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갈치

by 희연

산갈치


< 3부 >


# 5


인어의 노래를 들으면 몸이 굳는다. 그래서 윤경이 노래를 부를 때면 주변은 순식간에 멈춘다. 사람들은 홀린 듯 윤경을 바라본다.
윤경의 목소리는 위로였다. 노래는 평안이었다. 그리움이 느껴지는 가락. 분명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녀를 돌려보내 줄 때가 되었다.


은석에게 윤경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너는 저런 여자아이와 맺어질 거란다.’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했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저런 여자아이’였다. 가족끼리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로,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함께 가족을 이룰 것이라 굳게 믿었다. 분명 윤경의 부모도 윤경에게 은석을 가리키며, 너는 저런 남자아이에게 시집을 가게 될 거란다, 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해주곤 했겠지. 그 믿음은 너무 확고해서, 윤경이 선호와 지웅까지 불러 산갈치 운운했을 때에도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결국 단순히 결혼 전 가벼운 유흥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선호나 지웅은 자신에 비하면 윤경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남자들이었고, 윤경도 그걸 알고 있지만 장난삼아 확인해 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산갈치 같은 건 결국 핑계다. 은석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고, 그래서 산갈치를 찾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고 너그러운 예비 신랑 역할을 해 보이자며 마음을 먹고, 그렇게 했다. 선호와 지웅에게도 비열해 보이지 않게 잘 대접해 주며 상냥한 말들로 달래고, 힘든 일이 있다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라며 개인 연락처까지 주었다. 그리고 그건 진심이었다.

은석은 선호와 지웅에게 측은지심 같은 걸 품고 있었다. 그건 은석이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가지는 감정이었다. 어쨌거나 좋은 것들은 모두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으니까. 그러니까 윤경을 책임지게 되는 건 자신이 될 테니까.


지웅에게 윤경은, 빛이었다. 어두운 대학 생활에 한 줄기 따뜻한 친절로 다가왔다. 지웅은 현명하게 행동했다. 윤경이 누구에게나 베푸는 친절과 상냥함을 섣불리 오해해 함부로 사랑 고백을 하지 않은 덕분에 윤경과의 관계를 오래도록 편안하게 이어올 수 있었다. 친구로서 윤경의 곁에 머물며 셀 수도 없는 남자들이 윤경에게 제멋대로 고백하고 사이가 멀어지는 걸 봐 왔다. 지웅은 그들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친구로 곁에 오래 남으면 분명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 윤경은 신중한 사람이었고, 함께 나눈 소중한 추억도 없는 사람을 별안간에 사귀려 들지 않았다.

윤경을 중심으로 대학 동기 모임이 결성돼, 십여 년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윤경과 지웅을 포함해 여자 셋과 남자 다섯으로 시작한 모임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남자 하나는 모임 초창기에 윤경에게 고백했다가 차여서 그 뒤로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지웅과도 꽤 친했던 다른 남자 한 명도 몇 년 전 같은 실수를 한 다음 모임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남은 세 남자 중 한 명은 같은 모임의 다른 여자 동기와 연애를 시작해 결혼을 앞두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졸업 후 직장에서 만난 사수와 연애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이 모임에서 구설에도 오르지 않고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내 연애 한 번 안 한 사람은 지웅과 윤경 둘뿐이었다. 모임에 있는 동기들은 억지로 둘을 이어주려는 분위기를 풍기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지웅과 윤경이 곧 만나기 시작하지 않을까, 하고 감지하고 있다는 걸 지웅은 알고 있었다. 지웅과 윤경 둘만의 추억도 꽤 많아졌고, 지웅은 그 시간의 힘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렇게 모처럼 지웅에게 기회가 온 순간에 은석과 선호, 그리고 산갈치가 등장했다. 지웅이 은석을 처음 보고는 그를 돈이 많고 거들먹거리긴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대학 시절부터 윤경이 동경했던 작가, 유선호였다. 윤경이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해서 그의 책을 읽어본 적도 있었지만, 확실히 지웅의 취향은 아니어서 다신 읽지 않았다. 윤경이 선호의 작품 발표회나 사인회에 쫓아다니는 것이 신기해서 한 번 정도 같이 간 적도 있었다. 단순히 윤경이 존경하는 작가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을 이런 자리에서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래, 그뿐이었다. 실제로 대면해 보니 더 볼품없는 사람이고, 윤경도 이번 기회에 그걸 확인하게 될 뿐이라고, 지웅은 불안을 쉽게 밀어냈다.


선호에게 윤경은,

인간을 사랑한 죄의 형벌은 지독했다. 그 괴로움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사람만이 자격이 있다. 함께 바다로 갈 자격이.

인어였다.

