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갈치

by 희연

산갈치


< 1부 >


# 1


은석과 지웅이 모르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그녀를 얻지 못할 것이다. 나만이, 그녀를 가질 수 있다.


문장을 써 내린 선호는 흡족한 듯 미소를 까득였다. 밤새 긴장한 탓에 뻐근해진 목덜미에서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고 쭉쭉 잡아당기면서 동이 터오길 진심으로 기원했다. 결전의 날은 오늘이었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 건 선호 자신이 될 것이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기대감과 긴장감에 지난 밤 한숨도 잠을 못 자기는 했지만, 그쯤이야 대수롭지 않았다.

피로에 지친 눈을 살짝 감으며, 선호는 윤경을 처음 만났던 4년 전을 떠올렸다. 등단할 때부터 문인들 사이에서 ‘이상 버금가는 세계관’이라며 극찬을 받던 것이, 어느 정도 꺾여 들던 즈음의 일이었다. 두 번째 소설집 <간은 육지에 두고 왔습니다.>를 출간하고 종로의 대형 서점에서 기념 사인회를 진행하던 중에 나타난 윤경이, 누구보다도 호들갑스럽게 선호에게 사인을 받아 갔었다. 검은색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는 갑작스레 선호의 볼에 입술을 맞추고 갔던 것 때문에 더 선연히 기억에 남았다. 그녀의 따뜻했던 입술과 달짝지큰한 꽃향기가 머리 가닥에서 흘러나왔던 것까지. 선호는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설레었던가를 떠올리며 꿈꾸는 표정을 지었다.


등단 직후 아주 잠깐, 문학계에서 젊고 곱상한 남성 작가로 여대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선호는, 이후 세 번째 단편 소설집 <언제나>에서 부진한 출판 매수를 보였고 이윽고 네 번째 소설집 <달콤한 오후>와 장편소설 <연緣>을 냈을 때쯤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평론가들은 ‘이상을 동경하던 그의 날개는 사실 이카로스의 날개에 불과했다.’라거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환상만 좇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꾼.’이라며 그의 작품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 맹독 같은 말들 때문에 실의에 빠진 선호 앞에 윤경은 다시 나타났다. 선호의 골수팬이라며, 어떻게 그의 주소를 알아냈는지 선호가 기거하는 서울 변두리 반지하 월세방까지 찾아와 과일이며 음료수 같은 것들을 챙겨주고 갔다.


그 이후로 선호는 작품을 쓰다가 슬럼프에 빠질 때엔 으레 윤경을 찾았고, 윤경은 언제나 주저 없이 선호에게로 달려와 외로움이며 투정, 쓸쓸함 등을 달래주고는 했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윤경이 선호에게 무한한 애정이나 열렬한 관심이 있다고 생각을 할 만했고, 당사자인 선호는, 아니나 다를까 영락없이 윤경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단단한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물론, 윤경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그 착각에서 생긴 자신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꼬리는 달빛에 반사되어 오색 빛으로 반짝였다. 밤하늘의 별빛이 고스란히 옮아간 것 같았다. 그것은 칠흑 같은 바다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빛을 내었지만, 지금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밤하늘보다 더 까만 눈동자를 깜빡이며, 그녀는 뭍에서 바다를 갈망하였다.


선호는 또 다른 문장을 되새김질하며 흐려지던 눈동자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었다.


# 2


선호, 은석, 지웅. 세 남자는 처음 모였던 한 달 전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경계하며 윤경을 둘러싸고 앉았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윤경 소유의 작은 리조트 스위트룸에서 재회한 네 남녀는 한 달 전만큼이나 어색한 표정들을 나누고 있었다.


