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역을 나누는 '도'처럼 스페인에도 몇 개의 '주'가 있습니다. 코르도바가 있는 주는 '안달루시아'라고 불리며, 안달루시아 안에는 세비야, 그라나다, 네르하, 론다처럼 스페인을 대표하는 여행지가 있어요.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나, 얼마 전 티브이에서 방영했던 <세비야의 이발사>의 배경 도시 세비야처럼 코르도바도 너무 매력적인 소도시예요.
소도시라고 표현하는 게 어떤 의미로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남 경주와 비슷하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과거에 번성했던 곳. 네 코르도바는 변색되어 아주 낡은 흰색에서 왠지 모를 감동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코르도바는 아름다운 하얀 장미'라고 부르고 싶어요. 거기서 오는 오묘하고 이상한 감정을 느끼려고 2015년, 2019년 이렇게 두 번이나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코르도바의 옛 이슬람 사원 '메스키타' 사원에 들어서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될 거예요. 2만 5천 명이 동시에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린 세계 3대 이슬람 사원이 눈앞에 펼쳐질 테니까요.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와 함께 이슬람을 대표하는 메스키타 사원은 카를 5세의 말처럼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절실한 가톨릭 국가 스페인에서 이슬람을 느껴보다니. 왠지 기대되지 않나요? (웃음) 지금부터 코르도바와 메스키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Episode. 스페인에서 이슬람 느껴보기
옛 이슬람이 지은 이름, 알-안달루스(현 안달루시아).
지금은 안달루시아의 중점 도시가 '세비야'이지만, 안달루시아의 역사는 바로 여기 코르도바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역사 깊은 곳입니다. 스페인 땅에 침범해온 최초의 이슬람 민족들은 왕국을 만들었고 그 수도가 바로 여기, 코르도바 였으니까요. 그래서 이슬람의 문화가 오래전부터 짙게 배어있는 곳이에요.
딱 봐도 뭔가 전형적인 유럽의 모습은 아니죠?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사원'은 특히 대표적 이슬람 양식으로써 로마의 건축술에 이슬람의 기술력을 더해 화려한 장식으로 지어졌어요. 베이컨 무늬로 줄무늬가 있는 '2중 아치'의 사진 보이시죠? 건축적으로는 과하게 설계된 구조이지만, 저 '2중 아치'를 보면 로마보다 우월하다고 자랑하고 있는 이슬람 사람들의 표정이 상상됩니다.
메스키타는 스페인에 현존하는, 그리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슬람 모스크예요. 그래서 이름도 '메스키타'라고 불리죠. 정확한 철자는 <Mezquita-Cathedral de CÓRDOBA>입니다. 중간에 붙은 'de'는 영어의 'of'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그런데 앞에 붙은 메스키타라는 단어와 뒤에 붙은 코르도바라는 단어는 이해되는데 가운데 '카테드랄'이라고 불리는 건 뭔지 궁금하시죠? 아래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 이어갈게요.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처럼 자신이 믿는 것을 성스럽게 만든다.
- 에르네스트 르낭
딱 컬러만 봐도 진주 펄이 들어간 것 같은 흰색과 고추잠자리의 스트라이프 같은 붉은색이 대비되죠? 천정의 화려한 조각과, 베이컨 무늬의 2중 아치도 뭔가 부조화스럽스럽게 보이고요. 그 이유는 서로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해 지은 가톨릭 성당과, 이슬람 사원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메스키타 사원 명칭에도 성당을 뜻하는 '카테드랄'이 가운데 들어가게 된 것이고요.
그렇다면 왜 가톨릭 성당과 이슬람 사원이 '기이한 동거'를 하게 된 걸까요. 더군다나 두 종교는 각각 '하나님'과 '알라'라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데 말이죠.
스페인은 원래 로마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엔 메스키타가 있던 자리에 로마 가톨릭 성당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 로마가 멸망하고, 이슬람 세력이 들어와 성당을 허물고 엄청나게 큰 이슬람 사원을 짓게 된 거죠. 그게 이 '메스키타'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500년 정도 지나고 다시 스페인 가톨릭 세력이 이 코르도바를 재점령합니다. 그걸 스페인 역사에선 '국토회복운동'이라고 불러요. 그 이후 메스키타는 문화적으로 폭력을 당하게 되는 거죠. 강제 리모델링 되게 됩니다. 세계 3대 이슬람 사원 가운데 난데없이 '고딕 성당'을 증축하게 된 거예요.
덕분에 우리는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동시에 '이슬람'을 느껴볼 수 있게 되었지만, '문화재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50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일이긴 해요.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다른 소중한 것에 대해 '훼손'이라는 폭력을 서슴지 않기도 합니다.
코르도바는 아름다운 하얀 장미.
인기리에 방영됐던 <왕좌의 게임> 시즌 1에서 코르도바의 로마 교가 등장합니다. 실제로 이 로마교는 2천 년 전에 지어진 다리입니다. 로마교가 있는 '과달키비르 강'을 기준으로 메스키타가 있는 구시가지와, 칼라오라 요새가 있는 지역으로 나뉘게 됩니다.
저도 칼라오라 요새 쪽으로 깊숙이 가보진 않았지만 로마교 주변엔 한강 공원처럼 가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니 코르도바를 방문한다면 칼라오라 탑 쪽으로 건너가 맞은 메스키타 사원이 보이는 곳에서 사진 한 장 남겨보세요. 낮에도 멋지지만 조명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밤에도 멋진 풍광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왜 "코르도바는 아름다운 하얀 장미"라고 한지 아세요? 책 <안달루시아에 반하다>에 그렇게 소개되어 있기도 했지만 정말로 코르도바에 가면 하얀색으로 칠해진 낡은 집들이 너무 예뻐서예요. 흰색은 깨끗함의 상징이지만 코르도바의 흰색은 변색되어 아주 낡은 빛깔입니다. 거기서 느껴지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경험했어요. 단순히 "깨끗하다" 또는 "더럽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뭔가 모를 오묘함.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조차 알 수 없는 감정. 아마 한국에 있으면서는 거의 보지 못했을 '이슬람 양식'이 여기저기 베어서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페인을 가신다면 꼭 남부 안달루시아도 들러 보세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세비야, 그라나다, 코르도바를 모두 간다면 좋겠지만 꼭 한 군데를 가야 한다면 코르도바는 중간 두 번째로 추천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비밀로 할게요. 하지만 제가 간다면 전 반드시 코르도바를 다시 가고 싶어요. 이번에 가면 세 번째가 되겠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