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양갱
내가 태어난 밤은 달도 뜨지 않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나의 어미는 홀로 차가운 방바닥에 홑이불만 깔고 나를 낳느라 끙끙댔고, 나의 아비라는 작자는 흐린 티비 화면을 멍하니 주시하며 연신 소주를 병째로 들이키고 있었다고 한다. 아비는 어미의 신음이 듣기 지겨웠는지 여러 차례 조용히 하라며 소리를 질렀고, 이윽고 내가 어미의 자궁에서 나와 세상의 빛을 보며 빼액 울었을 때는 방으로 소주병을 집어 던지며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단다. 뒤늦게 찾아온 고모가 이미 주검이 된 어미의 시신도 수습해주지 못한 채, 핏덩이 같은 나만 싸매서 지옥 같은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고, 그렇게 나는 고모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고모는 나를 데려 나온 순간부터 자신의 열 살 어린 남동생과 인연을 모질게 끊으셨다. 저런 것도 동생 새끼라고 내가 거둬 키웠구나, 그 삼십여 년의 세월이 나는 도무지 아깝다. 혀를 끌끌 차며 넋두리했고, 그래서 나는 얼굴도 모르는 아비를 그리워하지 않으며 자랐다.
그래도 고모는 고모로 불러야 했다. 남들 다 부르듯 엄마라고 불렀다가 된통 혼이 났다. 너에게 나는 어미라 불릴 자격이 없다, 나는 너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어. 네 아비가 어떤 작자인지 알면서도 네 어미와 함께 살도록 했고, 그래서 결국 너의 어미를 죽게 만든 것이다. 이 모든 게 내 탓이다. 그러니 나를 절대 어미라 부르지 말아라.
그 말을 모두 알아듣지 못했던 어린 나이에도 나는 알아듣는 척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고모의 말에 토를 달지 말아야 했다. 그게 일찍 철든 어린이의 유일한 길이었다.
고모는 양조장을 운영했다.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일한 유산이라고 했다. 아니, 나의 아비를 제외하니 이제 유일한 유산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고모에게서는 항상 알싸하고 시큼한 누룩 냄새가 났다. 고모는 일절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아비가 그랬던 것처럼,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신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될까 두려웠다고 했다. 나에게도 술을 마시지 말라고는 했지만, 이미 집안은 달큰한 술 냄새에 절여 있어서 나는 항상 취해 있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술을 마셨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열일곱 나이에 뒤늦게 온 사춘기로 또래 친구들과 늦게까지 어울려 놀다 음습한 곳으로 흘러갔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미성년자가 몰래 술을 마실 수 있는 술집이었다. 지하에 자리한 그 술집에서 소주니 맥주니 막걸리니 되는 대로 부어라 마셔라, 속으로 집어넣었다. 내 몸조차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된 다음에야 술집에서 나올 수 있었고, 그런 만큼 정신은 오히려 멀쩡했다. 내 팔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춤을 추었지만, 머릿속은 깔끔했다. 아,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내 팔다리가 정말 내 것이 아니게 되겠어. 그렇지만 내가 갈 곳은 고모가 있는 그 집뿐이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귀가를 했고, 새벽 동이 터 올 무렵이었지만 고모는 그때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네발로 기어서 고모 앞으로 갔다.
“고모, 미안해요, 이런 나를 쫓아내도 저는 할 말이 없겠어요.”
고모는 조용히 내게 물잔을 건넸다. 화를 누르는 목소리가 아니고, 무언가를 참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단지 낮고 단단한 음성으로 나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술을 마시는 건 괜찮다, 술이 너를 마시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말이다. 나는 평생을 그렇게 애쓰며 살아왔어, 네 아비와 나의 아비를 보면서 나는 저 괴물에게 잡아 먹히지는 말아야겠다고 항상 되뇌었지.”
고모는 주머니에서 따뜻해진 양갱을 꺼냈다. 물로 목을 축인 내 입에, 껍질을 깐 양갱을 물려주시며 말을 이었다.
“술을 마신 다음엔 꼭 단 것을 챙겨 먹도록 하렴. 다음 날 속이 덜 불편할 테니 말이다.”
고모는 내가 양갱 하나를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셨다. 물과 양갱을 반복해서 먹으며, 온몸에 피가 다시 도는 기분을 느꼈고 동시에 정신이 먼 곳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다시 눈을 뜨니 거실에서 고모와 나란히 누워 잠들어 있었던 걸 알게 되었다. 새벽 찬 기운에도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고모가 내게 덮어 준 솜이불 덕분이었다. 나는 그 이불을 고모에게 다시 덮어 주고, 가만히 고모를 보았다. 고모의 얼굴은 군데군데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눈썹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다만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어서 내가 어쨌든 귀가를 했다는 것에 안심해서인지, 그런 나에게 양갱과 물을 먹여 속 편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시절을 지나서 나는 술이 먹고 싶을 때마다 양갱을 먹었다. 양갱에서는 고모가 만든 막걸리의 냄새가 났다. 나는 고모에게서 양조장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맛보지 않아도 잘 익어 가는지 알 수 있으려면 한참을 배워야 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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