선호는 은석을 흘긋거렸다. 곱슬한 머리칼에서부터 얇은 흰 셔츠와 승마바지. 어느 것 하나 적은 돈 들어간 게 없어 보였다. 입술도 돈으로 만들어진 모양인지 비죽비죽 웃으며 거들먹거리는 게 돈만 많은 건달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선호의 생각과는 달리, 은석은 꽤 교양 있는 남자였다. 속으로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라이벌 되는 선호와 지웅에게도 깍듯했고, 개중에 나이가 제일 많다고 권위적으로 굴지도 않았으며, 대접을 받으려는 눈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선호는 적어도 저 사람에게만큼은 윤경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라는 단서를 붙인다면, 차라리 지웅이 윤경에게 어울리지 싶었다. 윤경과 대학 동기라는 지웅은 외모에서나 성격에서나 무엇 하나 윤경에게 안 어울리는 게 없어 보였다. 점잖게 예의도 차릴 줄 알고 형님들 대할 줄 아는 지웅이 선호는 썩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윤경을 지웅에게 양보할 생각은 물론 없었다.


“약속한 한 달이 다 되었네요. 수확은 좀 있으셨나요?”

천진한 미소로 윤경이 웃으며 물었다. 세 남자는 긴장감을 마신 것 같은 표정으로 침을 꼴깍 넘겼다.


윤경이 언급한 그 한 달 전, 은석과 선호, 지웅을 앞에 앉혀두고 가볍고 상쾌한 말이 귓가에 꽂혔었다.

한 달의 시간을 드릴게요. 산갈치를 찾아 주세요.

고등어를 사다 주세요, 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산뜻한 어조였지만 무게감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누구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서, 썩은 동태 같은 흐리멍덩한 눈으로 서로를, 그리고 네 남녀의 모임을 주관한 윤경을 쳐다보았다. 한 달 후에 가져온 결과물로 결혼 상대를 결정하겠다는 말이 따라오고 나서야, 세 남자는 갓 잡힌 은갈치처럼 눈동자를 밝혔다.


그때의 눈빛을 고스란히 가지고 온 세 남자의 딱딱한 표정에 윤경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소리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은석이 윤경과 마주 웃었다.

“쉽지만은 않던데요, 윤경 씨. 산갈치가 이름 그대로 산에 사는 갈치도 단지 살아있는 그냥 갈치도 아니더라구요.”

꽤 재미난 농담이라 생각하고 뱉은 모양인지, 은석은 키들거렸다. 선호와 지웅은 물론이고 윤경마저 흘렸던 웃음을 주워 담을 정도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되어 금세 흩어졌지만.

썰렁한 반응에 머쓱해진 은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제 오른편에 짐짝처럼 내동댕이쳐놨던 꾸러미를 윤경 앞에 끌어다 놓았다.

설마 정말로 산갈치를 잡아 온 걸까, 선호는 흠칫 놀라며 꾸러미를 노려보았지만, 다행히 꾸러미가 살아서 펄떡거리지는 않았다. 내심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다고 그 꾸러미를 아무것도 아닌 걸로 여기기엔 은석의 표정이 너무도 기세등등하였다.

선호는 이전에도 그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윤경을 제외하고 세 남자가 한 곳에 모여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을 적이었다. 다름 아닌 은석이 마련한 자리였는데, 선호는 고작 이름만 몇 번 들어본 값비싼 양주에, 입에서 살살 녹는 안주들로 구성되어 ‘조촐하다’고 표현하기엔 적절하지 않았다. 휘황찬란한 배경과는 반대로 세 남자 사이에 흐른 기류는 조촐함에 썩 어울렸다. 윤경으로부터 ‘산갈치’ 이야기를 들은 지 삼 일째 되던 날이었고, 은석은 몰라도 선호와 지웅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하던 때였다.


결혼은, 자고로 갖가지 조건들의 상호조화로 이루어지는 최상의 하모니죠.

