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닝피치 Oct 29. 2022

기다림은 지치지만

마법 같은 일이 생길 거예요.



평소와 같이 산책했던 날이었다. 아이는 걷다가 관심 가는 사물을 발견했는지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나무 막대기와 나뭇잎을 주우며 신나게 노는 아이를 기다렸지만 인내심은 금방 바닥이 났다.

이제 그만 가자.”

말과 동시에 아이는 자리에서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가고 싶은 자와  머물고 싶은 . 두 사람은 한참을 씨름하다 곧이어 아이의 입에서 익숙한 말이 나왔다.

“엄마 먼저 가버린다.”

  말은 나에게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이가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쓸 때마다 내가 자주 했던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의 조급함이 아이에겐 어떻게 비쳤을까 싶은 생각에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말을 다시 꺼내지 않았지만 아이는  오랫동안  말을 기억했다.






부모가 되면 기다리는 일은 일상이다. 뒤집기, 걸음마, 언어 발화 같은 인간의 기본 발달과정은 물론이고 우리 눈에는 익숙한 손 닦기 조차 너무 즐겁게 30 이상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일이 매일 일어난다. 거품을 잔뜩 묻히고 물에 흥건히 젖은 옷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심란해지면서 잔소리가 용암처럼 분출할 지경이다. 기다리는 일은 정말 어렵다.


아이의 첫걸음마를 기억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엔 전혀 몰랐던 사실이지만 이 위대한 첫걸음마를 떼기 위해 여러 발달 단계를 거친다는 걸 부모가 되는 동시에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첫 뒤집기를 하고 나면 뒤집기 지옥이라는 이벤트가 기다린다. 뒤집기 지옥? 유도기술 같은 건가? 나에겐 낯설고 생소한 단어였다. 겪어본 바론 잘 자던 아이가 첫 뒤집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무의식 중에 밤마다 뒤집기를 한 후 울면서 잠이 깬다. 그래서 아이도 부모도 잠을 잘 수 없으니 지옥이라 불린다. 그 뒤에도 여러 지옥들이 이어지는데 뒤집기가 익숙해질 즈음 되집기, 배밀이, 기어가기, 스스로 앉기, 붙잡고 일어서서 걷기의 단계로 차례차례 발달의 과업을 밟을 때마다 아이와 부모는 같이 고난을 겪는다. 한 발자국을 떼기 위해 이렇게 많은 연습과 시간이 필요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하지만 기다리는 일은 걸음마뿐만이 아니었다. 미음에서부터 일반밥을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옹알이부터 문장으로 대화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우리가 편하게 하고 있는 일들은 사실 수많은 기다림으로부터 얻은 위대한 능력이란 걸 한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성장을 하기 위해선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들은  기다림의 중요성을 종종 간과하고 내면의 불안감, 조급함의 감정이 우선시 되어 화를 낸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려줄걸 후회를 하곤 한다. 기다림이 이토록 힘들다는 사실을 알지만 부모가 되면 아이를 위해 옆에서 응원하고 긍정적인 반응으로 기다려주는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친구, 연인, 부부 모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매년 봄이 되면 아름답게 피어있는 튤립을 보고 모두들 감탄한다. 모양도 빛깔도 어디 하나 안 이쁜 구석이 없다. 튤립이 한창 피는 시기는 따뜻한 4-5월이지만 사실 구근을 흙에 심는 시기는 추워지기 시작하는 11 즈음이라고 한다.  11월에 심어서 4월이 되어야 꽃을   있다는 말인데 부추같이 일주일이면 꽤 많은 성장을 이룩하는 식물만 키우던 나로서는  기다림이 길게만 느껴졌다. 의구심이 들어 찾아보니 쌀쌀한 계절에 심는 구근은 긴 시간 동안 양분을 저장하며 더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튤립 한 송이를 보기 위해서 충분한 기다림이 필요한데 우리들은 어떨까? 천천히 기다려보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에게도 멋진 봄날이 펼쳐지지 않을까?

 

이전 04화 혼자였을 때 VS 엄마가 되었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