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나 오늘 인어를 봤어.
그냥 갑자기 눈을 떴는데 내가 물속에 있지 뭐야? 그런데 숨 쉬는 게 전혀 불편하지도 않구, 몸을 움직이는 것도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내 주변을 맴도는 사람의 형체가 있더라구. 곧바로 눈이 마주쳤는데, 글쎄 너무도 아름다운 눈동자였어. 까맣고 영롱한 색상이 물빛과 어우러져서 반짝거리길래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봤어.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싱긋 웃었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는 그 사람의 미소에 나도 같이 웃어주었지. 그 사람이 팔을 들어 내 쪽으로 손을 뻗는데, 손가락 사이사이에 물갈퀴 같은 얇은 막이 있는 게 보이더라구. 징그럽지 않았냐고? 아니, 오히려 그 투명한 막 너머로 실핏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혈관이 부드럽게 요동치는 게,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였어. 맞아, 사실은 그제서야 그 사람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는 매끈한 상체에 돌고래의 꼬리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서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어.
아, 인어구나.
옛날에 어릴 적에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가 기억이 났어. 엄마는 어릴 적에 섬에서 자랐는데, 아빠랑 결혼을 하시면서 서울로 오시게 되었거든. 엄마 어릴 적의 이야기를 별로 들은 적이 없어서, 그 이야기가 너무 강렬히 기억에 남았어.
엄마의 집은 등 뒤로 산을 업고 있었고 마당을 벗어나 조금만 걸어가면 시원한 파도소리가 언제든 반겨주는 바다가 있는 곳이었대. 그러면 엄마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바다로 뛰어들어가 놀곤 했었다는 거야. 그 시절에야 아이들이 놀 만한 것이 별로 없었으니까, 산이나 바다에서 노는 것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기도 했지만, 엄마는 그 동네에서 가장 잠수를 오래 하는 아이였었대. 엄마보다 대엿살이나 더 많았던 엄마의 언니도, 그리고 엄마를 업어 키우다시피 했던 엄마의 막내 이모도 엄마의 잠수 실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는 걸 뭐.
하루는 마을에 '서울 사람들'이 왔다는 거야. 그 사람들은, 잘은 몰라도, 모든 것을 다 잃고 다시 시작할 기운이 없어서 다 내려놓은 것처럼 왔대. 그 때야 아저씨와 아줌마였지만, 엄마 말로는 아마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것 같다는 거야. 그리고 그들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만큼은 너무나도 해맑고 밝은 표정으로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다의 푸르름에 마냥 감탄하고 있었대. 워낙 작은 마을이라서 그 사람들의 방문은 내내 화젯거리였지. 그랬으니 그 사람들이 서울에서부터 몰고 온 세련되어 보이는 자동차가 텀벙, 하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여전히 회자가 되는 거야.
아무튼 엄마는 당시에 언니랑 하굣길이었댔구, 차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서 멍하니 서서 보기만 했었대. 공기방울이 뽀로록 뽀로록 해수면으로 올라오고 나서야 주변 어른들이 "아이구야, 아이구야!"하는 소릴 듣게 된 거지. 그 순간부터는 뭐 정신없이 들고 있던 모든 걸 집어던지구 바다로 뛰어들었대. 열몇 살 안 된 어린 여자 아이가 바다로 뛰어드니까 어른들도 너무 놀라서 "쟈도 같이 죽는다! 쟈도 같이 죽어!"소릴 지르셨던 거지. 엄마는 그걸 물속에서도 들었대. 약간 멀리서 들리는 진동처럼 말야. '아냐, 나는 안 죽어. 왜 그런 소릴 하시는 거지?' 점점 깊은 물속으로 쪼로록 빨려 들어가는 자동차를 따라 들어가면서 엄마는 계속 생각했대.
