 마을도 생겨났다고 해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유명한 순례지가 된 이유는 그곳에 '야곱'이 순교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몽생미셸도 대천사 세인트(성인) 미셸(영어로 미카엘)의 전설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기로 순례를 떠났던 게 아닐까 싶어요.


유럽의 종교는 예루살렘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터키를 지나 이스라엘로 가야 했지만, 그곳은 십자군 전쟁 때도 뺏지 못한 먼 곳이었기에 스페인이나 프랑스에 있는 교회로 순례를 떠났을지도 모르죠. 예루살렘을 제외한다면 중세 사람들에게 몽생미셸은 그야말로 신비로운 곳이었을 거예요.


'갯벌'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선 인천을 시작해 호남지방을 잇는 넓은 황해의 갯벌이 익숙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몽생미셸을 있는 프랑스 서북부 살지 않고서 평생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갯벌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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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습기가 엄습하고, 드넓은 갯벌이 바닷물에 잠긴 섬 X 수도사


1. 평생 수도원 안에서만 살 것

2. 절대복종, 순결, 근신할 것

3. 운동 경기를 삼갈 것

4. 하루 7시간 노동할 것


몽생미셸에 살던 수도사들의 규칙이었습니다. 노동을 하는 시간은 성경을 옮겨 적는 '필사'를 했을 거예요. 인쇄술이 발전되지 않았던 이 때는 수도사들이 돌돌 말려 있는 양피지에 성경과 삽화를 기록했다고 전해지거든요. 그런데 평생 수도원에 산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밤이 되면 수도원 주변으로 바닷물이 차오르고, 몸에도 차갑고 축축한 습기가 휘감습니다. 이렇게 밤이 될 때쯤 일과를 마친 수도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때 수도사들은, 현대 사람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종교의 경이로움'을 절실히 믿었던 거겠죠.


인간은 드넓은 자연 안에 점이라고 생각하며 영적인 힘과 능력에 납작 엎드린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정말로 저도 몽생미셸 수도원에 올라서 주변을 둘러보니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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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수도사를 경험해보는 여행.



딛고 있는 땅의 역사는 얼마나 될지, 차 창 밖의 세상은 어떤 온도인지, 바람은 부는지 어떤 사람들이 그 바람 속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끝없이 궁금해할 것을 찾고, 그에 대한 답도 찾아보는 거. 그런 게 바로 여행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요. 몽생미셸에 다녀오면서 순례자로, 수도사를 생각해보면서 그곳을 경험해보니 뭔가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길 위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참회하는 것. 인생의 답을 찾아보고 정말로 구하는 것. 이게 중세 유럽 사람들이 순례를 떠났던 이유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아닐까요.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옛날 사람들은 생명을 걸고 떠나야 했으니 좀 더 간절하게 이 곳에 도착했을 때 기뻐했을 것 같아요.


몽 생 미셸 수도원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 마지막 장면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 곳. 프랑스 파리를 여행한다면 하루쯤 근교 여행으로 여기를 경험해보는 여행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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