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갈치

by 희연

산갈치


< 2부 >


# 3


파도 소리를 멜로디 삼아, 그녀는 목청을 늘어뜨렸다. 심해의 고요함이 왁자한 파도를 잠재우듯 덮었다.
그 누구라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노래가 멎으면 홀린 듯 바다로 뛰어든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듯 그녀는 눈을 감고 음률을 뱉었다. 소리는 심해까지 스며들지 못하고 파도 소리에 녹아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냥 하는 말 하나하나도 인어의 노랫가락처럼 들리는

윤경의 목소리에 선호가 취해 있는 동안, 지웅이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멋쩍게 서 있던 은석이 주춤거리며 제 자리에 앉았고 지웅은 온화한 웃음으로 느긋하게 응시했다. 그걸 비웃는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아니면 이제야 부끄러움이 밀려온 건지, 은석은 얼굴을 붉혔다. 예의 바른 지웅도 은석의 표정 변화를 보고도 모르는 척하는 모양새가 퍽 우스웠다.


글쎄요, 제가 아는 윤경이는 돈으로 좌우되는 사람은 아니죠.

세 남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술자리에서 자신만만한 은석의 말을 그렇게 받아친 것도 지웅이였다. 지웅은 대학을 함께 다녔던 윤경이 어떤 여자였는지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 이야기 속에 있는 윤경은, 항상 밝게 웃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늘 유쾌한 여자였다. 그러니까 동문수학했던 남학생 중에 윤경에게 모종의 연애 감정을 품지 않은 남자는 성적 취향이 다른 남자뿐일 거라며.

이만한 여자는 분명 흔치 않죠. 결혼이 조건들의 조화라는 것도 십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 만들어 온 추억과 공유한 기억의 깊이가 아닐까요? 그것들이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는 거죠. 저도 결코 윤경이를 양보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때의 선전포고를 되새기며, 지웅은 윤경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윤경아, 산갈치는 말이지, 깊고 깊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고 절대 뭍으로 올라오지 않아. 가끔 잡히는 산갈치들은 조류에 떠밀려 올라온 거라고 해. 길이는 평균 4미터가량 되고, 기네스북에 11m의 산갈치가 보고되어 있다고 하는데,”

지웅은 고개를 숙여 말을 끊었다.

“네가 원하는 것이 이런 산갈치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가 아니란 걸 알아. 산갈치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나도, 여기 이 형님들도 다 알고 있어. 중요한 건 너에게 우리가 얼마나 마음을 다 할 수 있는지, 인 거 아냐?”

윤경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맑은 눈으로 지웅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너를 처음 보았던 새내기 시절이 잊히지 않아. 그때도 넌 지금처럼 아름다웠지.”

지웅은 서서히 윤경의 손목을 잡고 함께 그들이 처음 만났던 날로 시간을 뒤집었다. 호소력 짙은 부드럽고 낮은 지웅의 목소리는 기억을 회상하기에 적격이었다. 윤경뿐만 아니라 은석과 선호도 마치 그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환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스무 살의 윤경은 지금보다 볼이 좀 더 통통하고 화장기가 없는 앳된 얼굴로 누구에게나 곧잘 웃어주는 소녀였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애매모호한 태도는 남녀를 불문하고 윤경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였다. 윤경을 둘러싼 사람들의 목소리는 모두 꾀꼬리가 지저귀는 듯, 듣기 좋은 말만 쏟아져 나왔다. 술자리도 빼지 않았지만, 입방아에 오를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벚꽃 잎이 비처럼 흩어 내리던 날, 지웅은 윤경을 만났다. 윤경과는 다르게 지웅은 같은 과 동기나 선후배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유일하게 말을 터놓고 지내는 동기에게 끌려 나가다시피 학생회가 주최한 야유회에 나갔던 날이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유독 빛이 났던 윤경, 그리고 구석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던 지웅. 둘에게 접점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벚꽃잎이 후두둑 떨어졌다. 지웅의 머리 위에도 한 움큼. 그걸 윤경이 다가와 떼어내 주었다.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윤경을 본 지웅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마치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고 말했다.

그때 그 장면이 눈앞에 지나가기라도 하는 듯, 지웅의 눈매는 가늘어졌다. 윤경도 그 순간을 회상하며 즐거운 듯 미소를 띄웠다. 지웅은 조곤조곤하게 윤경과 둘만의 추억거리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어. 좋아하는 영화, 책, 그리고 화가. 둘만 아는 전시회와 공간들을 많이 지나쳤지. 너와 함께 갔던 그 모든 곳을 나는 기억해.”


지웅이 뱉는 말 중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어디부터 거짓인지, 선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지웅은 많은 것을 기억하겠지만 그 기억에 담긴 감정까지도 모두 진실한 것은 아니었다.

일기에 써 두었어요, 윤경이를 처음 만난 날부터 모든 하루를요. 제 인생은 그날부터 윤경이에게 맞춰졌으니까요.

