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후조리를 쫄딱 망했다. 스스로의 체력을 너무 과신한 탓이었다. 대학생 때 저질 체력이란 걸 어렴풋이 깨달았고, 임신 기간 내내 병치레가 잦았음에도, 임신 후기로 갈수록 몸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막달 몸무게는 60킬로 대, 통합교과 시간 놀이를 하다 뛰어다니는 내 모습을 본 선배교사가 말릴 정도로 나는 이전에 비하면 날아다녔다(임신했다고 저학년 담임에, 쉬운 업무를 받은 영향도 있었다). 여름에 제왕절개로 출산한 나는 ‘개복 수술도 아주 아프진 않구나?’ 와 같은 생각으로 몸 상태를 가벼이 여겨 아이를 낳은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부터 아이스 음료를 마셨다. 조리원에선 덥다는 이유로 양말도 벗고, 바지도 입지 않은 채 원피스만 입었다.
방만한 태도가 불러온 결과는 정직했다. 뒤늦게 산후보약을 두 첩 먹었지만 온몸에 힘이 없고, 관절이 뻐근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로했다. 아이마저 통잠이 요원해 낮이고 밤이고 나는 퀭했다. 아이 낳은 지 이 년쯤 지난 어느 날 신호등 초록불에 길을 건너는데 절반을 건널 즈음 불빛이 점멸했다. 서둘러 뛰었더니 그 짧은 거리를 가는데도 숨이 헐떡이고 온몸이 쑤셔왔다. ‘내 몸이 이제 갈 데 까지 갔구나!’ 절망한 나는 다른 한의원에 갔다. 맥을 짚어본 의사가 허리도 안 좋고, 몸이 전체적으로 약하니 힘쓰는 운동은 따로 하지 말고, 계단이나 몇 층씩 오르라고 했다.
계단 오르기는 쉽게 지치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친구 따라 유명하다는 요가원에 갔더니 힘만 들었다. 요가 시작 전 항상 명상 시간을 가졌는데 잡념이 그득 찼고, 그 시간에 그냥 아이 옆에서 잠이나 좀 더 잤으면 싶었다. 오고 가는 시간도 길고 아이가 밤잠에 드는 시각이 점차 늦어져 남편의 눈치도 보였다. 근처에 필라테스 학원이 생겨 관심이 갔는데 병원 건물인 데다 코로나까지 겹쳐 동선도 신경 쓰였다. 결국 계단, 요가, 필라테스 모두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장비 마련한다고 잔뜩 사들인 레깅스들은 당근에 팔았다.
돌고 돌아 달리기로 왔다. 사실 즐겨 찾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런데이 열풍이 불었을 때 내 몸은 런데이를 버텨내지 못할 거라 단언했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신호등 불빛이 바뀔 때까지 다 건너지도 못할 몸뚱어리로 무슨 달리기를 하겠냐는 마음이었다. 그런 내가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올해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다는 건 이전과 비교해 중대한 변화가 몇 가지 생긴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네 살 후반부터 시작된 싫어 안 해 병이 강화되고, 언어표현력이 좋아지면서 단호히 의견 제시(부모가 듣기엔 말대꾸)를 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내 몸의 피가 좀 더 활기차게 돌게 된 기분이 들었다(앞으로도 계속 혈압이 올라갈 것만 같다). 게다가 놀이터를 좋아하는 아이를 따라 걷다 보면 최고 걸음 수 기록이 계속 경신된다. 만보 기록이 점차 늘어나면서 어느 날 결심하게 됐다. ‘이제 아이가 잠들고 나면 달려도 되겠구나.’
6월 중순부터 시작한 런데이는 이제 8주 차 두 번째 도전에 접어들게 되었다. 1,2주는 아주 쉬웠고 5주 차까지는 순조로웠다. 6주 차가 고비라는 경험담은 익히 들었지만 5분 걷고 5분 달리는 걸 여러 차례 반복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7주 차부터 더 긴 시간을 이어 달리는데도 이전보다 수월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8주 차 1회까지 무리 없이 달렸고, 내일은 비 소식만 없다면 8주 차 두 번째 달리기에 도전할 예정이다.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출산한 지 일 년쯤 지나서 읽은 책이었다. 이 책을 산 이유는 딱 하나, 번역한 이가 소설가 김연수이기 때문이다. 달릴 마음도 없었던 내가, 지금보다 더한 수면부족에 허덕였던 때 읽었으니 이 책을 제대로 읽었을 리 없다. 스스로 러너라고 부를 수는 없으나, 규칙적으로 밤마다 달리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이 책을 읽으니 이전보다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이 훨씬 많다. (예전에는 옮긴이의 말만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옮긴이의 말이 가장 좋기는 하다)
p15. 운동을 한다고 좋은 심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것 이상의 일이 일어난다. 운동을 통해 인간은 자유로워진다. 운동을 할 때, 인간은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숨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고 싶어 하는데, 운동은 다른 어떤 인간의 행위보다 빠르게, 고통 없이, 그렇지만 분명하게 그 대답을 들려준다. 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p 26. 몸과 마음과 정신이 살아 있는 아이와 시인, 성자와 운동선수들에게 시간이란 늘 지금을 뜻한다. 그들은 영원히 지금을 살아간다. 격렬하게, 헌신적으로, 지금 이 순간 속으로 뛰어든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여기이며,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다.
p42. 지난 40여 년 동안 나는 살 가치도 없고 불완전하며 열등한 존재라고 느끼면서 살아왔다. 내 본성에 맞서 싸우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달리기를 발견했고 나는 자유를 얻었다. 달릴 때면 다른 사람의 평가가 두렵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