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환율이 급등해서 문제다. 원화 가치가 연일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들어 1300원대를 훌쩍 넘어선 환율이 9월 들어서는 14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당분간 환율 하락이 계속되리라 보고 일반 국민들마저 달러 사재기에 나섰다는 분위기다. 정부 당국은 외화가 충분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IMF 외환위기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외환위기 때는 제조업 경기가 괜찮았다. 가성비 차원에서 비교해보면 그렇다. 외환위기 이전에 환율이 900원 정도 유지되었던 것이 외환외기 이후에 1200원 대로 진입했다. 이후 환율은1200 원대를 오르내리며 20여 년간 지속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환율이 올라갔지만 그 때문에 수출이 살아났고 무역구조가 흑자로 전환되었다. 그 결과 제조업이 우리나라를 살렸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환율이 높아져도 수출이 떨어지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어 수출증가액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해외 투자 수요가 안정자산으로 도피하면서 갑자기 달러가 급등했다. 당시 미국은 달러를 진정시키기 위해 돈을 대규모로 푸는 양적완화를 통해서 달러 가치를 떨어뜨렸다. 지금처럼 미국이 금리인상을 통한 긴축정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외 환경에서의 차이가 과거의 그것과 뚜렷이 다르다. 이번 9월에 미국 연준이 0.75% 금리를 올림으로써 한국과 금리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무역수지도 당분간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안보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원화 하락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도 금리를 더 올려야 하지만, 지금 금리를 미국보다 더 올리게 되면 가계부채가 더 커져서 붕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위험해진다. 그래서 한국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고 있는 것이다.
2022년 인플레이션은 과거와 다르다
금년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전쟁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유가가 급등해서 물가상승을 부추겼다. 갑자기 글로벌 공급이 끊겨서 내수로 번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유 가격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온 상황이다. 하지만 서비스업이 40%이상 올라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오르던 초기에 물가를 잡았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의 인플레이션 상황은다르다. 서비스보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서 물가가 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처럼 서비스업이 올라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므로 물가를 잡으려면 미국처럼 금리인상으로 가야 한다.
환율상승과 무역수지 적자
물가가 오르니 환율이 급등해서 난리다. 환율이 이렇게 빠르게 급등할지 한국은행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신뢰를 잃어버려 외화가 빠져 나가고 있다. 외부에서는 한국을 보고 ‘외통수에 걸렸다’고 본다. 금리인상을 하기도 뭐하고 안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무역수지까지 적자가 지속되어 있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주목할 것은 5월부터 대중 수출이 적자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그 전부터 중간재 수출이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갑자기 5-6월부터 대중 수출 품목 가운데 40% 이상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반도체 역시 수출 증가율이 6월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5월은 새로운 정부가 취임한 시기이다. 바이든의 한국 방문 이후 중국이 한국 제품의 수입을 줄이고 있다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문제는 ‘칩4 동맹’ 이다
반도체 산업은 산업의 재편에서도 중요 산업이지만, 우리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칩4 동맹’ 때문에 상당히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건국대 경제학과 최배근 교수는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때문에 한국의 경제가 미국안보의 종속이 되어 버렸다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바이든이 8월 16일에 서명해서 통과시킨 반도체 지원법(Chips-plus법)은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며, 보조금 지원 받으려면 최소한 10년간 중국에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대중 반도체 수출이 매출액의 40%를 차지한다. 삼성은 중국 시안을 비롯하여 많은 공장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시설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데, 장비 반출을 안 할 수 없다.
사실 반도체 장비는 미국이 특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 법안에 저촉된다. 미국은 중국에 시설 투자하지 말라고 하지만, 삼성은 미국의 말대로 따르면 중국 시장을 포기해야 한다. 미국과 노골적인 갈등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미국과 삼성전자의 이익이 충돌되는 것이므로 정부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한국의 운명도 달라진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산업이 무너지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도 무너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파트너쉽’ 구축 필요
중국과 한국은 반도체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필요한 상대이다. 중국에서는 반도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국을 배제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 중국의 이해관계가 반도체 칩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을 펼쳐야 한다.
문제는 칩4 동맹에 유럽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최배근 교수에 의하면, 한국 말고 유럽에도 반도체와 관련된 기업들이 많고 상당수가 중국과 반도체 공급망이 얽혀 있다. 네덜란드 ASML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회사이고, 반도체 특허만 해도 2000개가 넘는 독일의 ZEISS 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다.
반도체라는 산업의 특성이 상당히 복잡하게 의존되어 있기 때문에 반도체 생태계는 한국, 일본, 대만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칩4 동맹에 유럽에 참여시키지 않고 있다. 유럽이 중국시장을 포기하리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중국과 관계를 끊으라 하면 유럽은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은 안보동맹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미국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럽 반도체 기업_ 네덜란드 ASML, 독일 ZEISS
변환적 리더십을 활용하자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최배근 교수는 최근 모 방송에서 반도체 외교와 관련하여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에게 일본, 대만, 유럽을 포함한 '반도체 다자간 협의체'를 제안하여 이 문제를 피해갈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 반도체 산업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칩4 동맹을 만든 것 아닌가.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새로 만들다는 것인데, 유럽에서 중국으로 기술이 건너가는 것은 막지 않고 어떻게 공급망을 완성하겠다는 것인가? 따라서 유럽을 포함시켜서 반도체 공급망을 협의하자고 제안하면 한국에 요구하는 내용이 완화될 수 있다.
사실 대만 해협을 중심으로 미·중 간 긴장관계가 악화되면 주한미군을 빼내어 대만에 투입시키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그렇게 되면 안보에도 비상이 걸린다. 안보 문제까지 걸려있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어떻게든 완화시켜 갈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는 유럽을 포함시킨 새로운 차원의 소통 구조를 만들어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반도체 공급망을 협의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서로 대립하는 세력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완화시키기 위한 문제 해결 방법으로 두 세력 간 비대칭을 해체하지 않고 새로운 대칭 관계로 구조를 재조정하는 것이 변환적 리더십이다. 변환적 리더십은 시스템 내부에 양립이 불가능할 정도로 적대적인 세력 간의 갈등과 내적 장애를 협동적 시각을 가지고 새로운 구조를 통해 완화시키는 것이다.
변환적 리더가 가진 힘은 조직 내부에 존재하는 장애물들, 서로 대립적인 힘들의 기능들을 새로운 내적 배치를 통해 변경하고 재배열하는 사고 역량에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장애물이었던 갈등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작동하게끔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환적 사고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힘의 대결을 완화시킬 수 있는 문제 해결 방식으로 작동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