영감의 원천, 삶의 이유.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 거창한 타이틀로 읽힐지도 모르겠지만, 선호 인생에 윤경은 정말 들숨처럼 들어왔다. 평론가의 악평과 대중의 악담이 선호의 두 손을 묶고 목을 조르며 숨을 앗아가려 할 때, 윤경이 나타났다. 윤경의 희고 고운 손이 선호의 숨통을 트여 주었고, 선호는 그 손을 모티프로 장편 소설 <달빛 손>을 써냈다. 과거의 영광이 그에게 돌아왔다. 선호는 다시 글을 쓰며 숨쉬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윤경이 내밀어 준 손 덕분에.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이 윤경을 살려줄 때가 되었다, 고 생각했다.

그리고 산갈치는 윤경이 자신에게 보내는 신호 같은 거였다. 이제 당신만이 날 살릴 수 있어요, 라고 보내는 신호.


금싸라기를 입힌 은석의 산갈치도, 따스한 기억으로 가장한 지웅의 산갈치도 결코 선호의 산갈치를 이길 수 없었다. 선호의 산갈치는 그야말로 윤경에게 생명을 주는 산갈치니까.


산갈치 지느러미는 영험하여 인어의 심장을 녹인다. 다리만 인간이 된 인어에게 꼭 필요한 마지막 단계가 바로 그 영험한 산갈치 지느러미를 푹 고아 먹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선호는 긴장한 듯,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윤경의 손에서 공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떨어지려던 참이었다.


마지막 장이 넘어가고, 침묵도 함께 넘어가고, 윤경이 눈물방울 맺힌 얼굴로 선호를 본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이 바로 내가 찾던 그 사람이라고. 그렇게만 말해준다면,


선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직 건네주지 못한 이야기들이 담긴 공책이 한 권 더, 가방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만 말해준다면, 이 공책도 마저 보여줄 수 있다. 인간이 되려던 인어, 윤경이 가진 비밀을 남몰래 간직했던 하루하루의 기록이 담긴 이 공책을, 윤경에게 선물로 줄 수 있을 것이다. 윤경은 분명 선호를 향해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말해주겠지, 그리고 선호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끌어안아 줄 수 있게 되겠지.


윤경의 하얀 손이 공책의 마지막 장을

드디어

넘기고,


공책을 덮고 고개를 든 윤경을 선호가 수줍게 바라보았다. 바다 같은 윤경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자신이 바라던 신호를 포착한 선호가 흰희에 찬 미소를 입술로 그리며 가방 속에 숨어 있던 다른 공책을 꺼낼 채비를 했다. 자, 여기 당신이 정말 원하던 게 있어요.

싱그러운 미소를 만들던 선호와 물기를 머금고 반짝거리는 윤경이 눈을 맞추고,


“푸훗, 하하하!”

선호와 눈이 마주친 윤경은 그대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호쾌한 웃음소리에 놀란 선호는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려던 몸짓 그대로 동작을 멈추었다.

은석도 지웅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눈으로, 정신없이 웃는 윤경과 얼음이 되어 버린 선호를 번갈아 보았다. 선호도 윤경이 웃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어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방 안은 금세 윤경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웃음소리가 숨통을 조인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 되어서야 윤경은 숨을 몰아쉬며 멈추었다.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방울을 달아둔 채, 윤경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전히 웃음을 참으려는 기색이 역력한 채로 윤경은 선호에게 공책을 돌려주었다. 하얀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의 공책이 낯설게 느껴져서 선호는 선뜻 받아들 수 없었다.

“너무 잘 읽었어요, 유 작가님. 다음 작품도 정말 기대가 되네요.”

아, 예, 라고 선호는 말을 흐렸다. 어색한 손짓으로 윤경에게 공책을 받아 들며 잘못된 공책을 준 건가 싶어 살그머니 확인했다. 제대로 건네준 게 맞다는 걸 재확인 할 뿐이었다. 도대체가 윤경이 어디서 웃음이 터진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비밀의 공책을 윤경에게 내밀어 봤자,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꼴이 된다는 걸 선호가 모르지는 않았다. 결국, 공책에 단단한 자물쇠를 잠가 더 깊은 곳에 감추고 말았다.



# 6


“그럼 오늘은 이만,”

선호가 어정쩡하게 제 자리에 앉자마자 윤경이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 그대로 말을 뗐다.

“자리를 마무리할까요?”

윤경이 가지런히 말했지만, 세 남자는 고개를 기울였다. 한 달 전 산갈치 통보처럼 뜬금없는 결말이었다. 아니, 이걸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윤경의 옷 끝자락을 조심스럽게 잡기라도 하듯, 은석이 나직하게 총대를 메고 질문을 던졌다.

“결과 발표는……?”

세심한 은석을 윤경이 단호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막아섰다. 그러나 상냥함은 남아 있는 따스한 목소리였다.

“때가 되면 개별 통보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선호를 제집까지 떠밀었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반지하 월세방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선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그게 바로 한 달 전이었나?

