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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인 Oct 04. 2022

5.2. 모순 외교와 변환적 사고: 터키

5.2. 모순 외교와 변환적 사고


이 단락에서는 빈약한 정치체제에 약화된 경제상황까지 겹쳤으면서도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는 터키(튀르키에)를 살펴보도록 하자. 최근에 국명을 터키에서 튀르키예로 변경한 튀르키예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제 외교 무대에서 그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나토(NATO) 동맹국이면서도 서방의 러시아 제재엔 동참하지 않는 등 '줄타기 행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9월 21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77차 유엔 총회 첫날 연설에서 "양측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품위있는 탈출구(dignified way out)를 마련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외교적 해결책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튀르키예는 우크라니아의 영토 보전과 독립을 기반으로 최근 다시 불붙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흑해 수출을 통한 우크라이나 식량 수출을 중재하는 등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인데도 튀르키예가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부터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자포리아 원전 시찰까지 중재외교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오종진 교수는 최근 튀르키예의 대외적인 행보는 매우 광폭적이라 평가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의 주목을 받다고 했다. 튀르키예를 잘 모르는 사람들 경우, 최근의 행보를 보면서 저 정도의 역량과 정치력이 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튀르키예는 서유럽 열강들과 수 세기 동안 대립과 협력을 했던 오스만제국의 후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유럽-비유럽의 중개국 위상      


튀르키예는 남부 유럽과 중동 그리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주요 주축 국가(Pivot State)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서면서, 튀르키예는 동서 문명의 교두보 뿐만 아니라 유럽과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에너지 중개국, 곡물 중개국, 난민 중개국 역할을 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튀르키예의 국제정치-경제적 역할과 위상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튀르키예는 러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 지역의 원유와 가스를 러시아 경유 없이 서방으로 직접 연결하는 송유관과 가스관을 통제하고 있는 에너지 허브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튀르키예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함께 많은 농산물을 서방에 공급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또한 서방으로의 유통 통로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제하고 있다.     


원전 문제의 경우, 튀르키예는 이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중요한 간접적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튀르키예는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그 어느 때보다도 원전 사고에 대해 적극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이 유출된다면 터키 역시 피해가 클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중재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동에서 터키를 통해 유럽으로 가는 송유관


러시아-우크라이나 중재 : 균형자 역할     


러시아와 튀르키예는 역사적으로도 오랜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로, 양국 모두 자국의 실리에 따라 협력과 경쟁을 반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오히려 자국의 미사일 방호체계를 튀르키예로 수출하는 등 양국은 서로를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역시 튀르키예의 중요한 이웃으로서 튀르키예는 독립 이후 꾸준히 교류를 증진하고 경제협력을 확대해 왔다.     


특히 튀르키예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크라이나의 탈러시아 행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양국의 관계 역시 중요한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오스만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Swing State로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서방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며 자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실리 또한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방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는 러시아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채 러시아의 대외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일부 러시아인들은 여전히 튀르키예 지중해 해변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다. 반면,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에 대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일부 난민들도 수용하고 있다. 특히 군사적으로도 주요 방산 물품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어 러시아의 군사적 참패와 후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만큼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가치와 역할이 크기에 이러한 모순적인 외교 상황이 가능한 것이다.     


튀르키예 에르도안 대통령


신냉전과 모순 외교     


국제정치에서 튀르키예의 중재역은 지정학적으로 숙명적 행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에르도안의 지지율이  청년층에서는 떨어지지만 장년층에서는 여전히 굳건하다. 경제적으로는 농산물이 풍부하고 제조업 기반도 탄탄해 '유럽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어 경제 잠재력이 큰 편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제난이 3선 가도에 큰 위협이 되자 최근 에드로안 정권은 어려운 줄타기 외교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방문해 미국이 경계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등과 만나 회담했으며,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국제 협의체 상하이협력기구(SCO) 가입도 추진한다. 튀르키예의 SCO 가입이 성사되면, 나토(NATO) 회원국 중에서는 첫 사례가 된다.     


앞서 인도 외교를 살필 때, 인도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는 동참하지만 대러시아 견제는 동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과거 네로 수상으로부터 계승된 비동맹 중립외교 전략 때문이라고 했다. 중립 외교는 인도와 같은 제3세계 국가가 강대국의 어느 한 편으로 기울지 않으면서 군사적·경제적으로 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튀르키예 역시 인도와 같은 중립외교 노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9월에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중재국 운명과 변환적 사고


 변환적 사고는 외교적으로도 잘 활용된다. 변환은 사회정치적 시스템의 변화가능성과 그 조건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화, 개체화의 작동 원리다. 새로운 구조나 형상의 발생은 내부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힘들이 갈등 관계를 이루고 있는 상태가 극단화되어 있을 때, 변화를 일으키는 어떤 사건의 촉발로 인해 시작되어 점차 시스템 전체로 확산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외교 분야에서 나타나는 변환적 사고는 국제 역학 체제의 존재 변화, 혹은 국제 지정학적 질서의 변혁을 촉발하는 씨앗의 역할을 하는 중재국처세 방법이기도 하다.  


신냉전 체제로 치닫는 현 국제정치는 둘로 갈라졌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양립하기 어려운 힘들로서 대립한다. 하지만 이 힘들은 중재자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대립하는 힘들 사이에서 정보를 발견하고 해독하고 전달하고 교환해주는 역할을 중재자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재국은 이들 국가들의 관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추출하여 정보로 전환시켜서 새로운 형태(협상기구, 연합회의 등)들을 발명하고 연결시킬 줄 아는 존재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미국(NATO)-러시아 사이에서 튀르키예가 맡은 역할과 일맥상통한다. 강대국 사이의 관계를 조절하고 관리하고 소통시키는 것은 바로 중재국들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재국은 통역자로서, 상호협력을 조직하는 자로서 강대국들과 함께 대등한 수준에서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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