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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인 Oct 01. 2022

5.1. 모순 외교와 변환적 사고 : 인도

5.1. 비동맹 중립노선과 변환적 사고     


앞서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칩4 동맹’과 그로 인해 삼성전자의 이익이 충돌되는 것을 살펴보았다. 칩4는 각 국이 저마다의 강점을 살려 반도체 공급망을 새롭게 조직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의 경우 원천기술,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대만은 파운드리, 일본은 소재와 장비 분야를 맡는다.     


문제는 ‘칩4’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인만큼, 중국의 견제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중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를 언급하며 칩4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칩4 예비 회의가 개최되기 전인 지난 달 26일 “삼성전자를 비롯해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포기하긴 어렵다”며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중국 점유율을 낮추면 세계 경쟁력 또한 하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http://www.mediapen.com/news/view/758976).     


실제로 한국의 경우, 2021년 메모리 반도체 수출 690억 달러 중 48%의 이익이 중국에서 발생했다. 앞서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9월 7일 “정부가 해야 될 일과 기업이 해야 될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뭘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그렇다”면서도 “중국에 먼저 이해를 구하고 미국과 협상을 했으면 좋겠다는 우려사항을 (정부에) 전달하기는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외교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인도의 중립외교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동맹 중립외교 선구자 : 인도      


올 초만 해도 인도는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산 원유를 값싸게 수입하는 등 친러 행보를 보이면서 미국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난 5월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 네트워크(IPEF)에 인도가 전격 참여함으로써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서 떠올랐다. 최근 인도는 미-중-러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는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런 행보를 하는 이유는 인도가 ‘비동맹 중립노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서울대학교 남아시아센터 강성용 교수는 비동맹 중립노선이 인도의 네루 수상으로부터 나왔다고 했다. 네루는 불개입원칙, 평화원칙, 제3지역론 등을 내세웠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형성된 냉전 구조 속에서 자주권과 국가 이익을 확보하려는 중립노선의 외교정책이다. 이 노선에 제3세계 국가들이 호응하면서 비동맹제국정상회의로 발전되었으며 현재까지 100여개가 넘는 국가들이 참여하는 개도국 정상회의로 발전되었다.      


네루 수상과 중국의 반둥회의, 이 회의는 비동맹국제정상회의로 발전되었다

대중국 견제 Yes, 대러시아 견제 No     


전문가들은 인도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IPEF)에 가입한 이유를 미국과 인도 모두 ‘대중국 견제’라는 공통된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도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양국 간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고, 미국 또한 세계 인구 1, 2위인 중국과 인도의 단합을 막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인도는 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 군사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에도 가입했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비동맹주의로 인해 쿼드의 결속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견해들을 쏟아냈다. 인도가 중국과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쿼드 내 유일하게 중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을 완전히 적대시 하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도는 언제든지 쿼드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대세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해 가고 있다.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조원득 교수는 쿼드가 인도태평양에서 중요한 외교안보 기구로 진화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인도의 당당한 전략적 행보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 중심 서방-인도-러시아 간 삼각구도 관계 속에서 인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부과하는 동시에 인도에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독려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일관되게 유엔의 러시아 퇴출 결의안에 기권표를 행사해 왔다. 오히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할인 가격으로 구매하거나 루피-루블화 교환 협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인도의 외교적 대응은 중국 견제를 위한 안보 협의체인 쿼드 내에서 상당히 이질적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양극단을 넘어선 중개자 역할     


인도는 2017년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의 초기에만 하더라도 쿼드를 중심으로 한 협력 강화가 자칫 중국에 대한 과도한 압력으로 비칠 것으로 우려해 참여 강화 및 확대에 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러워 했다. 특히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국 등 특정 국가를 표적하거나 봉쇄하기 위한 군사안보 동맹이 아님을 지적하면서, 인도가 추구하는 국제협력은 특정 누군가를 배제하는 배타성이 아닌 포용성에 기반을 둔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인도는 두 가지 방면에서 전략적 중립외교를 지향하고 있다.      



