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꿈을 꾸었다. 장소는 우즈베키스탄 어느 시골 마을. 사방천지가 푸른색 나무와 풀로 덮여 있었다. 당나귀의 거친 숨소리에 잠을 갰다. 주위를 둘러보니 푸른 풀밭 위에 하얀색 양 떼들이 저마다 풀을 뜯고 있었다. 수북하게 자란 양털 속에 감춰진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삶을 살다가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준 나라가 바로 우즈베키스탄이다. 약속 시각에 먼저 가서 기다려야 되는 줄 알고 무려 반나절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어느 대중가요 가사처럼 ‘커피 석 잔을 원샷 때리면서’ 무심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휴대전화가 울려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런데 ‘감기에 걸려서’ 만날 수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얼마나 분통을 터뜨렸는지 모른다.
한국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우즈베크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라. 비가 내려도 결코 우산을 쓰지 않는 자연 친화적인 성향을 고수하는 특이한 나라다. 아마도 사막 기후의 텁텁함을 날려버리기에 시원한 빗줄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것 같다. 후두두 비가 떨어지면 비를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빗줄기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되기도 한다.
세상에 우연은 없는 법. 화려한 서구 유럽 진출을 꿈꾸었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차선책으로 동남아 국가를 선택했지만, 왠지 모르게 진입장벽이 높았다. 그리고 먼저 진출한 이들이 모든 것을 선점하고 있어서 틈새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우즈베키스탄행 항공권을 손에 쥐고 타슈켄트 땅을 밟았다. 그리고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의 첫인상은 너무도 순박하여 투명한 유리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착했던 그들 속에 악동 같은 마력이 숨겨져 있었다.
‘내가 왜 우즈베키스탄에 온 걸까?’
밤이면 밤마다 답답한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출국할 때 가지고 왔던 이민 가방을 몇 번이고 풀었다가 다시 쌌다가를 반복하기를 수십 번. 그때마다 친구가 되어주었던 40도 보드카 ‘사브라니에’(‘회의’라는 뜻). 쓴 눈물을 삼키며 마시는 보드카의 맛이 희한하게 달콤했다.
타슈켄트에서의 첫 두 달은 거의 칩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흔한 영어마저 잘 통하지 않아서 쇼핑하러 가게에 가도 제대로 원하는 물건을 구매할 수 없었다. 참치가 먹고 싶어 마트에 갔지만, ‘참치’라는 단어가 적힌 통조림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한국에서 공수해온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 담긴 외장 하드를 노트북에 연결했다. 반나절 이상을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며 낄낄거리다가 다시 창밖을 보면, 낯선 땅 우즈베키스탄에 온 걸 실감하고 다시 우울해졌다.
한국에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TV 프로그램이 낯선 이국땅에 오니, 이토록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먼저 간 선배들이 한국 주요 예능 프로그램을 외장 하드에 가득 담아오라고 신신당부했던 모양이다. 인제야 선배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모니터 속에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레슬링을 하고 있었다. 걸그룹 소녀시대가 ‘소원을 말해봐’라며 내 귓가에 속삭이기도 했다. 난생처음 보는 이름 모를 한국 드라마에 몰입하여 울다가 웃다가 하기도 했다. 이러다가 ‘예능 폐인’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생활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그때만 해도 우즈베키스탄의 모든 것이 낯설었다. 왜 먹는지 모르는 양고기 샤슬릭, 아무 맛도 안 나는 전통 빵 리뾰슈카, 느끼한 국물 맛이 전부인 슈르빠, 달콤한 시큰한 당근 생채, 빵인지 만두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정체불명의 솜사, 프라이팬에 달달 볶은 플롭…….
어느 것 하나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었으니, 매 끼니때마다 메뉴를 선택하는 게 매우 난감했다. 2박 3일 여행을 왔다면 ‘그런가 보다’하고 현지 음식 체험을 한 셈 치고 블로그에 인증 사진 한 장을 남기면 끝인데, 여기서 2년 동안 어떻게 견뎌야 할지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대학 강의실에 가면, 출석부에 손글씨로 학생들의 이름을 적어야 했다.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에게 부탁했더니 ‘끼릴 문자’로 출석부에 온통 ‘갈매기 날갯짓’ 같은 글자가 시커멓게 적혀있었다. 러시아식 이름은 왜 그렇게 길게 지었는지 얄밉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학생들의 이름 옆에 한글로 학생들의 특징에 어울리는 별명을 지어서 적었다. 곰돌이 푸를 닮은 알리세르는 곰, 이쁘장한 사르비너즈는 여우, 얼굴이 긴 바스리딘은 말, 키가 작고 성실한 자혼길은 개미…….
명색이 한국어 학과 전공 강의 출석부에 학생들의 이름 옆에는 곰, 여우, 말, 개미 등이 등장한다면 믿을 리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그것도 나름 꽤 고민하여 찾아낸 비법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짜고 달고 기름진 음식들, 느린 생활 리듬, 약속 시각에 일찍 가는 게 잘못인 나라. 한국어과 전공은 있지만 정작 한국어 수준은 의외로 낮고 때마다 불고기 굽고 잡채를 무치고 김치를 담는 게 한국어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나라.
처음 만났던 우즈베키스탄의 민낯이 바로 위와 같다.
대학 강의실 역시 열악했다. 손으로 쓰는 출석부, 하얀 가루 날리는 분필과 초록 칠판, 체계 없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즉흥적인 강의시간표, 단과대학 학장이라는 분이 강의 중에 갑자기 들어와서 대학 구내 청소를 하자고 제안하는 일도 늘 있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갖춘 것이 없는’ 황무지와도 같았다. 누군가는 ‘블루오션’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응축하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