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택이 중요하진 않지만, 아주 중요한게 있을것
나는 가끔 10년 전, 대학 시절로 마음이 떠난다. 그때마다 ‘좀 더 놀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불쑥 찾아와, 채 누리지 못한 순간들을 아련히 그리워한다. 공대생이었던 나는 퀴즈와 시험, 과제의 무게에 짓눌려 도서관을 집 삼아 살았다. 해외 인턴 기회가 보이면 지원서를 붙잡고 밤을 새웠고, 방학이면 여름학교나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쪼개 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20대를 채운 기억은 그런 치열함이 아니라 드물게 찾아오던 축제의 환호, 친구들과 바다로 떠났던 여름날의 웃음, 동아리 방에서 나눴던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웃긴 건, 그 희미해진 배움의 날들에 그렇게 매달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여기 서 있지 못했을 거라는 깨달음이 문득 날아드는 순간이다. 만약 그때 미친 듯이 놀음에 빠졌다면, 대학원의 문턱을 넘지 않았을 테고, 끝까지 무언가를 해내는 내 모습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사 학위를 손에 쥐고 연구소에서 길을 찾지 못했다면, 책 읽는 따뜻한 습관도 내 곁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글을 쓰는 나 자신은 영영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연구소의 작은 복지, 무료 e-book이 내게 책장을 열어준 계기였으니.
지금 누군가 나를 10년 전으로 돌려놓고, 그때처럼 다시 공부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까? 단호히 “아니”라고 답한다. 절대 못할 것 같다. 다른 삶을 꿈꿔서가 아니다. 그 시절 나는 밤낮없이 시간을 갈아 넣으며 나를 키웠다. 하지만 지금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빼면 내 성장을 위해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듯 한곳을 향했던 그 집중력은 이제 흩어져 흔적조차 희미하다. 그래도 확신할 수 있는 건,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단단히 세웠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진로를 묻던 날이 떠오른다. 이과와 문과, 두 갈래 길 앞에서 나는 단순하게 결정을 내렸다. 사회와 과학 중 무엇이 더 끌리느냐 물었고, 과학이 좋아서 손을 들었다. 그 선택 하나가 지금의 나를 빚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과를 택한 친구들은 대부분 자연계나 공학으로 대학을 갔고, 자연스레 기술과 과학의 세계로 흘러갔다. 반면 문과를 선택한 친구들은 전공을 넘어 각자의 길을 개척했다. 중국어학과를 나온 친구가 의류 회사에, 온라인 쇼핑몰에, 공무원 시험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만약 내가 그때 문과를 외쳤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 서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과학을 사랑했던 그 어린 나에게, 적성을 따라준 그 단순한 마음에 고맙다.
삶은 누구에게나 선택의 순간을 던진다. 그 모든 선택이 중대한 건 아니다. 오늘 점심 메뉴를 고민한다고 인생이 뒤바뀌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오늘 도서관에 가서 책 한 권을 펼친다면, 그건 당신의 내일을 조금씩 바꿔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