지웅이 읊어준 일기장에 써 두었다는 이야기 한 구절을 듣고 더 확신하게 됐다. 지웅의 마음은 피상적인 것이다. 기껏해야 윤경을 트로피처럼 생각하는 거다. 윤경의 어떤 모습이 아름다웠고 윤경이 가진 어떤 사상이 자기 마음에 쏙 들었는가에 집중한 메모에 가까웠다. 유치한 메모라고 생각했다. 지웅은 아마 소설을 읽고, 혹은 영화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려본 일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온 갖가지 미사여구를 붙여 놨지만, 윤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게 아니라 점수를 매겨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그래, 꾸준히 써왔다는 것만큼은 노력을 인정해야겠지, 선호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겼다. 추억팔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지웅은 외워 오기라도 한 것처럼 윤경 앞에서 추억을 하나씩 꺼냈다. 선호도 은석도, 지웅이 말로만 윤경을 현혹하려 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다. 아무 동요도 없을 거라고, 윤경은 한심하다는 듯 지웅을 냉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윤경은 지웅이 눈을 맞추며 조곤조곤 하는 말에 감동을 받기라도 했는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윤경은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지웅의 말을 더 경청했다. 환상 속의 산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했던 자신의 순수한 과거를 열심히 뒤쫓는 눈빛이었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 네가 긴 머리를 싹둑 자른 채 등장했을 때도…….”

지웅이 목소리를 더 낮추고 이야기를 깊숙이 끌고 들어갔다. 마치 물귀신이 사람까지 끌고 들어가는 집요함이었다. 그 목소리가 자장가라도 되는 듯, 선호는 차분히 눈을 감았다. 지웅이 만들어내는 과거의 환상도 선호로부터 멀어져갔다.


마녀는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물약을 내밀었다. 이걸 마시면 두 다리가 생길 거야, 그뿐이야. 쇠스랑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물속에서 진동으로 전해졌다. 인어는 인간과 달라서 병들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 인간이 되는 건 쉽지만 그 대가는 지독하다. 지루하고 괴로운 영겁의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마녀가 준 물약을 마신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단지 이따금, 심해를 담고 있는 검푸른 눈동자로 바다 저편을 응시할 뿐이었다.


# 4


윤경이 서서히 마음을 누그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상체가 부드러워져서, 마음이 움직인 것처럼 느껴졌다. 지웅의 말들이 보석처럼 윤경 앞에서 반짝였다. 윤경은 그 추억팔이가 영 싫지만은 않았던 모양이었다. 설레 보이는 기색은 없었지만.


그거 아세요? 말은 중요해요. 예컨대 어떤 말은 로맨스에 관심 없는 한 남자도 더없이 로맨틱해 보이게 만들거든요.

술이 적당히 들어갔던 즈음에 지웅이 벌게진 얼굴로 웅얼거렸던 말이 공중에 얄밉게 떠돌았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더 달콤한 말로 윤경을 녹일 수 있고, 더 따듯한 단어들로 윤경을 뜨겁게 달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선호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런 티를 내지도 않았다. 쟁쟁한 경쟁자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별안간 지웅이 몸을 일으켜 윤경을 살짝 끌어안았다. 지난한 추억 여행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은석도 선호도 아, 하는 짧은 신음만 흘릴 뿐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었다. 윤경도 갑작스러운 지웅의 행동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질색하며 쳐내지는 않았다.

지웅이 한결 뿌듯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돌아왔다. 여유로운 승자의 미소 같은 걸 얼굴에 띄운 지웅은, 옆자리에 앉아있던 선호에게 손짓했다.

선호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어색한 미소로 지웅에게 마주 웃어 보여주고 은석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은석도 지웅도,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경계를 풀고 선호를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절대 재촉하지 않는 표정,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재주를 뽐내보라는 강자의 표정이 낭낭했다. 덕분에 삐죽삐죽하던 분위기도 한풀 느긋해졌다.

이 와중에 윤경만이, 이제까지와 다를 바 없는 진지한 눈빛으로 선호를 응시했다. 그 눈빛이 선호의 늘어진 어깨를 추켜 세워주는 유일한 희망의 빛이었다.


은석과 지웅이 모르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산갈치는, 깊은 바다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무서울 게 전혀 없는 인어들의 유일한 천적이다. 불로불사의 삶을 사는 인어를 죽일 수 있는 단 하나가 바로 산갈치의 곧 선 지느러미이다. 왕관처럼 빳빳하게 서 있는 산갈치의 지느러미가 물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릴 때마다 인어들의 심장은 쪼그라들었다.

은석과 지웅이 모르는, 선호만이 알고 있는 중요한 것.