술자리의 주최자이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충만했던 은석이 첫 운을 그렇게 뗐다. 지웅이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를 쳤고 그 반응에 흥이 돋은 건지 은석은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저는 산갈치가 뭐든 간에 관심이 없습니다. 산 갈치든 죽은 갈치든,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이지요. 그녀는 저의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감입니다. 외모, 성격, 학력, 집안.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는 거, 여러분들도 아시지요? 물론 그녀를 사랑하는 제 마음은 그 조건에 댈 바는 아니지만요. 아무튼 그리고 저의 재력이라면 그녀를 사로잡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 같네요.

그 말을 마친 은석이 웃었을 때, 선호는 그를 비열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때의 비열한 미소를 그대로 띠고 있는 것 같은 은석이 윤경의 앞에서 꾸러미를 펼쳐 보였다. 장난감처럼 달그락거리며 크고 작은 액자들이며 인형 따위가 와르르 쏟아졌다. 선호도 지웅도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것들을 보았다.


그 물건들이 산갈치를 그려 놓은 그림들과 산갈치가 찍힌 사진들 그리고 산갈치 모양의 인형들 따위라는 것을 알고 난 선호는, 은석의 비열했던 미소가 바보처럼 느껴져 비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지웅도 같은 생각인지 잔뜩 굳었던 표정이 슬그머니 풀렸다. 윤경의 표정에도 비웃음 섞인 의아함이 흘렀다.

“내가 찾은 산갈치들입니다.”

윤경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누가 봐도 살아있는 산갈치는 아니었다.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색감이나, 매섭게 으르렁거리는 눈매나 모두 현실감 있게 나타나 있기는 해도, 그것들은 그저 그림이나 사진, 인형 따위에 불과했다. 산갈치보다 더 허상 같은 피조물들 앞에서도, 은석은 구부러짐이 없었다. 그림 속 날카로운 산갈치의 송곳니처럼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은석이 설명을 더 했다.

“실망하신 거 잘 압니다. 그렇죠, 이건 고작 그림과 사진들이죠. 산갈치는, 깊은 바다에 사는 어류인데 머리에 왕관처럼 쓰고 있는 지느러미가 아름다운 물고기라고 합니다. 한 달 동안 어떻게 하면 그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산갈치를 잡아 올 수 있을까, 골몰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 달이라는 제한 시간에 의문이 들더군요. 정말 윤경 씨는 바닷속에 있는 산갈치를 잡아 오길 바라는 걸까? 본인이 원하면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텐데도? 그러자 답이 나오더군요, 진짜 산갈치를 잡아 오길 바라는 게 아니라,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거구나, 하고요.”

윤경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은석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자랑 같은 말들은 조금 더 이어졌다.

“나는 이 산갈치 관련 그림이나 사진 따위를 구하는 데에는 그다지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노력이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닙니다. 지금도 태평양 한 가운데서 제가 고용한 사람들이 산갈치를 잡으려 매일 바닷속을 들락거리고 있죠. 곧, 좋은 소식이 올 거예요, 윤경 씨.”


“그래서요?”

“네?”

윤경은 냉담했다.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은석의 말을 가로막으며 윤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석이 준비해 온 꾸러미들을 들추며 윤경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단번에 가장 값비싼 액자에 담긴 산갈치 그림을 집어 들었다가 은석에게 휙 내던지듯이 건넸다.

“은석 씨도 아시다시피 저도 돈은 많아요. 은석 씨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죠.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산갈치 잡이? 저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원한다면 제가 직접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요. 제가 이런 걸 원했다면 여러분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시간 낭비 했을까요?”

윤경은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은석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차가운 미소였다. 은석도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졌는지 자신감에 차 있던 표정이 천천히 식어갔다.

더 이상의 말을 잇지 않고, 윤경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은석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최후의 발악을 내뱉기 시작했다.

“무, 물론이죠, 그런데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러니까, 산갈치는 결코 뭍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그, 깊고 깊은 바다의 어둠을, 안식처 삼아 살아갑니다. 사, 사람들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꼭 맞는 안식처를 찾아서,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거죠. 제, 제가 윤경 씨의 거처로는 제격이구요.”

끝이구나, 은석 자신도 그 끝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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