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깊이 들어갔는데도 서울에서 온 가족들을 태운 그 자동차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대. 거기서 포기할 수가 없어서 자꾸만 자꾸만 숨을 더 참고 참으면서 쫓아 들어갔는데, 어느 순간 눈 앞이 깜깜 해지는 것을 느꼈다는 거야. 이게 죽는 건가, 이런 게 죽음인가, 하고 생각이 들면서 몸에 힘이 쭉 빠지더래. 그랬는데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숨 쉬는 게 편해져서는, 어느 순간 뭍으로 다시 나왔는가, 싶으셨대. 근데 그게 아니고 어디선가 나타난 인어들이, 자꾸만 깊은 바다로 쪼로록 내려가는 자동차와 엄마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는 거야. 맞아, 나도 바로 이 부분에서 피식 웃었어. 에이, 세상에 인어가 어딨어, 하구 말야. 하여튼 엄마는 그러게 말이다, 하면서 자기도 그때 본 게 인어인지 천사인지 하나두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엄마의 이야기에서 인어들은, 자동차의 문을 열고 젊은 부부를 꺼내어서 더 깊은 바다로 데리고 가고, 뒷좌석에 있던 딸아이는 엄마 쪽으로 데리고 와서 엄마에 작은 손에 그 아이의 손을 쥐어 주었다는 거야. 인어들은 엄마와 그 아이의 주변을 맴돌며 뻐끔뻐끔 노래를 했대. 엄마는 그 노래만큼 아름다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대는거야.
다시 눈 앞이 깜깜해졌다가 정신을 차리셨을 때는 해변에 누워서 걱정스러워하는 어른들의 표정을 한 몸에 받고 계셨대. 그리고 엄마 옆에는 그 자동차 뒷좌석에 있었던 여자 아이가 작은 숨을 찬찬히 내쉬며 같이 누워 있었구. "아이구, 바다님이 도왔어, 바다님이!" 동네 어르신들이 엄마와 여자 아이를 안으며 그렇게 말했는데, 엄마는 바로 대답은 못했지만 이렇게 생각하셨대. '인어가 나를 살렸어.'
그래, 나는 엄마의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동화라고 생각을 했거든. 인어라니, 세상에 그런 게 존재할 리가 없잖아. 나는 이미 산타도 믿지 않게 되었는걸.
그런데 말야, 내가 인어를 보게 될 줄은 전혀 몰랐지. 엄마가 봤던 그 인어들과는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지금 내가 분명히 바닷속이고, 돌고래의 지느러미와 같은 것들을 유려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인어가 아니면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지도 모르겠는걸.
그러고 보니 나도, 바닷속으로 쪼로록 빨려 들어가는 커다란 배에 있었던 것 같아. 서서히 물이 차오르고, 모두가 당황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지. 그냥 눈에 들어오는,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아이들을 한 번 씩 안아주는 것 말고는. 어쨌든 내 생각에 안전할 것 같은 곳으로 아이들을 하나 둘 보내고, 그래도 더 깊은 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찾으러 물살을 헤쳐 들어갔던 것 같네. 그러다가 아마도 어떤 방에 갇힌 모양이야.
세 명의 아이들이 구석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고, 나도 이제는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괜찮다고 웃으면서 아이들을 안아주는 거 말고는, 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어야 말이지. 차가운 바닷물은 계속해서 차오르는데, 나도 사실은 무서운데,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말고는 뭘 할 수 있었겠어.
그러다가 다시 눈을 뜨니까, 인어가, 아니 그러고 보니 인어들이 있는 바닷속이야.
인어들 중에 하나가 내 팔을 이끌었어. 자꾸 어딜 가자며 보채는 것 같더라. 그제야 내가 꼬옥 안아주었던 아이들 셋이 생각이 난 거야. 내가 주저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것을 알아챘는지, 인어는 나랑 다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갸웃, 갸웃, 움직였어. 이 물속에서 내가 말을 할 수 있나? 시덥잖은 의문이 떠올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니까, 무언가 떠올랐는지, 인어가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이 나를 이끌던 방향을 가리키더라. 그 방향의 끝으로 시선을 옮기니까, 물살을 헤치며 아까 내가 안아주었던 세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게 보였어.
너무도 평온한 얼굴이었어. 아이들은 나에게 눈빛으로 고맙다고 말했고, 나도 다시 아이들을 안아주었어.
이제는 갈 때가 된 것 같아, 가도 될 것 같아. 인어가 다시 내 팔을 이끌었고, 세 아이들도 차례로 내 손을 잡고 인어들의 인솔을 받아 헤엄쳐 갔지. 우리는 그렇게 바닷속을 걸어갔어.
바다의 바깥에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 그래도 나를 대견하다는 듯이 어루만져주는 인어들의 다정한 손길에 왠지 어떻게든 잘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
아, 맞아, 우리 엄마가 나를 많이 찾을 텐데, 엄마에게 나도 인어를 봤다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건 참 아쉬워. 나도 인어의 노래를 들었다고, 정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엄마에게 말해 주고 싶어.
*본 이야기는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헌정 소설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이와 같은 인재人災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법안이 하루 빨리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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