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에 안대를 쓴 돼지를 보았다
정상 등교가 다시 시작되었다. 붉은 비가 그쳤고 당분간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는 예보가 떴다. 엄마는 분주하게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하셨고, 아빠는 아직 혼자 옷을 입지 못하는 지민이를 어르고 달래며 옷을 입혀주었다. 나는 양말 한 쌍을 들고서 어떤 발부터 넣으면 좋을지 골몰했다.
“지윤아, 얼른 양말 신어, 곧 나가야 해.”
아빠가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 붉은 비는 며칠이나 내렸더라, 헤아려보면서 오른쪽 양말을 먼저 신었다. 오른쪽은 행운,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기원하는 쪽이다. 왼쪽은 안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쪽이다. 나만의 규칙인데, 매일 아침 기분에 따라 그렇게 정했다. 이건 내가 혼자 양말을 제대로 신을 수 있게 된 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뉴스에서 떠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엄마는 안방에서 혼자 뉴스를 봤다. 거실에는 티브이를 두지 않았다. 나와 지민이가 티브이에 빠져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가 되지 않게, 엄마가 정한 규칙이었다.
- 이번 붉은 비는 5일 동안 내렸죠.
- 네,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이제 다시 비가 내렸을 때, 언제 그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은 그래도 내릴지 시작점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거죠?
- 맞습니다.
엄마는 그쯤에서 티브이를 끄고 방 밖으로 나오셨다. 기운이 없는 표정과 축 처진 어깨가, 엄마의 출근길이 얼마나 고될지 짐작하게 해 주었다.
아빠가 황급히 주방으로 들어가서 도시락 가방 세 개를 가져왔다. 짙은 파란색에 가장 큰 가방은 엄마 거고, 노란색은 내 거, 빨간색은 지민이 것이다. 지민이 도시락 가방도 내가 받아들었고, 아빠는 엄마에게 뽀뽀했다. 힘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빠는 쪼그려 앉아서 나랑 눈높이를 맞춰 내 손과 지민이 손을 같이 맞잡았다. 그리고 늘 하던 당부를 했다.
“지윤이는 지민이 잘 챙기고, 지민이는 언니 말 잘 듣고. 꼭 둘이 손잡고 같이 집에 와야 한다.”
“네.”
지민이랑 입을 맞춰 대답했고, 아빠는 나와 지민이 손을 각각 엄마 손에 쥐여 주었다. 현관에 서서 엄마와 아빠는 또 뽀뽀하고 나와 지민이 볼에도 뽀뽀를 해 주셨다.
엄마는 집 앞에 주차한 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지민이를 먼저 앉혔다. 나는 반대편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이 정도쯤은 혼자 할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안전띠를 매는 건 쉽지 않았다. 엄마가 지민이를 지나 허리를 숙여 내 안전띠를 채워 주었고 내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가벼운 진동과 함께 차가 기침했다. 엄마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뒤를 돌아보니 아빠가 현관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빠는 늘 집에만 있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언젠가는 방에 들어가서 이틀이나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때 집은 완전 엉망이었고 엄마는 나와 지민이 밥만 겨우 챙겨주었다.
엄마가 일하는 곳은 읍내 나가기 전에 있는 무슨 동물 관리 어쩌고 하는 곳이었다. 병든 동물을 치료할 수 있는 약 같은 것을 만드는 데라고 했다. 얼핏 듣기로는 이미 멸종하고 없는 동물들을 다시 살려내는 일에 요즘 집중하고 있다고 했던 것 같다. 이미 사라진 동물들을 다시 나타나게 만드는 것, 그건 너무나 꿈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러면 공룡도 다시 만들 수 있냐고 신나서 물었다. 엄마는 상냥하게 웃으며, 물론이지, 하고 대답해 주셨고, 그날 밤은 공룡 등을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꿨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일이 어찌나 힘든지, 엄마는 도통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없었다. 매일같이 나도 지민이도 잠들고 난 후에야 도둑처럼 살금살금 들어오셨다. 불빛과 차 바퀴 소리가 얇은 벽을 지나 내 방에 닿으면 나는 잠결에라도 엄마가 집에 왔구나, 하고 알았다.
엄마 차는 빠르게 달리는 법이 없었다. 매일 보이는 창밖 풍경이 언제나처럼 지나갔다. 그러다 엄마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고, 엄마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소장님.”
- 연구소에서 실험체가 탈출했네. 지금 인근 경찰 병력까지 동원해서 찾는 중인데, 도통 어디로 간 건지 알 수가 없어. 장 팀장이 전담했던 녀석이니까, 일지 갖고 있지?
“아, 네, 집에 있습니다.”
엄마는 백미러를 통해 나와 지민이를 한번 흘긋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손목시계와 나를 다시 번갈아 보았다. 아마 시간과 거리, 뭐 이런 걸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가 가면 나와 지민이는 확실히 지각이었다. 그리고 학교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랑 지민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가자니, 상황은 그보다 긴급해 보였다.
고민하던 엄마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나와 지민이를 내려주고는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했다.
“괜찮아요, 엄마. 여기 길 따라서 쭉 가면 학교인데, 내가 지민이랑 속 꼭 잡고 같이 갈게요.”
“그럴래, 지윤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엄마는 못내 불편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차를 타고 다시 돌아갔다.
지민이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걷기 시작했다. 지민이는 투정 부리지도 않고 잘 따라왔다. 어른들 걸음으로는 얼마 안 걸리는 거리지만 지민이는 아직 그렇게 걷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천천히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민이는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 학교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조잘거렸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나온 나는, 지민이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적당히 대꾸했다.
“언니, 근데 정말로 옛날에는 돼지라는 고기도 먹었대?”
