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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과여름 Oct 12. 2022

오늘의 습관 더하기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대개 각자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우리는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가 믿고 있는 대로 행동한다.” - 제임스 클리어 [아주 작은 습관의 힘]


12주 차가 되면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사그라든다. 제임스 클리어는 100번만 반복하면 그것이 인생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00회는 아니지만 100일간 2~3일에 한 번씩 꾸준히 달린 사람이라면 자신이 30분 동안 내리 달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못 달리면 어떡하지?’와 같은 걱정이나 ‘달려야만 해’와 같이 심적 압박을 주는 명령 대신 ‘나는 달린다’와 같은 담담한 생각으로 길 위에 오르면 어느새 30분의 시간이 지나간다.


복직하고 나서 보름 동안은 하던 대로 2~3일에 한 번씩 달렸다. 페이스는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았지만 일단 길 위에 서면 30분이 흘렀고 마음이 조금은 개운한 상태로 돌아왔다. 그러나 3주째에 접어들면서 이른 아침과 밤 시간을 이용해서도 할 일을 끝내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고 나는 자주 초조해졌고 쉽게 지쳤다. 아이를 볼 테니 잠시 머리를 식히고 오란 남편 말에 도서관에 갔던 주말 날엔 서가를 살피는 마음도 전혀 즐겁지 않고 무거운 발로 목적도 없이 헤매는 기분이었다. 도서관에서 길을 잃은 느낌은 처음 맛보는 감정이었다.

‘지금 내가 800번대 앞에 서 있을 일인가. 시간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에너지를 얻어 닥친 일을 해결하고, 아이를 어찌 키워야 할지,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할지 공부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러자면 나는 자기계발서나 자녀교육 서가로 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앞에 서 있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800번 대에 꽂힌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일지도 않았다. 그때 눈에 띈 책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이었다.



p97.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를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50년대에 소련군의 진압으로 헝가리를 떠나가던 다급한 순간 가방 두 개를 챙겼다. 가방 한 개에는 아이 용품이, 다른 하나에는 사전이 들어있었다. 그녀에게 위급한 순간에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와 글쓰기였던 셈이다. 스위스로 망명한 그녀는 아이를 더 낳았고, 생경한 프랑스어를 말 배우는 아이처럼 익혀나가며 생활에 쫓기고 글쓰기의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국경을 넘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겨냈을 테고.


결국 인생의 중요한 선택은 습관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내가 매일 하고 있는 것, 자주 생각하는 것들이 다급한 순간이나 결정적인 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내 한 손에 쥔 가방에는 사전 대신 무엇이 들어있을까, 사전을 챙긴 그녀만큼 내게 절실하고 소중한 것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답을 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순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오늘의 습관일 거라고. 내게 절실한 그 무언가는 없지만 해로운 습관을 줄이고 그 자리에 좋은 습관 하나로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안다. 그래서 나는 지난 며칠간의 게으름을 떨치고 길 위에 다시 나섰고, 집을 나오기 직전 쓰레기 하나를 버리는 새로운 습관을 추가했으며, 달리기 난 뒤 씻고 나선 30분씩 책을 읽고 잠드는 새로운 루틴 하나를 더 추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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