한 달 전부터 이어진 기나긴 여행에 지칠 대로 지친 선호는, 그 여정이 인어의 노래처럼 쉬이 사라지는 환상처럼 느껴졌다. 손에 잡히지 않는 그 기억이 잊힐까 봐, 선호는 산에 오르내리며 눈에 담았던 풍경과 산란기의 산갈치를 기다리며 끄적거렸던 흙 묻은 공책을 수시로 만지작거렸다. 미처 윤경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비밀 공책 한 권도 이따금 들여다보았다. 그래, 이 모든 것은 현실이고 윤경은 분명 선호를 따로 불러내어 함께 가자고 간곡히 부탁할 것이다. 그래야만 하니까.

선호는 자신을 다독이며 가슴을 쓸었다. 처음 신춘문예에 응모해 결과를 기다리던 시간보다 더 숨 막히고 답답한 날들이 너무 느리게 지나갔다.


이 주일이 다 지나도록 윤경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선호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여주지 못했던 공책을 전해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길을 떠나자, 글자들로 유려하게 그녀를 현혹할 게 아니라, 정말 그녀가 바라는 산갈치 지느러미를 구해오자. 그게 바로 윤경이 원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되니 마음을 더 단단히 먹을 수 있었다. 실행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한 번 다녀온 곳이었고, 이번에는 산갈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 전에 윤경에게 선전포고하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해보자, 그렇게 떠날 채비를 마치던 그 무렵에,

이 주간 잠잠했던 선호의 휴대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마침 당신을 보러 가려던 참이었어요,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어 발신 표시를 확인할 새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윤경일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어 목이 멨다.


“선호 씨, 우편함, 확인해 보셨어요?”

낮게 으르렁거리는 은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대했던 윤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선호는 기운이 쏙 빠졌다. 아니요, 아직 확인 안 해봤습니다, 실망을 감추지 않고 대꾸했지만, 은석이 그 대답을 들은 것 같진 않았다. 어서 확인해 보라며 재촉하는 은석의 말씨 속에는 분명한 적대감이 들어있었다. 전파를 타고 흘러들어온 것이지만 확실히 날이 선 목소리였다. 선호를 라이벌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은석이 날카롭게 구는 것이 은근히 기쁘게 느껴졌다. 좋은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석은 결코 이유 없이 선호에게 화를 낼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선호가 유추할 수 있는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은석이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흘렀다. 선호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 밖으로 나섰다. 계단을 반 층 올라 현관 앞에 있었다. 산갈치를 찾으러 가는 건 미루어도 좋을 것 같았다.


제 남은 생애를 함께 할 사람은 유선호 작가님뿐입니다. 그분만이 제가 진실로 바라는 것을 찾아주실 수 있으니까요.


개별 통보라는 게 문자나 전화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결코 해 보지 못했다. 아마 선호뿐만 아니라 은석이나 지웅도 그랬을 것이다. 우편 통보라니, 윤경답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떤 달콤한 활자들이 그의 눈을 즐겁게 할지, 선호는 빙긋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결코 가릴 생각이 없었다.


우편함에는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순백의 봉투가 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직 ‘유 선호’라는 세 글자가 흰 봉투 위에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그 검은색 세 글자가 오물처럼 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을 떨치지 못한 채, 선호는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 들었다. 아, 예에,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을 은석에게 짧게 대꾸하며, 봉투 속의 카드를,

꺼내서,


하늘과 가장 맞닿은 태백산 정상에서, 구름은 지상에 흐르는 바람보다 더 빠르게 지나갔다. 하늘은 물고기 떼가 뒤덮고 있는 바다처럼, 기다랗게 이어진 구름 떼로 쉽사리 어두웠다. 그리고 그 구름을 뚫고 얼핏얼핏 햇살이 새어 나오는 틈으로, 산갈치가 연분홍 지느러미를 번쩍이며, 몸부림을,

카드를 열었다. 청첩장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수화가 너머로 은석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커지다가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처럼 변했다. 선호의 동공도 함께 커졌다가 초점을 잃었다. 손에 들고 있는 하얀 청첩장 위에서 금박 장식이 춤추고 있었고 검은 활자가 선호의 눈동자를 찔렀다. 활자의 화살촉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신랑 오승환

신부 김윤경


“우리 말고도 세 팀이나 더 있었답니다. 도합 아홉 명을, 그 여자가 가지고 놀았다고요! 우리 셋은 산갈치였고, 다른 팀은 대왕오징어, 그리고 저 자식이 있던 팀은 흰긴수염고래 였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저 김윤경이라는 여자의 손아귀에서 우리가 놀아난 거라고요, 젠장!”

배신감과 적의를, 선호가 아닌 윤경에게,

은석은 마구잡이로 분노를 쏟아냈다. 선호는 왕왕거리는 휴대전화를 바닥으로 툭, 떨어뜨리고는 자신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 그의 눈앞으로, 윤경의 검고 긴 머리칼이 인어의 꼬리처럼 매끈하게 헤엄쳐 멀어져갔다. 선호가 손을 뻗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햇살에 번쩍거리던 산갈치의 지느러미도 재빠르게 윤경을 쫓아갔다.

선호는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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