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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인 Oct 06. 2022

5.4. 각자도생과 제3세계 질서

5.4. 제1세계질서, 제2세계질서, 제3세계질서   

    

이전 단락에서 우리는 월스트리트 저널(WSJ)에서 다룬 전기차 보조금 차별 법안과 관련하여 유럽, 일본, 한국이 반발하고 있다는 기사와 함께 미국인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댓글로 본 미국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견해에 비해 부정적인 반응이 몇 배로 많았다.    

  

미국인들은 유럽이나 동아시아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으며, 수년 간 이들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이 방위비로 지출한 수백억 달러 비용에 비하면 이 정도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더 나아가 미국의 수출이 막히고 수백만 개의 좋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진 원인을 이들 국가의 탓으로 돌리면서 미국 전기차(EV) 시장에 진출하려면 미국 근로자에게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라는 의견도 있었다.


     

흔들리는 제1세계질서


이상에서 우리는 안보동맹국인 미국이 해외의 제조업을 미국 내로 이전시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동맹국들과 이해관계가 충돌됨을 발견하였다. 지금까지 미국은 냉전시대의 동맹국들을 계속 보호했으며 미국의 경제체제는 세계 각지에서 수출하는 상품들을 계속 수입했다. 그 결과 미국이 주도하는 제1세계질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역사상 가장 높은 세계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유럽과 동아시아가 그 질서에 편입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2020년)에는 미국 없는 세계에 대한 전망이 잘 그려져 있다.  이 책에서 피터 자이한은 제1세계 질서가 사라진 제4 시대가 오고 있다고 전망했다. 자이한에 의하면, 제1세계질서란 미국이 안보를 우선시하기 위해 경제적 역동성을 포기한다는 개념이다. 제1세계질서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국가는 원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국가이다. 원유 생산 국가는 러시아 및 중동 국가이고 소비 국가는 유럽 및 동아시아 국가들이다. 이 질서 때문에 유럽연합이 탄생되고 한국은 산업화되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세계인은 미국 주도의 제1세계질서 아래에서 자유무역의 혜택을 입은 수혜자들이었다.      


미국 모델의 한계


미국이 자유무역 질서를 구축하고 이를 지원한 까닭은 동맹국들을 도와 소련을 굴복시키기 위함이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이 막을 내렸고 소련은 해체되었다. 제1세계질서를 유지해야 할 명분이 사라지자, 이 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제1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유럽과 일본, 중동, 한국 등에 경제적, 군사적 부담을 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맹국들은 이에 상응하는 전략적인 동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워싱턴 정가에서 널리 퍼진 불만이다.      


자이한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서로 의견 일치를 보는 한 가지가 있다면 해외 문제에 미국이 개입하는 정도를 줄여야 한다는 정서라는 것이다. 미국은 오래 전에 세계경찰, 안보보장, 금융지원 등 심판자나 최후 시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흥미를 잃었다고 진단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의 동맹국들을 달리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패한 제2세계질서     


러시아는 제국의 후손이다. 소련이 절정기였을 때 당대 가장 큰 나라였다. 과거 소련은 수학과 천문학, 화학, 생물학, 우주항공학, 군사학 등에서 높은 지식 수준을 유지했다. 소련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수십 개의 나라에 군림했으며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을 끌여들였고  이들 국가를 아우르는 동맹을 유지하였다. 소련에 대한 가장 분명한 사실은 그 국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는 과거 위대했던 소련의 영광을 희미하게 안고 사는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실패한 제국: 냉정시대 소련의 역사>(2017년)에 따르면, 스탈린은 산업화를 밀어붙였지만 정상적인 산업화라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스탈린은 소련 농부들을 새로 생긴 공장 도시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들 가운데 새로운 장비를 갖춘 산업화된 집단공동체에 수용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 환경 내에서 출생률은 급감했다. 스탈린은 새롭게 근대화된 농장의 수확물을 더 이상 농부들이 땀 흘린 결실로 보지 않고 소련 국가의 재산으로 보았다. 소련 정부는 공장노동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농산물을 몰수했고,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농부들은 열심히 일해 풍작을 거두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자기 가족이 먹을 만큼만 경작했다.      



냉전이 끝날 무렵 소련은 붕괴 직전이었다. 1992년 소련 해체 당시 정부의 재정이 파탄나면서 관료와 군대, 정보부서에도 급여를 주지 못하게 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푸틴은 소련시대의 정보요원을 역임한 세력으로서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푸틴 하에서 러시아 경제가 개선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그는 미국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국가들, 즉 북한과 아프가니스탄, 이란,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에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원을 해왔다. 이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훼손하려는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마침내 푸틴은 전쟁의 길로 나섰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제2세계질서를 확장하고자 했지만, 전쟁 상황은 러시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부상하는 제3세계질서     


앞서 우리는 인도 및 터키의 외교정책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를 소통시키는 중개외교를 역임하면서 양쪽으로부터 자국 이익을 최대한 얻어내려는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다. 사실 러시아는 인도와 터키에 여러 가지로 위협을 가하는 존재이면서도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관계를 형성해왔다. 인도는 쿼드(QUAD)에 가입함으로써 대중국 견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한 배를 타면서도 석유수입과 군사훈련은 여전히 러시아와 함께 한다. 터키는 NATO에 가입한 국가로서 서방국가와 군사동맹을 맺고 있지만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으며 무역 규모도 상당히 크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두 나라는 미국이나 러시아 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중립외교를 실천해왔다. 이러한 중립외교는 앞으로 ‘제3세계질서’로서 새롭게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강대국들의 불안정한 힘들 사이의 갈등에 직면하여, 그 갈등을 이용하여 그들을 소통시키고 통합하고자 하는 더 우월한 체계를 발견해낸다.     

 


이상과 같이 제3세계질서를 반영하는 중립외교를 두고 나는 ‘모순외교'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모순외교는 중국기업 및 한국기업에 내재화된 모순경영과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모순경영은 집단주의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주체성을 드러내는 모순적 전개를 품고있다.


모순외교나 모순경영은 제3세계 국가의 외교와 기업 경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는 시스템 내부에 존재하는 양립 불가능한 힘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시키기 위해 구성요소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새로운 차원(=연합환경)에 통합시키는 인식 방법이다. 이 글에서는  이를 가리켜 ‘변환적 사고’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변환적 사고는 제3세계 리더의 성공전략으로서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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