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단락에서 우리는 인텔이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았다. 인텔 CEO 앤드류 그루브는 하향식(톱다운) 행동과 상향식(바텀업) 행동이 서로 협력해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함을 강조했다.
두 유형의 행동은 서로 모순되지만 고위 경영진은 중간관리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중간관리자는 세부 전략들을 전체 미션에 따라 수립해야 하므로 고위 경영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당 분야에 집중적인 지식을 가진 중간관리자와 넓은 안목을 지닌 고위 경영진 간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이 둘은 격렬한 논쟁을 감수하고 소통을 해서 문제해결의 답안을 탐색해야 한다.
조직문화와 리더
이런 지적 논쟁이 이루어지려면 회의실에서 입을 다물지 않는 조직문화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고위 경영진이 업무 지시를 내리면 그 밑의 임원과 구성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문화에서는 누구도 경영자나 상사의 말에 반박을 제시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이런 분위기를 모르면 경영자는 회의에서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직원들을 답답해한다. 구성원들이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그 조직이 눈치게임을 보는 보수적인 문화로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문화는 변화 가능하다. 문화를 변화시키는 요소는 여럿이다. 특히 조직문화는 리더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삼성전자 고 이건희 회장이 ‘휴대폰 화형식’을 통해 양보다 질을 강조하는 품질경쟁으로 조직문화를 바꾼 사례는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불량품이 11%에 육박하던 삼성전자 조립 제품들의 품질을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비대한 규모와 소통 단절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은 구성원이 적은 스타트업보다 정보 교환이 느리고 원활하지 않게 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부서와 부서 간의 소통과 정보 공유가 단절된다. 이로 인해 관리비용이 증가하고 예기치 않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무뎌질 수 있다. 그래서 규모가 커지면 경영진과 중간관리자의 역량이 중요해진다. 부서 간 분리를 최소화하고 정보가 유연하게 흐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구글(Google) 역시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하는 경영문화로 자주 조명 받고 있지만 부정적 평가도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글래스도어에 평가된 ‘다차원척도구성법’에 의하면 구글은 워라벨과 업무시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여유롭게 일할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업무시간이 과중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경영진과 관리자들의 리더십 역량에 불만을 토로한 내용도 많았다. 전통적인 기업에 근무하는 관리자들과 같이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조직이 정치적이 되고 의사결정이 느려진다고 평가되었다(<최고의 조직>(김성준 110쪽 도표참고, 2022년)
“탁월한 천재가 나머지를 먹여살린다”
고 이건희 회장은 극소수의 뛰어난 엘리트를 중심으로 삼성을 리드하는 방식의 인재경영을 고수해왔다. 80대 20의 파레토 법칙과 같이, 소수의 탁월한 인재가 회사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런 리더십은 품질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도 존재한다.
몇몇 엘리트 경영자를 중심으로 한 조직은 “이유는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톱다운 방식의 시스템을 고수한다. 이런 조직에서는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개인의 존재보다 권위주의 문화가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구성원의 자유로운 목표 설정에 따라 업무능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무시될 수 있다.
조직 모순 : 전체와 부분의 비대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8년에 시스템-반도체 시장 1위를 선점하기 위한 파운드리 공장을 증설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최근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내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본 삼성의 조직구조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에서 흑자를 본 돈을 가져다 기술력이 부족한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사업에 투자하다보니 시스템-반도체 사업부는 내부적으로 2등 시민 취급을 받고 상여금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반도체 사업부가 다른 사업부에 비해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는데, 연구원이나 생산직원들의 사기는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안정된 흑자를 내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조직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 속사정이다. 이는 하나의 전체에 두 개의 부분이 관계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비대칭 현상이며, 이런 관계맺음은 차이와 모순, 비대칭을 유지한 채로 경계를 맺고 있다.
양립가능성 발견과 변환적 사고
이처럼 삼성전자의 조직모순은 메모리-반도체 사업부와 시스템-반도체 사업부의 비대칭 관계로 나타난다. 두 사업부는 서로 안정적인 것과 비안정적인 것의 관계이자 안정적 상태 속에 포함된 비안정적 상태의 관계라 볼 수 있다. 이 경우 두 개의 영역들이 관계 맺는 방식이 중요한데, 둘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구조적 안정성이 틀어지면, 양립이 불가능해진다. 이 둘의 갈등이 최고일 때 선택압력을 받게 되고, 예측 불가능한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두 조직의 양립 가능성은 그 둘을 넘어선 조직으로의 구조화, 즉 연합환경을 구성하는 것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연합환경은 양쪽 부서의 팀장급 중간관리자들의 상호 관계를 조정하고 조직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 연결망은 다시 고위 경영진과 연합환경을 구축하는 네트워크로 진화하여 기술 및 심리적 연대감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서로 이질적이고 모순된 두 관계들 사이를 중개하여 새로운 관계맺음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변환적 사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