윤경의 검푸른 눈동자 속에서 산갈치 지느러미가 반짝거렸다,

고 선호는 생각했다. 산갈치는 사람들을 홀리게 만드는 능력도 있는 것 같았다. 선호는 여느 때보다 두 배는 더 빠르게 달음박질하는 심장을 움키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옆으로 둘러멘 작은 손가방에서 선호는 손바닥만 한 공책을 주섬주섬 꺼내어 윤경에게 내밀었다. 윤경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선호의 손에서 가볍게 경련을 앓고 있는 공책을 조심스레 건네받았다. 의아함에, 호기심에, 윤경의 고개는 살짝 기울어졌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누구에게든 들릴세라 입안에 고이는 긴장의 샘을 애써 혀 뒤에 숨기며 선호가 부연 설명을 끄집어냈다.

“산갈치는 예로부터 영물이었죠. 잡히지 않는 심해의 물고기. 그 산갈치를 잡으러 다녔던 지난 한 달 동안의 제 일기입니다. 덕분에 동해 쪽의 많은 산에 올랐죠.”

어떻게 웃어야 하는지 잊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선호가 말을 했다. 입술 양 끝을 억지로 끌어 올려서 파르르 떨리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세 남자의 술자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아꼈던 선호를, 은석과 지웅은 각각의 의미로 편하게 생각했다. 조건으로 사람을 품평하는 것에 익숙한 은석에게 선호는 몇 푼 쥐여 주면 나가떨어질 가난한 문인에 불과했다. 그런 비겁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윤경과 함께했던 지웅에게는 단순히 ‘윤경이 동경하는 작가’ 정도였다. 팬심에 멀리서 보면 화려해 보이고 멋져 보여서 곁에 두고 싶다는 치기 어린 생각이 아직 윤경에게 있어서 이번 후보에 들었을 뿐이라고 여겼다. 결코 라이벌이 될 수 없다고, 저렇게 제 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무슨 매력으로 윤경을 현혹할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선호는 무시해도 되는 상대가 되었다.

선호가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은석과 지웅이 알게 모르게 그런 기색을 내비치곤 했지만, 선호는 잠자코 있었다.

바로 지금 같은 순간에도.


“산에요?”

윤경은 의아함을 잔뜩 품고 새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은석과 지웅은 동시에 쿡, 하고 웃음을 흘렸다.

산이라니, 저 얼간이 같은 자식은 소설을 너무 많이 써서 세상이 소설처럼 보이나. 아무리 산갈치 이름에 붙어있는 ‘산’이 뫼 산에 ‘산’이어도 그렇지, 진짜 산에서 잡을 수 있다고 생각 한 거야? 어이없기 짝이 없군.

선호는 귓가에서 은석과 지웅이 그렇게 합창하는 것 같아, 고개를 휘휘 가로 저었다. 비웃음 가득한 조롱이 환청처럼 선호를 괴롭히는 것과는 반대로,


윤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는 눈동자로 선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선호는 귓가에서 환청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인어의 감미로운 세레나데가 울렸다. 물속에서 아가미 호흡하는 물고기가 힘겹게 인어에게 말을 건네듯, 선호는 재빠르게 말을 뱉었다. 숨이 차오르기 전에 말을 끝내야 하는 것처럼.

“네, 산요. 산갈치는 심해에만 살죠. 그것은 천 년을 살아 바다로 흘러 들어간 뱀의 화신이고, 깊은 바다에서 천 년을 산 산갈치는 이무기가 되지요. 그 이무기가 또 천 년을 굴속에서 살면 용이 되어 승천합니다. 신기한 건, 용은 산란기가 되면 굴속으로, 이무기는 심해로, 산갈치는 산으로 돌아간다는 건데,”


“잠깐만요,”

선호가 빠르게 뱉는 말을 윤경이 막았다. 윤경이 선호의 빠른 말을 막았다. 날숨과 함께 말을 쏟아내고 있던 선호는 윤경이 갑작스럽게 막아서자, 얕은 기침을 토하며 말을 멈춰야 했다.

“그러니까, 어쨌든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여기에 다 들어있다는 거죠? 이 소설 속에.”

윤경은 선호에게 받은 공책을 흔들어 보이며 뒤적였다.

소설이 아니라,

고 덧붙이려는 선호의 말은 펄럭거리는 공책 낱장의 소음 속으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공중에 녹아버려 흔적을 찾기 힘들어진 선호의 말은, 그 자리에 박혀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선호처럼 그 누구의 귀에도 닿지 못했다.

그런 무관심 속에 덩그러니 놓인 선호의 얼굴엔, 그러나 묘한 자신감이 수줍게 빛났다.


찰박, 마치 인어의 꼬리가 수면을 유영하는 것처럼 유려한 손놀림으로 윤경이 공책을 넘겼다. 찰박찰박 소리가 늘어진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듯 방안을 채웠다. 그 소리 탓에 선호는 바다가 보이는 둔덕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윤경이 공책을 넘기는 소리와 네 남녀의 가느다란 숨소리만 공간에 얕게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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