별안간 지민이의 질문이 허를 찌를 줄은 몰랐다. 나도 엄마랑 아빠한테 들은 것밖에 없어서 잘 알지는 못하는 부분이었다.
엄마랑 아빠가 나랑 지민이 나이였을 때, 돼지랑 소, 닭을 고기로 먹었다고 했다. 어느 날은 닭이라는 동물이 없어도 닭고기 맛이 나는 고기가 생겨났고 사람들은 점점 그걸 먹기 시작했다. 쇠로 된 우리에 가둬 키우던 닭은 이제 그냥 벌판에 뛰노는 동물이 되었다. 그래도 진짜 닭이 낳은 종종 사람들이 찾아 먹었다.
환경 문제가 너무 커져서 이제 소는 대량 사육이 금지된 동물이다. 옛날에는 한 사람이 엄청 많은 소를 다 갖고 있기도 했다고 하고, 소 젖도 짜서 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소가 트름을 할 때마다 나오는 무슨 가스가 지구를 너무 뜨겁게 만들었고, 지구에 불이 붙기 직전까지 가서야 소를 사육하지 못하게 하는 세계 공통 법안이 마련되었다. 지금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극소수의 부자들로, 애완용으로만 겨우 키운다고 했다.
돼지라는 동물은 그보다도 더 옛날에 이미 지구에서 흔적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도 너무 어려서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옛날에. 지구에 붉은 비가 한 번도 내린 적이 없었을 때. 돼지한테만 위험한 질병이 전 세계를 빠른 속도로 강타했고, 그렇게 손 쓸 틈도 없이 돼지가 멸종했다. 그러니까 엄마도 아빠도, 나도 지민이도, 돼지를 그림이나 사진으로밖에 본 적이 없었다. 돼지고기를 먹어본 적은 더더욱 없었고.
이유 없이 죽어 나갔던 돼지들을 옛날 사람들은 땅에 묻어서 지워버렸다. 지민이는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와서 나에게 물어본 걸까? 지금은 사람들이 기억하지도 않는 돼지에 관해서 말이다.
나는 할 수 있는 말들을 골라냈다. 지민이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해야 했다.
“옛날에는 정말 엄마랑 아빠가 애기 때에는 사람들이 돼지를 먹었대. 그림책에서 봤지, 분홍색에 동글동글한 동물인데, 안 먹는 데가 없었다고 해. 그러다가 돼지한테만 위험한 병이 생겨서 다 없어졌대.”
“근데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다 맨날 고기만 먹고 살았나 봐. 닭도 먹었대구 소도 먹었대, 지금은 없는 돼지도 먹었다구 그러고. 바다에 있는 살아있는 물고기도 잡아먹었대?”
그건 들은 바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고기를 일 년에 두어 번밖에 먹지 않았다. 모두가 그랬다. 고기라고 먹는 건 공장에서 만드는 닭 맛 고기와 소 맛 고기 그리고 각종 바다 생물 맛 나는 고기인데, 모두 세포를 배양해서 만드는 거였고 쉽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매 식단에 고기가 올라오지는 않았으니까,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살았다는 게 신기하긴 한 모양이다.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을 하고 넘겼는데 지민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자꾸만 질문을 조잘조잘했다. 학교까지 아직 몇 분은 더 걸어야 했는데, 조금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눈앞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나도 지민이도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커다란 덩치에 처음 보는 생명체가 우왕좌왕 헤매고 있었다. 아까까지 지민이가 조잘거리며 물어봤던 돼지처럼 생겼다. 온통 분홍색에 얼굴은 길쭉하고, 꼬리는 스프링처럼 말려있는, 그림책에서 봤던 돼지와 꼭 닮았다. 큰 코를 킁킁거리며, 두 발로 우뚝 선 돼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두리번거린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돼지 눈이 있어야 할 곳에 까만 천 같은 게 둘러 있었다. 안대 같았다.
“킁킁, 여기가, 킁, 어디입니까? 킁킁.”
말을 하는 걸 보면, 돼지라는 동물이 아닌 걸까? 세상에 사람처럼 말을 하는 동물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처럼 생긴 것도 아니었다. 앞도 보이지 않는 저 동물은 나와 지민이가 자기 앞에 있는 걸 알고서 말을 한 걸까? 동물은 계속 킁킁거리며 허둥댔다.
“얘, 넌 누구니?”
지민이가 호기롭게 질문을 했다. 킁킁거리던 동물은 잠시 멈추더니 두 발을 마저 땅에 디뎠다. 네 발로 서니 나와 지민이랑 눈높이가 얼추 맞는 것 같았다.
“글쎄요, 킁킁. 돼지라고 부르는 걸 들었는데, 킁, 그게 나를 부르는 건지, 킁킁, 알 수가 없어요. 킁, 돼지는 이제, 킁킁, 없어졌다고 했는데, 킁.”
정말 돼지일까, 말하는 돼지라니. 아니 말하는 동물인 것도 너무 이상한데, 자기 입으로 돼지라고 하고 있었다.
“킁, 근데, 제 눈에, 킁킁, 이것 좀, 킁, 떼어내 주실 수 있나요? 킁킁.”
돼지는 우리 쪽으로 더 다가왔다. 지민이는 겁도 없이 돼지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나는 지민이 손을 꼭 잡고, 어서 학교에 가지 않으면 늦을 것 같다는 걱정과, 이 신비한 동물과 더 놀 수 있다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동시에 품었다. 오른쪽 양말부터 신었던 아침이 생각났다. 오늘의 행운이 바로 이건가?
나는 선 채로 돼지 등에 타고 올라 하늘을 나는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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