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부모님을 설득했다. 잠깐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였다. 울컥했다. 군 입대를 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민 가방 하나와 노트북, 백 팩을 매고 택시를 탔다. 일부러 뒤를 안 보려고 애를 썼다.
드디어 가는구나. 낯선 이국 땅, 인천 공항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함께 출국하는 동기들은 참치 캔이며 고추장, 라면 세트를 잔뜩 들고 왔다. 반면에 나는 여름, 겨울 옷만 한 두 벌씩 챙긴 게 전부다. 그렇게 짐을 줄였는데도, 2박스나 더 나왔다.
다들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왜 우울할까. 마중 나온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걸까.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암소처럼 타슈켄트행 비행기를 탔다. 4박 5일의 여행이었다면, 마냥 행복했을 것 같다. 남들처럼. 그러나 적어도 2년 동안 지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졌다.
그래도 어렵게 선택한 길인 만큼 후회가 없어야 한다. 다시 귀국하는 그날을 위해.
2009.09.25. 내 평생에 잊지 못하는 날이다. 역마살이 있다고 해도 정도일 줄은 몰랐다. 타슈켄트행 비행기는 몽골의 고비 사막 위를 지나간다. 7시간을 앉아있어야 했다. 단체 복을 입은 우리 일행을 보고, 스포츠 선수냐고 물었다. 말로만 듣던 현지인이었다. 여행 중이었다면 반가움에 말을 걸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4명의 동기는 각자의 계획을 세우느라 조금 긴장한 표정이었다.
“잠시 후 타슈켄트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A 항공사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끝났다. 잠시 후 승무원 한 명이 다가왔다.
“휴대용 고추장인데, 나중에 생각날 거예요.”
창피한 줄도 모르고, 튜브로 된 고추장 세트를 넙죽 받았다. ‘살아야 한다’는 각오가 느껴졌을까. 아니면 험한 나라에 가는 우리를 보고 측은하고 불쌍해 보여서 그랬을까.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음을 다잡았지만, 좀처럼 진정이 안된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길을, 건너고 말았다.
"나의 실력이 미천하다고 절대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배운 것을 마음속에 넣어두면 그것은 '죽은 언어'밖에 안 된다. 마치 장롱 면허와 같다. 나는 새로운 표현을 배우면, 무조건 주위 사람들에게 사용한다. 상대방이 얼떨떨한 반응을 보여도 상관없다. 이렇게 해야 나의 입에 외국어가 달라붙기 때문이다."
*출처 :<위대한 메신저> p.18~19. 나단(Nathan)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동방 대학교 한국어 학과. 앞으로 2년 간 한국어를 강의하게 될 근무지다. 타슈켄트 입성을 위해 매일같이 외웠던 러시아어.
"즈뜨라스브이찌에?(Здравствуйте?)"
이날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공부했건만, 그동안 배운 문장들을 단 한 개도 써먹지 못하고 진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마음속에서 맴도는 러시아어는 결국 목구멍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이후 몇 년이 지났다. 나의 잃어버린 미래를 찾고 싶어서다. 페이스북을 열었다. 그동안의 사진과 글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학생들의 소식이 담겨 있었다. 한국 회사에 취업했다는 이야기,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대학원 논문 때문에 바쁘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