첫째, 인도는 전략적 인식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다양한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해 오고 있다. 여기에는 쿼드 회원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주요국들과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포함된다. 가령 일본과 외교국방 장관 2+2 회담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과거 군사기밀보호협정 및 국방장비·기술이전 협력, 그리고 2020년에는 양국 간 군수 물자 수리 및 보충을 위한 기지 및 시설 사용을 허가하는 군수지원협정(ACSA)를 체결하였다. 호주와 외교국방 전략대화를 2+2 장관급 대화로 격상하고, 2020년에는 양국 정상회담에서 상호군사수지원협정(MLSA)을 체결하였으며 2020년 하반기에는 말라바르 연합 훈련에 호주를 참여시켰다.     


둘째, 인도는 쿼드의 정책적 방향을 단순히 따르기보다는 방향 설정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인도는 쿼드 협력 범위를 과거 안보 쟁점 위주에서 팬데믹 및 백신, 기후변화, 한반도 비핵화, 첨단 기술, 글로벌 공급망 등 다양한 글로벌 도전 의제에 대응하는 포괄적이고 유연한 글로벌 협의체로 발전시키는데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쿼드의 유연한 협력의 밑바탕에는 쿼드 회원국 간 방산 협력, 합동군사훈련 확대·강화, 군사상호운용성을 위한 군사협정 체결 등 쿼드 회원국 간 견고해지고 있는 군사안보 협력이 있다.     



인도 외교에 나타난 변환적 사고     


우리가 인도 외교에서 주목할 점은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등 서로 충돌하는 힘들 사이에서 잠재된 주체성을 발현하여 어느 한 쪽과 단절하지 않고, 양쪽으로 소통하면서 이들에 적응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그 상태를 결정화하기 위해 새로운 구조로 변형시키는 사고 능력이다. 인도는 군사안보 중심의 쿼드 협의체를 백신, 기후변화, 첨단기술, 공급망 등 다양한 쟁점을 논의하는 구조체로 바꾸어놓았다. 겉으로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협의하면서 속으로는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앞서 우리는 변환이 일어나는 조건을 살펴보았다. 변환이란 준안정적 조건에서 발생한다. 준안정적 조건이란 요소들(구성원들) 간의 내적 불일치로 과포화된 상태에 있는 구조이다. 이처럼 대립되는 힘들의 불균형은 도약의 계기를 가지고 있다. 이 때 변화를 야기하는 어떤 사건의 촉발이 시작되어 잠재적 에너지가 구조 전체로 증폭되고 확산되어 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구조가 발생하는 것이 변환이다. 변환은 양립 불가능한 관계를 중개하는 것으로서 자기 작동의 조건이 되는 연합환경(구조)를 발명하는 것이다.       



국제외교 시스템도 이와 같은 원리로 작동된다. 각 국가의 관계 역시 하나의 준안정적 시스템으로서 이 시스템 내부의 힘들이 긴장 상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잠재 에너지로 존재하던 힘들, 즉 인도 같은 국가가 주도하여 새로운 형태의 경제협력 협의체, 군사안보 협의체, 다자간 협의체 등의 발생을 촉발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세계 패권 구도가 점차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을 거친다.   


한국은 인도 외교에서 변환적 사고의 사례를 이해하고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논했듯이

반도체의 경우, 유럽을 포함시켜 '칩5  동맹'으로 확대를 타진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인도와의 협력을 통해 다자주의에 대한 참여 강화와 외교적 외연 확대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도는 다자주의의 역할을 중시하고 다양한 지역과의 다자협의체를 주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남아시아 및 인도양 지역은 물론 중동, 유럽 등 주요국들과 끈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환인도양연합체(IORA,), 벵골만 기술경제협력체(BIMSTEC) 등 다자협의체도 주도하고 있어 한국에게 중요한 외교적 거점 국가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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